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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임계점 한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루에 수십 번, 수백 번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남들은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조언하지만 인정할 수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변화했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서면 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가? 사실 두려웠다. 나는 이대로 평생 살아야만 하는 느낌이 들었다. 변화의 끈을 놓아야 하는가?

나는 오랜 생각 끝에 1990년대 당시, 성격 변화 분야에서 주름을 잡고 있었던 전) 한국화술학원 김한규 원장이 떠올랐다. 그길로 무작정 학원을 찾아가서 그에게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는 다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진지하게 나의 말을 경청해 주었다. 그때의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 무언가에 묶여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정말 알고 싶었다. 답을 찾아내고 싶었다.

  

  그날 저녁,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그리고 행하려면 도움이 필요했기에 얼마 전에 취업한 막내 누나를 내 방으로 불러 대화를 시도했다.

“누나, 할 말이 있어. 나… 학원 좀 보내줄 수 있어?”

“학원? 무슨 학원?”

“성격을… 변화시켜 주는 학원인데….”

여기까지만 말했는데도 누나의 표정은 이미 화가 나 있었다. 내가 중학교 시절부터 길거리에 나가 훈련하며 돌아다니는 걸 누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제 그만 하고 공부에 전념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학습학원이 아닌 화술학원을 등록시켜 달라고 하니, 누나 입장에서는 기가 찰 만도 했을 거다.

“누나, 나… 내 성격을 변화시키려고 그동안 노력 많이 했는데 이제 한계를 느껴. 아무리 노력해도 안 돼. 너무 답답하고 미쳐 버리겠어. 가만히 있으면 숨 막혀 죽을 것 같아. 벌써 2년째야. 나 너무 힘들어…. 나 좀 도와줘, 누나….”


  처음에는 누나에게 사정하던 말투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억울한 말투로 바뀌었다. 쌓였던 울분이 토해져 나왔다.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누난 모를 거야! 나 중학교 졸업식 날 혼자 사진 찍었던 거 기억해? 그게 다 이 답답하고 소극적인 성격 때문이라고. 이 성격을 너무 버리고 싶어서 중학교 때 학교 앞에서 미친 짓 하다가 사회 선생님한테 오해받아서 징계당할 뻔하고! 내가 얼마나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를 거야! 나도 공부에만 열중하고 싶어. 하지만 이 성격을 지금 고치지 않으면 내 미래는 없을 것 같다고!!”

“…….”

“제발, 누나! 나도 사람답게 살고 싶어…. 처음이지 마지막 부탁이야. 학원만 보내주면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을게. 누나….”


  내 이야기를 모두 듣고도 누나는 돈이 없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내 방을 나갔다. 나는 그대로 방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렸다.     

일주일 후, 10살 나이 차이가 나는 결혼한 작은누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누나는 목이 멘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러곤 막내 누나에게 전해 들었다며,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냐고 나를 위로했다. 흐느끼는 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내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남호야 많이 아팠지. 그동안 도움이 못 되어서 정말 미안해. 네가 가고 싶어 하는 학원에 등록해. 누나랑 막내 누나가 학원비를 마련해 줄게. 미안하다, 남호야. 네가 바라는 꿈을 꼭 이루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날 저녁에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막내 누나가 나를 불러서는 학원비라며 흰 봉투를 건넸다. 나는 너무 감동받아서 아무 말도 못한 채 봉투만 겨우 받았다. 그러곤 다락방에 올라와 색종이를 꺼내 짧게나마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To. 막내 누나에게.

누나, 날 믿어줘서 정말 고마워.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을게.

누나들의 정성을 봐서라도 나! 꼭! 소심증을 뿌리째 뽑아서 사람답게 살 거야.

믿어줘서 다시 한번 고마워.

-1992년 12월 남호가-     



다음날 아침, 출근하는 누나를 불러 세우고 편지를 건넸다. 그러자 누나는 안쓰러운 눈빛을 했다가 이내 희망적인 미소를 짓고는 학원에 열심히 다니라고 격려해 주었다. 나는 아직도 누나들의 이 은혜를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막내 누나와 작은누나의 도움으로 거금을 내고 학원에 등록했다. 한데 가장 충격적인 것은 학원생의 대다수가 어른이라는 점이었다. 어른들도 나처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1990년대 당시에는 직장인들 사이에게 한국의 유교 사상을 깨는 움직임이 확산되었다. 예전에는 체면과 자존심을 중시하던 직장인들이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힘들어하면서, 마음의 여유와 행복을 찾기 위한 마인드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어 시작된 열풍이었다. 전국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 혁신에 대한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내가 등록한 학원도 수강생이 1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다. 그들은 새로 들어온 나를 격하게 반겨주고, 관심도 가져주었다.

  

  화술학원을 다니면서 하루하루가 행복했다. 나 혼자서 실천하던 야외 스피치 훈련을, 학원을 같이 다니는 수강생들과 조를 나눠서 정기적으로 함께했다. 조를 짜서 처음으로 야외 스피치를 나가는 날, 나는 조원 중에 나이가 지긋하신 아저씨께 이것저것에 대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원장님은 함께 나가지 않고 강의와 조언 정도만 해주고, 등록 후 보통 한 달은 지나야 야외 훈련을 나갈 수 있는 배포가 생긴다고 했다. 그리고 먼저 등록하여 야외 훈련을 해온 수강 선배들의 훈련 태도를 보고 따라 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해 주었다.


  물론 나는 이미 수년째 독학으로 훈련 중이었기 때문에 전혀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만만했다. 단지 그들에게 내가 오랜 기간 훈련을 해왔음을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내가 포함된 조는 서면 지하상가로 향했다. 날 보는 어른들의 표정은 고생 한번 해봐라,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지하상가에 도착하자 학원에 등록한 지 한 달 된 아저씨 한 분이 시범을 보이겠다고 나섰다.


