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가 정말 공부에 도움이 될까?
누구나 중요하다고 이야기하지만, 막상 왜 중요한지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면 말문이 막히는 그런 토픽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인문학적 소양’, ‘창의성의 중요성’, ‘소통 능력’ 같은 것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독서’도 그런 토픽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아니 독서는 당연히 중요하지 않느냐.”고 반문하실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누구보다 독서의 중요성을 확신합니다. 사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거죠. 제 얘기는 ‘왜 중요한지 구체적으로 설명하기’가 꽤 어렵다는 것이죠. 흔히 언급되는 독서의 필요성을 한번 떠올려보겠습니다. 아마 떠올려지는 내용이 다들 비슷할 것 같은데요. 아마 ‘사고력과 비판적 판단 능력, 창의력, 공감능력이 길러진다.’ 등이 떠오르실 겁니다. 제가 chatGPT에 ‘독서의 필요성’으로 검색해도 거의 같은 내용이 나오네요.
그런데 한번 좀 까칠하게 생각해볼까요? 왜 책을 많이 읽으면 사고력이 길러진다는 걸까요? 어쨌든 생각할 거리를 접하게 되니까, 그에 대해 생각할 거리가 많아져서 생각의 힘이 길러진다는 걸까요? 일단 생각의 힘이란 것이 무엇인지는 나중에 따져보더라도, 많은 정보에 대한 노출이 중요하다면, 그 소스가 왜 하필 책이어야 할까요? 만화책은 왜 보지 말라는 거죠? 유튜브 영상이 오히려 정보의 양에서는 더 풍부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 독서만이 갖는 특별한 이점은 과연 무엇일까요?
구체적인 대답이 어려운 이유는 ‘책이라는 매체가 전달하는 정보의 특성’, ‘책으로 전달되는 정보가 우리의 두뇌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가 먼저 설명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현미가 흰 쌀밥에 비해 건강에 유리하다.’는 주장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현미의 영양 구성이 흰 쌀에 비해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현미가 가진 영양소가 구체적으로 우리 몸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 이해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부터 전직 뇌과학자로서 이 부분에 대해서 파헤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우리가 쓰는 용어의 정확한 의미를 먼저 명확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독서가 중요하다고 할 때,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한 중요성인지 구체화해야 합니다. 독서가 영향을 미치는 분야는 매우 넓기 때문이죠.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독서는 연애에도 매우 중요하더군요. 대화 주제가 좁거나, 사용하는 어휘가 저급하면 아무래도 이성에게도 저평가되는 것 같더군요. 하지만 일단 우리의 주된 관심 영역이 연애는 아닐 겁니다. 학부모로서 우리가 관심을 갖는 주제는 정확하게는 ‘독서가 학교 공부에 미치는 영향’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독서는 학교 공부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 걸까요?
자 그럼 다시 이 ‘학교 공부’라는 것을 또 명확히 해봅시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요? 일단 떠오르는 것은 당연히 ‘시험 성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는 것이죠. 그런데 시험은 test, 다시 말하면 ‘검사’입니다. 무엇인가를 검사한다는 것이죠. 다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몸 상태가 안 좋아서 병원에 가서 체온 ‘검사’를 했더니 40도가 나왔습니다. 이때 중요한 건 체온 자체인가요? 검사를 통해 나타나는 체온이라는 숫자는 신체의 건강 상태, 예를 들어 면역의 활성정도를 나타내기 위한 지표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말 체온이라는 숫자가 중요하다면 당장 찬물 샤워를 하면 되지 않겠어요? 다시 시험 점수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시험이라는 검사의 점수, 즉 성적이 진정으로 나타내는 대상은 뭘까요? 답은 학업 ‘역량(capacity)’입니다. 우리가 흔히 ‘실력’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이죠. 예를 들어, 수학 시험 점수 100점이 진짜 의미하는 것은 이 학생이 수학에 대해 갖고 있는 충분한 ‘역량’ 자체입니다. 물론 역량이 충분히 점수에 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수학은 정말 잘하는 친군데, 유독 시험에만 약한 그런 친구들도 종종 보니까요. 또 다른 예를 들면, “그... 왜 최근 영화에서 무당으로 나온 연예인 있잖아. 아... 그 김...누구 있잖아.” 그런 경우도 있죠. 대표적으로 ‘기억’은 있는데 ‘인출’이 안 되는 경우죠. 자, 그렇다면 이제 공부를 잘한다는 말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첫째, 특정 과목에 대한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고, 둘째, 이 ‘역량’을 시험 점수로 표현하기 위한 ‘인출’이 잘 된다는 것을 의미할 겁니다. 즉, ‘공부 = 역량 x 인출’의 공식이 성립하는 거죠.
그렇다면 역량과 인출, 둘 중 어느 것이 중요할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당연히 역량이 우선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역량이 있어야 이걸 인출해서 성적으로 표현을 하든 말든 할 테니까요. 그런데 다시 까칠해져 봅시다. 이 공부의 '역량'이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야 시험에서 100점을 맞으면 실력이 좋은 거지."라고 답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시험 성적은 역량을 표시하는 하나의 지표(index)에 지나지 않다고 위에서 먼저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큐 검사에서 받은 120이라는 점수는 한 사람의 지능을 나타내는 지표일 뿐, 이 지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주는 게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요. 그렇다면 우리가 보통 실력이라고 부르는 공부의 역량, 그것의 본질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