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학교 학생 허경 기자(생각이 운명을 바꾼다)
다음날, 나는 훈련 목표 장소로 부산 남포동 지하상가를 선택했다. 이곳은 대략 500미터 길이로, 중간 중간에 분수대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잠시 머물며 커피를 마시거나 약속을 잡고 기다리는 만남의 장소로 유명했다. 그 분수대 앞에 서서 훈련을 할까 생각했다가, 더 자극적이고 집중적인 훈련을 위해 이동하면서 진행해 보기로 결정했다. 당시 부산 남포동의 주말 풍경은 나처럼 사람들 앞에 서서 스피치 훈련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몇 개의 유명한 화술학원에서 연습 삼아 시행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회성의 훈련으로는 효과가 없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 시간만 어떻게든 버티자, 라는 마음가짐으로는 결코 얻어지는 게 없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과의 싸움으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난 내 자신을 믿기 시작했다. 책을 보고 독학으로 깨닫게 된 훈련이지만 난 변할 자신이 있었다.
나는 남포동에서 유명했다. 100m 이상 떨어진 곳에서 나의 강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사람들은 구경 나오기 일쑤였다. 처음에는 당연히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곧 학교나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환경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티는 만큼 효과도 클 것이고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낼 수 있으리라.
남포동 지하상가를 걸어가면서 훈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분수대에 접근하면 그곳에서 약 30분 정도 머물며 훈련을 한다. 훈련이라는 게 고함만 지르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곳에 머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장사하는 상인들과 소통하며 친밀한 관계를 맺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신기하니 서커스마냥 너도나도 모여들지만, 이내 무관심이 된다. 간혹 짜증도 튀어나온다. 그래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 위해 꽤나 노력이 필요했다.
외치는 내용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명언을 많이 사용했다. 교과서에는 나와 있지 않은 자기암시의 내용은 성공학 도서에서나 나올 법한 잠재의식, NLP 심리학을 참조해서 만든 문장들이었다. 물론 지금은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자기암시’ 관련된 수십 개의 문장을 알아낼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인터넷이 보급되지 않은 상태라서 청소년이 명언을 알기란 매우 드물었다. 나는 현재도 자기암시를 위해 이 문장을 매일 읊는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인격이 바뀌고, 인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
자갈치역 지하상가를 걸어가면서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의 명언을 외치고 또 외쳤다. 나를 신기한 듯 쳐다보는 행인과 이 녀석 왔구나 싶은 표정의 상인들이 나를 주목했다.
“나는 행복하다, 남호야! 너는 정말 대단하고 휼륭하다! 나는 모든 면에서 점점 좋아지고 있다! 나는 오늘도 나의 미래를 위해서 끊임없이 훈련하고 노력하고 있다!(생략)”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자신을 부산대학교 신문사 기자라고 소개한 머리가 긴 대학생은 나에게 이런 행동을 왜 하는 건지 물었다.
“제가 성격이 너무 소심해서 변화하려고 훈련하는 겁니다. 일종의 자신감 훈련인데요. 이 훈련을 통해 의식을 바꿀 수 있고, 새로운 습관이 형성된다고 해서 노력 중입니다.”
“혹시, 이런 내용은 어떤 교재에 나와 있나요? 어디 학원 소속이시죠?”
“저는 학원 소속이 아니고요. 책을 보고 독학으로 훈련하는 중입니다.”
“단순히 책만 보고 따라 했다고요? 이야! 정말 대단하네요! 나중에 꼭 무언가 하실 분 같아요! 언제 시간 나면 부산대학교에 들러주세요. 꼭 인터뷰를 해서 신문에 싣고 싶습니다.”
그 대학생 누나는 자신의 수첩 한 장을 찢어서는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고는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꼭 연락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덕분에 더욱 자신감이 생겼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시대가 왔다! 나는 믿고 있다! 나는 반드시 이 소심증과 대인공포증을 뿌리째로 뽑아내고야 말 것이다!(생략)”
나는 훈련을 계속하면서 지하상가 분수대 앞까지 왔다. 훈련을 잠시 멈추고 아이스크림을 하나 먹은 후 다시 시작했다.