  “여러분! 저는 소심하고 내성적이라서 항상 손해를 보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성격을 변화시키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섰습니다! 꼭 극복하겠습니다! 저에게 용기 내라고 박수를 쳐주십시오!”


  그때 옆에 있던 다른 아저씨가 나를 바라보며 넌 초보자이니 가장 기초적인 훈련부터 시작하라고 말했다. 순간 승부욕이 발동한 나는 조장에게 지하상가를 걸어가면서 스피치 훈련을 해보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조장은 의구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잘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앞을 보고 걸으며 힘차게 외치기 시작했다.


  “이 세계를 품에 안고 싶은 나의 가슴아! 야망아! 저기 벌겋게 불타오르는 나의 태양에게 맹세하노라! 나는 반드시 이 소심증을 뿌리째 뽑고야 말 테다! 나는 확신한다! 나는 확고부동하다!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닥쳐도 나 이남호는 반드시 해낼 수 있다!”


  익숙한 나의 목소리에 상인들은 가게 밖으로 나와 나를 주목했다. 나는 그들과 일일이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지으며 더욱 강하게 외쳤다.

“나는 점점 좋아지고 있다! 나는 오늘보다 내일 더 좋아질 것이며! 앞으로 하는 일마다 모든 일이 술술 풀릴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같은 조의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저 멀리 구석에 서서 나를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 나의 당당한 모습에 당황해서 자리를 피한 듯했다. 그들은 나의 모습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때, 하교 후나 학원을 마치고 집에 가기 위해 정류장에 서 있으면 그렇게 내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일과를 이야기하며 즐겁게 집으로 돌아가는데 나 혼자만 그러지 못했다. 함께 모여서 수다를 떠는 그들이 부러웠다. 나도 저들처럼 여유 있게 공부도 하고 같이 놀고 싶었다. 그래서 밤마다 변화된 미래의 내 모습을 상상하며 기대에 찬 마음으로 잠을 청하곤 했다. 그렇기에 이 기회가 너무도 소중했다. 나는 훈련을 통해 기필코 변화해야 했다. 제자리걸음이나 과거로 돌아가는 일 없이 변화된 모습으로 영원토록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학원에 다니는 것이 즐거워졌다. 원장님의 강의도 너무 좋았지만,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재미에 푹 빠진 것이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무척 외로웠겠지. 사람이 사무치도록 그리웠겠지. 그렇기에 누나, 형, 아저씨들과 함께 부산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대중 스피치 훈련을 하고, 맛있는 음식도 사먹고, 서로에게 조언도 해주는 그 시간이 너무 설레고 행복했다. 그때의 기억이 지금의 내 재산이 되었다. 나는 지금도 산에 오르거나 바닷가를 가거나 사람이 붐비는 곳에 가면 습관적으로 훈련을 즐기고 있다. 이런 훈련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신 신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신이 내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당사 17세, 부산 서면 태화쇼핑 앞에서 스피치 훈련 중인 나의 모습>


  학원에 등록한 지 일주일이 지나자 어른들은 내게 관심이 많아졌다. “조그마한 게 용기 있네.”, “참 대단하다. 내가 너 나이였다면 세상에 두려울 게 없겠다.” 등의 말을 건네며 나를 부러워했다. 덕분에 나는 아침이 되면 가슴이 설레었다. 왜냐하면 학원 사람들을 만나러 학원에 가기 때문이다. 한 시간 정도 일찍 가서 사람들을 기다릴 정도로 학원에 가는 일은 너무 즐거웠다.



  여러 아저씨들에게 성공학 도서나 자기변화에 관한 심리 도서, 그리고 화술 도서를 추천받아 틈틈이 읽고 공부했다. 그때 읽었던 책들이 김양호, 조동춘 박사의 《화술과 인간관계》 시리즈,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지그 지글러의 《정상에서 만납시다》, 조셉 머피의 《잠재의식의 힘》 등이었다. 물론 그전에 이미 읽었던 책도 있었지만, 자기계발서는 반복해서 읽어도 매번 깨달음을 주었기에 반복해서 읽었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수료식 날이 다가왔다. 마지막 수업에 출석하자 형, 누나, 아저씨들이 나에게 몰려왔다. 그들은 매우 섭섭해했다. 나는 그들의 주소를 받아 적고는 꼭 연락하겠다고 약속했다.

한 달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형과 누나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 이내에 답장이 도착했다. 그들의 편지 내용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모두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바로 “남호는 꼭 사랑받을 거야.”, “남호는 사랑받기 위해서 태어났어.”,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사랑해라.”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내가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친구들에게 감정 표현도 제대로 못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는데 내가 정말 사랑받을 수 있을까? 난 말주변도 없고 매력도 없고 키도 작은데. 여태껏 칭찬받거나 사랑을 받은 기억이 전무한데…. 과연 내가 진정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존재인가? 하지만 형과 누나들이 편지로 건넨 말들은 진심이 느껴졌다.         

                


<서울, 대전, 대구, 광주, 강원, 제주도 등등 전국구에서 훈련 받기 위해 온 누나와 형들 >


 

그동안 나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만 했는데,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말이 실감나지 않았다. 정말 내가 그런 사람일까? 나도 해당될까? 이 한 마디에 나는 환한 미소를 짓고, 지난 마음속에 있던 덩어리가 떨쳐 나가는 것처럼 가슴이 시원하고 편안했다.

‘그래, 나도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야. 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해! 바로 이거구나! 이것을 내가 몰랐구나! 그래서 여태 내가 변화가 없었구나!’라며 

손뼉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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