롬복에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롬복에 처음 온 것은 2024년 6월 말, 그리고 11월 말에 나는 그곳을 떠나왔다. 예기치 않게 시작한 롬복 생활이 이렇게나 나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줄은 몰랐다. 어디를 여행하든, 아 여기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은 거의 없었다. 항상 돌아가야 할 곳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모든 곳을 마다하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었다. 하지만 이제 어디고 돌아갈 곳은 없다. 돌아가야 할 곳이 없어졌다. 그 말은 나는 어디든 내가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다는 것. 슬프지만 기쁘고, 또 기쁘지만 슬픈 이야기다. 바로 한국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친구들이 태국의 한 섬에서 함께 지내자고 꼬셨다. 이번 연말까지만 놀아볼까 하며 흔쾌히 승낙했다.
태국으로 떠나기 며칠 전부터 모든 순간이 소중해졌다. 매일 걷던 길, 그 길에서 만나는 친구들의 미소, 쏟아지는 햇살과 부서지는 파도들. 나는 이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었다. 가끔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가라고 되뇌던 순간도 있었지만, 한 순간도 후회한 적이 었었다. 후회라고 하면, 처음에 친구가 이곳에서 만나자 했을 때, 한 번에 그러겠다 말하지 않은 것. 몇 번을 고민한 끝에 온 나 자신.
11월 중순부터 롬복엔 우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겨울 내내 비가 많이 내린다고 했다. 이후에 방콕에서 만난 Nav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빨래가 마르지도 못하도록 비가 내리 내렸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그 빗속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빗속에 있을 구실을 반드시 찾아서 돌아오겠노라 다짐했다.
떠나는 날은 늦은 저녁 비행기였다. 숙소 체크아웃을 한 뒤에 Nav의 방에 배낭을 맡겨두었다. 마지막까지 고마웠던 친구. 주말이라 일은 하지 않았지만, 그 소중한 날을 나에게 다 쏟아주었다. Nav은 물었다. 어디서 아침을 먹고 싶은지, 오늘은 무얼 하고 싶은지. 나는 말했다.
그냥 평소처럼 지내고 싶어.
그렇게 우리는 자주 가던 카페에 앉아 아침을 먹고 오후엔 낮잠을 잤다. 하늘은 때때로 어두워지긴 했지만 비가 많이 내리진 않았다. 비가 그친 틈을 타서 그와 마지막 저녁을 먹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그가 말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동네를 한 바퀴 돌아서 갈까?
그 말에 나는 문득, 그날 저녁이 생각났다.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려는 때에 그가 물었었다. 동네 구경 시켜줄까? 하고 나는 그 말이 고마우면서도 괜히 부담을 주는 것 같아서 머뭇거리며 슈퍼에서 간식만 사서 돌아가자 했다. 그도 살 것이 있다고 했지만, 그 친구는 미안해하는 나를 위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을 안다. 슈퍼에서 산 과자를 몇 개 안고 그의 오토바이 뒤에 올랐다. 벌써 깜깜해진 해변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애써 구경시켜 준다고 나를 데려와준 그 마음이 가장 기억에 남는 저녁이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나 보다. 알고 지낸 지 꽤 되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나는 다시 어두워져 오는 하늘을 보며 아이스크림을 사서 숙소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때 그 친구 말대로 한 바퀴 돌아볼 걸 그랬다. 비를 흠뻑 맞더라도 그 마음을 흔쾌히 받을걸 하는 후회가 남는다. 다음번에 그를 따라가야지. 아니 내가 말해야지.
우리 동네 한 바퀴 구경하러 가자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