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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 Feb 24. 2024

나도 금쪽이가 될 수 있을까?

이미 다 자라 버린 어른이어도









 나는 내가 넘치게 사랑받아왔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종종 내게 사랑한다고, 비록 가진 게 많지 않아 남들처럼 주진 못해도 그 이상으로 사랑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비록 고집은 세더라도 어른들의 말을 철썩 같이 믿는 아이였기에 온 진심으로 그렇게 믿어왔다. 그렇게 성인이 되었다. 





그 무렵,  심리학과 아동훈육법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이 공유되었다. '가스라이팅'이 대중적 지식이 되고, 사회에서 '어른아이''금쪽이'(지금 사용되는 의미로)라는 말이 확산되었다. 그렇게 내가 믿어왔던 것들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엄마와의 대화는 왜 항상 내가 혼이 나서 울어야 끝이 났을까, 대부분 엄마는 내가 말을 안 듣는다고, 고집이 세다고, 말투가 왜 그러냐고, 같은 말을 몇 번이나 하게 하냐고, 그런 사소한 이유로 혼을 내셨다. 끝끝내 종아리나 손바닥을 회초리로 때리기도 하셨다. 나는 줄곧 모두 내가 문제여서 그랬다고 생각했다. 다들 그렇게 맞으면서 크는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 나는 정말 문제가 많은 아이여서 매일매일 혼났던 걸까? 



아니다. 나는 성인이 되어 친구들의 어린 시절을 듣고 충격받았다. 맞지 않고 자란 아이가 더 많았다. 내가 맞아야 했던 심각한 문제들은 다른 친구들에겐 사소한 문제 축에도 못 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정말로 고집이 세다고 믿었는데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건 엄마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내 어린 시절 모든 경험과 내가 나의 특징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은 산산조각 났다. 내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새로 해석 돼버렸다. 그렇게 나는 방치된 아이, 또는 어른스러움을 강요받은 아이로 전락했다. 



나는 내 어린 시절을 빼앗겼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나를 사랑한 건 맞지만 그 방식이 확실히 잘못되었고, 그건 모두 엄마의 탓이라 여겼다. 그래서 나도 엄마의 가장 소중한 것, 사랑하는 것을 빼앗기로 했다. 나는 엄마에게서 나를 빼앗기로 했다. 그렇게 엄마와 관계를 단절했다. 꽤 긴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그런데, '나도 몰랐던 걸 엄마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가스라이팅이나 어른 아이 같은 용어들이 사회 전면으로 드러난 건 내가 성인이 될 무렵부터였다. '금쪽상담소'라는 방송이 인기를 얻은 것도 그 후에 이야기다. 법도 만들어지면 그 때야 비로소 효력이 발휘되며 소급적용은 매우 특수한 사례에만 해당된다. 지식도 마찬가지 아닌가? 시간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고 시대가 변하면서 새로운 기준과 잣대들이 만들어진다. 그러니 그때는 맞던 게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틀리던 게 지금에 맞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기억하고 있다. '여자가 50kg 넘으면 그건 여자가 아니지'라고 말하던 선생님의 말씀을. '주식하면 삼대가 망한다'라고 말하던 친척어른의 말씀을. 요즘에 누가 몸무게로 논하는가, 인바디로 논하면 논했지. 요즘 누가 주식하는 사람을 보고 손가락질하는가, 저금리상황에 저축하는 사람을 미련하다 욕하면 욕했지.



뿐만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도 변화한다. 예전에 사랑의 표현이라 여겨졌으나 지금에 이르러 '도착증' '집착'같은 정신병이나 '스토킹'같은 범죄행위로 분류된 것도 더러 있듯이 말이다. 사랑의 매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그때는 옳다고 여겨졌던 사회적 잣대에 따라 행동했던 걸, 지금 바뀌어버린 기준에 따라 다시 재단할 수 있을까? 





엄마는 늦둥이로 태어나 자라셨다. 이미 마흔이 훌쩍 넘었던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지나가다 생긴 아이라는 이유로 엄마의 이름을 '지나'라고 지으셨다. 워낙 옛날 분이셔서 엄마가 잘못이라도 하면 회초리도 없이 손과 주변의 가재도구로 마구 때리셨다고 했다. 험한 욕도 종종 들으셨다고 했다. 그땐 그런 게 당연한 시절이었다고. 그렇게 엄마는 엄마가 되었고, 내 이름을 아주 비싸고 좋은 작명소에서 지어 오셨다. 내게 정해진 회초리로 손바닥이나 종아리만 때리셨다. 욕은커녕 거친 말조차 하지 않으셨다. 나는 엄마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해서 빼앗으려 했는데 엄마는 빼앗겨서 내겐 그런 경험을 겪지 않게 하고 싶었나 보다. 이젠 알겠다. 그건 엄마의 최선이었다.



내가 나를 금쪽이라 부를 거라면 엄마도 금쪽이라 불러야겠지. 나만 소급적용할 게 아니라 엄마까지 소급적용해야 합당할 테니. 사회는 시간이 흐르면서 복잡해지고 있고, 아마 앞으로 계속해서 더 복잡해질 것이다. 새로운 개념들이 새로 태어나는 만큼 기존의 정설들은 먼지 묻어 사라질 것이다. 분류 카테고리는 끝도 없이 갈래갈래 뻗어 나갈 거고, 사회의 이면에 있는 것들은 점차 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사회의 눈은 점차 미시적인 부분까지 가닿을 것이며 우린 아는 게 더 많아질 것이다. 아는 게 늘어나는 만큼, 얻지 못한 것을 더 많이 인지하게 될 것이다. 



증가하는 아동훈육과 아동기에 관한 지식을 토대로, 이미 어른이 된 금쪽이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 기억을 되짚어본다. 그러다 자신이 가진 문제의 뿌리를 찾아낼 수도 있고, 또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한 사람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그때 알았으면 좋았을 거라 아쉬워하거나 아예 몰랐다면 더 좋았을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 부모가 된 사람들은 이전의 잘못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다. 그 아래 자라는 아이들은 조금 더 아이답게 자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더 이상 '금쪽이'라느니 '어른아이'라느니 하는 말에 붙잡혀 '어른'인 나를 방치하지 않으려 한다. 과거에 붙들려 현재를 괴롭힐 이유는 없으니. 나는 엄마가 최선을 다해 키웠으니 이젠 내가 나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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