“부산 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17살 이남호라고 합니다! 저는 오늘도 이곳 분수대 앞에서 자신감을 채우기 위해 이렇게 나왔습니다. 저는 성격이 매우 소심하고 감정 표현을 잘 못합니다! 이번 기회에 혹독한 훈련으로 이 소심증을 뿌리째로 뽑아 20대에는 멋진 삶을 살고 싶습니다! 여러분! 저는 방학 기간에 매일 이곳에 나와 하루 8시간 이상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길거리에서 저를 만나시면 아는 체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말에 사람들이 마구 웃었다. 여기저기서 박수 소리와 휘파람 소리도 들려왔다. 너무 기뻤다. 그리고 내뱉은 대로 나는 여름 방학 내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곳에 나와 훈련을 했으며, 사람들의 환호를 받았다. 내 변화의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어서 개학이 되어 같은 반 친구들은 물론 전산부 서클의 선배와 동기들에게 당당한 내 모습을 보여 주리라 각오했다.
‘그래, 남호야.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자꾸 지나간 과거를 떠올리면 미래로 전진할 힘이 생기지 않아. 이젠 과거를 잊고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자. 이제부터 변하는 거야. 지난 실수 역시 훨훨 털어 버리고,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내 감정을 표현하자. 잘할 수 있어, 남호야.’
개학 후, 나는 다짐대로 전산부 서클에 가서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당당하게 인사했다. 그들은 나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했다.
“남호야, 너 좋은 일 있냐? 얼굴이 밝네.”
“아, 형님. 저 원래 이렇게 얼굴이 밝은 놈입니다.”
“하하. 그래, 맞아. 너 학기 초에 뺀질뺀질했지. 다시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니 좋다.”
여름 방학 동안 깨달은 게 있다. 결국 모든 부정적인 원인은 나 자신에서 비롯된다는 것이었다. 첫 미팅 때 내가 훈련 중이라는 것을 아이들에게 고백한 것에 극한의 두려움을 가졌었다. 나를 절대 정상적으로 보지 않겠지, 라는 걱정에 밤에 잠을 이룰 수도 없었다. 그러나 내가 비정상적이지 않음을 인정하고 변화하려 노력하니, 되레 자신감이 생겼고 확신에 차게 됐다. 마음도 한결 좋아졌다.
나는 즐겁게 2학기 생활을 시작했다. 선배나 친구들 집에도 놀러가면서 인간관계를 조금씩 맺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속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친구들과 나의 생각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가벼운 대화도 자주 주고받고, 서로 환하게 웃으며 장난도 곧잘 쳤다. 하지만 나의 대화는 항상 진지했다. 그런 내가 부담스러운지 나에게는 장난을 걸어 오지 않았다. 나도 그들과 함께 장난 치고 놀고 싶은데 그들은 나에게 마음의 문을 닫은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인지하지 못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느껴지자 친구들과의 친밀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똑같은 말을 전달하더라도 누구에게는 장난기 가득한 말투를 건넨다면 나에게는 딱딱하고 진지한 말투로 건넸다. 내가 부담스러운가? 아니면 지난 캠프 때 같이 놀러가지 않아서 나의 존재가 파묻힌 것인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또한 변해 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때는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첫 단추가 잘 끼워졌으니 이다음에도 쭉 잘 끼워질 것이라고 믿었는데, 이것은 내 오산이었다.
전산부는 아침 일찍 등교해서 전산실 청소를 하고 가끔 회의도 진행한다. 하지만 나는 신문 배달을 한 후에 등교하기 때문에 사정을 아는 선배들은 나를 이해해 주어서 아침 청소나 회의에 참석한 적이 거의 없었다. 나만 특혜를 받으니 동기들과의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누구는 일찍 와서 청소하고, 누구는 편하게 늦게 오고…. 물론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단체 생활의 규칙을 어겼기 바람에 나의 입장이 난감해졌다.
