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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 Feb 17. 2024

우린 가족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빠에게, 아빠가 너무 어려운 딸이 











 우리 아빤 좋은 아빠가 아니다. 좋은 남편도 아니었고, 좋은 아들도 아니었다. 좋은 친구도 아니었고, 좋은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아픈 할머니의 병원비를 핑계 삼아 친구들에게 돈을 빌렸으니까. 그렇게 커진 빚을 감당하지도, 사실대로 말할 용기도 없어서, 죽을 생각도 없었던 주제에 그런 메시지를 보내고 잠적했던 사람이니까. 꼬박 하루 내내 아빠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걱정하게 만든 사람이고, 빚쟁이들을 피해 친척집에 얹혀살게 만든 사람이니까. 그러니 나는 이유가 있다. 아빠를 사랑하길 그만 둘 이유,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이유.





 그런데도 나는 아빠를 이해하길 멈출 수 없다. 일방향으로만 뻗어나가는 물음도 걷어낼 수 없다. 아빤 어떤 사람이었어? 아빤 어떤 아이였어?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떻게 그렇게 어린 나이에 가정을 꾸렸던 거야? 그리고 왜 그랬던 거야? 왜 엄마랑 나를 그렇게 무책임하게 버려버린 거야? 엄마가 싫었던 거야, 내가 싫었던 거야, 아니면 집이라는 게, 가족이라는 게 모두 싫었던 거야? 나를 사랑하긴 했어? 나를 생각하긴 했어? 나를 걱정하기는 했어? 아주, 아주 조금이라도 말이야. 아쉽지는 않아? 아빠가 여기 있었다면 내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같이 추억을 만들 수 있었을 텐데. 아빠가 놓아버린 그 시간들이 아깝지는 않아? 나는 매번 돌아오는 연휴에 지지고 볶으면서도 함께 시간을 보내는 다른 가족들을 보면 너무 부러운데, 아빠도 그래? 아빠는 안 그래?





답을 줄 사람이 없어서 나 홀로 생각해야만 했던 시간이었다. 아빠가 집을 버린 이유에 대해서 계속, 계속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도통 아빠가 미워지질 않아서, 설령 나를 버렸다 해도 놓을 수가 없어서, 아직 아빠를 사랑해서, 그래서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어서. 그렇게 짧고 특별할 것도 없었던 아빠와의 시간을 닳도록 곱씹었다. 아빠에게 했던 말, 같이 먹던 밥, 시답잖은 장난과 농담들, 아빠의 표정과 반응들, 아빠가 자주 하던 습관과 사소한 행동들, 일상들을. 나는 내 기억 속 아빠에게서 이후 아빠가 집을 떠날 거라는 어떤 단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내가 아빠에게서 사랑받았다는 증거만 가득했으니까. 나는 그걸 사랑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아버렸다. 아빠는 모르는 사람에 가깝다는 사실을. 내가 기억하고, 알고 있는 아빠의 모습은 철저한 단면이었다. 내가 태어난 이후와 집이라는 시공간의 좌표가 명확하고, 철저히 내 시선에서만 바라본 그 일면밖에 나는 모른다. 나는 아빠가 좋아하는 과자는 알아도 아빠의 삶의 작은 조각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아빠가 너무 어렵다. 그렇게 아빤 내게 너무도 어려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만약 아빠와 내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이지 않았더라면 서로를 이해시키기 위해 좀 더 노력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에드리 프롬이 말하길, 사랑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나는 사랑의 상대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의 방법이다. 그러니까 우린 모두 적절히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상대만 정해지면 사랑에 묶인 모든 문제는 해결된 듯 굴어버린다는 거다. 아마 그래서 인가보다. 우리가 가족을 사랑하면서도 때론 더 잔인하게 구는 건. 우연으로 만난 사람들이 가족이 되면 서로 사랑하는 게 당연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의 방향이 확고부동하게 굳어지면 우린 사랑에 대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었다고 생각해 버린 채로 적절히 사랑할 방법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부적절하게 전해지는 마음은 때론 잔인한 폭력이 되고, 낫지 않을 상처가 되고, 불필요한 비난이 되고, 떠나야 할 확실한 이유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지 못한 채로. 



같은 말이라도 누군가는 가족이기에 입을 다물 수도 있고, 누군가는 가족이니까 마음 놓고 입을 열 수도 있다. 같은 마음이라도 누군가는 가족이라면 말을 안 해도 알아줄 거라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가족이라도 말을 해야 아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같은  일이라도 누군가는 가족이라면 이럴 순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가족이라면 이 정돈해줄 수 있는 거라 생각할 수도 있다. 이렇게 다른데도. 서로가 언제나, 늘 그렇듯, 항상, 계속 그 자리에 있을 거란 착각 속에서 그 마음과 행동의 이유를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 서로를 이해시키고, 이해하려 하기보단 '가족이니까' '가족이라서' '가족인데'라는 말로 서로 쌓인 문제들을 다 뭉개트린다. 이유를 알려주기만 한다면, 아니면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아주 작은 단서라도 남겨준다면 조금은 쉬워질 수도 있을 텐데. 그 마음과 행동을 이해하는 게 이렇게까지 어려워지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아빠가 어느 날에 어떤 확신과 무슨 마음으로 그랬던 건지, 나는 모른다. 나는 어느새 자라서 아빠가 가장이 되었던 그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우리 사이엔 시간의 공백이 있다. 그 시간을 묻지도, 답하지도 못하면서 우린 으레 관례처럼 '미안해'와 '아니야'를 주고받는다. '무엇이'라는 목적어가 빠진 채로. 언젠가 그 시간을 마주하는 날이 올지, 마음속에 부유하는 질문들이 적절한 시공간을 찾아 입 밖으로 나오는 날이 올지, 잘 모르겠다. 초등학생 때, 아빠가 내게 말도 없이 운동회에 찾아온 날을 기억한다. 아빠는 머쓱해했지만 나는 얼마나 반갑고 기뻤던지. 그때의 내가 15년 후에 지금 우리의 모습을 예상하지 못했듯, 지금 나는 15년 후의 우리 사이를 예상하지 못하겠다. 



가족은 어렵다. 나는 세상에서 아빠가 제일 어렵다. 











to. 아빠

아빠. 나 아무리 노력해도 아빠가 만들어준 카레 맛이 나질 않아. 그래서 아직도 미련하게 기다리고 있는 건가 봐. 아빠가 내게 미안하다는 말 대신 다른 말을 해주기를. 어릴 적 그때처럼 아무 말 없이도 편안한 밥을 먹는 날이 오길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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