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물 Mar 02. 2024

얘도 히어로라고?

히어로와 범죄자 사이 그 어딘가 







'데드풀', '베놈'부터 '비질란테', '살인자 0 난감'까지. 요즘은 모범답안처럼 느껴지는 기존의 히어로보단 안티히어로, 혹은 다크히어로라 부를만한 이들이 인기이다. 더 범위를 넓히자면 '약한 영웅'이나 '범죄도시', 그리고 최근 넷플릭스에 나온 '자완'도 포함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흐름은 부패된 기존 권력과 공권력에 대한 불만, 보수적이고 융통성 없는 행정처리에서 느끼는 답답함, 사회 병폐들을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단의 부재 등이 합쳐진 결과로 보인다. 이들은 확실히 우리에게 상쾌함을 선물해 준다.





따라서 이들은 공통적으로 즉각적이다. 문제가 있으면 바로 해결한다. 이들의 행동에 제약을 거는 기존 규칙과 규율을 가뿐히 뛰어넘는다. 그런 의미에서 폭력은 그들의 돌파구이다. 이렇게 말하면 이들이 폭력배와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우린 이들을 영웅이라 부른다. 비록 이들이 정의로운 인물도 아니고, 합법적인 수단을 사용하지도 않지만 정의로워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범죄자와는 달리 폭력 행사의 대상이 그래도 될 인물-범죄자, 정치권력자-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폭력은 철저히 민간인을 피해 간다. 그래서 그들의 폭력은 정당하게 응원받는다. 





같은 이유로, 이들이 영웅이라 불리는 것에 우려의 시선을 던질 수도 있다.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영웅들은 '브이 포 벤데타'처럼 신념에 찬 비장한 인물이 아니다. 되려 평범하고 흔한 인물이다. 다시 말해 확고한 신념에 따라 행동하기보단 주먹구구식의 자기 합리화로 움직이는 보통의 사람과 똑같다. 심지어 결과적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즉각적인 방식은 대부분 장기적으로 보았을 땐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행위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가깝다.  무엇보다, 이들이 보여주는 정의로운 결과는 주로 응징과 보복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 이 모습은 기원전 1750년 경에 존재했던 함무라비법전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법칙을 떠올리게 한다. 





같은 이유라도 어느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이들은 영웅이 될 수도 있고,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들 중 일부는 별 무리 없이 '히어로'로 인정받는 한편, 일부는 '히어로'로 명명되는 것에 논쟁이 발생한다. 이들의 행동이 범죄의 미화인지, 영웅적인 용감한 행위인지 놓고선 말이다.  내가 생각하기엔 영웅의 판단여부는 이들의 행위가 가져오는 파급력인 것 같다. 단발성으로 끝난다면 이들은 영웅이 될 수 없다. 이들의 행동이 계기가 되어 사회적 변화가 일어나야 비로소 영웅이라 불릴 수 있다. 





그 이유는, 폭력이 가장 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직접 심판한다는 거, 꽤나 멋져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쉽사리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런 거라면 법과 판관이 있을 필요가 없다. 그러니 누군가를 심판하고 벌하는 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해 주는 대가로 폭력을 독점하고 있는 국가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그러니 만약 사회에서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느껴진다면 그 폭력을 직접 행사함으로써 그 의무를 대신 지기보단 제대로 작동되게 만드는 것이 더 영웅다운 일이다. 물론, 지지부진하고 고통스럽고 힘겨운 길이 될 것이다. 때론 길의 끝도 보이지 않아 자신이 잘 가고 있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당연한 것이다. 어느 나라건, 어느 사회건 법의 엉덩이가 가장 무거운 법이다. 방정스럽게 매번 바뀌는 법을 대체 누가 믿겠는가? 어제의 위법이 오늘의 합법이 된다면 말이다. 그러니 폭력은 가장 쉬운 길일 수밖에 없다. 





또한, 폭력은 가장 위험한 길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하는 폭력은 정당해 보이고 멋있어 보여서 더 위험하다. 우리 사회는 문명화되면서 폭력성이 줄어드는 방향으로 나아왔다. 로마제국 시대엔 콜로세움에서 순전히 재미를 위한 혈투가 벌어졌으며 근대초 유럽에선 질투로 인해 목을 베기도 했었다. 이렇게 까지 멀리 갈 것도 없이 2000년대 초 한국에선 가정과 학교와 군대에서의 폭력은 아주 '정당'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사회에서 폭력이 제거된 건 도덕적인 이유가 아니라 '폭력을 좋지 않게 보는 시선'때문이었다. 반대로 말하면, 폭력이 미화될수록 사회에서의 폭력성 역시 증가할 것이다. 그러니 폭력을 택하는 건 사회가 더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가는 것이다. 그러니 폭력은 가장 위험한 길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장기적으로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면 이들의 행위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퍼포먼스에 불과하다. 장기적으로 사회가 변화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사회의 문제가 실질적으로 해소된 듯한 눈속임에 불과하다. 그러니 단순히 범죄자를 응징하는 것만으로 영웅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면, 그건 제어하지 못한 폭력성에 대한 자기 합리화는 아닐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이전 07화 나도 금쪽이가 될 수 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