전산부에 대한 긍지가 높았지만, 탈퇴까지 생각할 정도로 고민이 많았다. 그전에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후 시간은 최대한 서클 활동에 참여하려고 노력했다. 12월에 있을 학예전 행사 때 서클 단체 작품을 완성해야 했다. 하지만 결심도 잠시뿐, 나는 10월이 지나면서 경제적으로 힘들어져서 오후까지도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몇몇 선배에게 사정을 말하고 어렵게 승낙을 받았으나, 나의 행동은 본의 아니게 동기들과 다른 선배들에게는 피해를 주는 꼴이 되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전산부 서클을 생각하면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애초에 가입하지 말 것을. 이 셔클에 꼭 가입하고 싶었던 아이들이 분명 있었을 텐데. 후회가 밀려오자 이제는 같은 학년의 아이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느낌까지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전산실에 가면 동기들이나 선배들과의 관계가 어색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는 거다. 처음에는 조금 어색한 정도였으나 나중에는 점점 갈등이 고조되었다.
12월 초순경, 2학년 선배 장(長)이 나에게 면담하자고 했다.
“남호야, 학예전 때 작품을 제출해야 하는데 넌 왜 아무런 소식이 없어?”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아르바이트 때문이야?”
“죄송합니다.”
“아무리 사정이 있더라도 서클은 단체 생활인데, 네 할 일은 해야지. 전산부 다른 아이들은 아침에 일찍 나오고 활동도 열심히 하는데 너만 빠지면 곤란하지.”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 학예전까지 서클 활동을 열심히 하겠습니다.”
지금이라도 다르게 생각하자.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인격이 바뀐다고 했다. 그러면 내 운명이 바뀐다. 나는 내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나는 이날을 계기로 학예전을 한 달 남기고 최선을 다했다. 물론 아침은 여전히 열외된 상태였다. 전산부에서의 단체 생활에 특혜를 받은 이는 내가 유일할 것이다. 30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부분에 대해서 정말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한다.
학예전 행사가 끝나고 동기들, 선배들과 뒤풀이를 갔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혼자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같이 고생하고 함께 행동해야 서로에게 더욱 의지하고 배려를 할 텐데…. 나는 전산부 서클에 가입한 후 1년 동안 단체 생활은 이름뿐이었지, 공동체라는 의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그러다 보니 동기들도 내가 서클 활동에서 불참하면 ‘남호는 또 빠지나 보다.’ 하고 마는 것 같았다.
매우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관계에서 사람과 소통하며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훈련으로 해결될 수 있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훈련은 자신감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지만,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자아성을 극복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심적으로 매우 힘들고 고민이 많았다. 서점에 가서 화술, 대인관계에 관련된 책을 읽어도 그저 이론에 불과했으며, 막상 사람들 앞에 서면 그 이론들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나는 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어려운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원인은 바로 첫 단추를 잘 못 끼웠다는 것이었다. 단체 생활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움직였다. 고등학교 입학 후 전산부 서클에 가입했지만,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단체 생활에서 제외되었다. 어떠한 이유라도 약속된 룰은 지켜야 했는데, 난 내 사정을 핑계로 예외되었다. 그것이 동기들과의 사이가 벌어지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 후에는 이를 깨닫고 단체 생활을 열심히 했으나 별반 달라지는 게 없었다.
단체 생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인가? 고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갈등의 깊이도 점점 깊어짐을 실감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으로 사랑의 전화, 청소년 상담실을 찾아가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하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모두들 원론적인 이야기만 건넨 뿐이었다.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지 정말 알고 싶었다. 아무리 훈련을 많이 하고 노력해도 그 당시에는 전산부 서클의 선배, 동기들과의 관계에 큰 변화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