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뇌는 변하기 때문에
원래는 다른 글을 올리려 했는데 유독 근래 들어 경복궁 낙서 사건이나 국회의원 피습 사건 같이 상상도 못 한 충격적 일들이 많이 발생하는 것 같아 이 글을 쓴다. 왜 사회에 흉흉하고 폭력적인 분위기가 맴도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1. 어려서부터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아이들은 전능감에 도취되고
스마트폰은 내가 초등학교 졸업할 때 즈음 나와선 중학교 입학하고 나니 사회 필수품이 되었다. 내 첫 스마트폰은 중학교 2학년 때 가지게 된 걸로 기억한다. 그전까진 핸드폰으로 인터넷은커녕 노래도 듣지 못했다. 가운데 동그라미 버튼을 누르면 인터넷 접속은 되지만 그걸 누르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요즘 중학생 친구들은 스마트폰을 2-3대 들고 다닌다고 한다. 그걸 자신의 입맛과 용도에 맞게 사용한다고 들었다.
뇌는 어렸을 때부터 학습한다. 뇌는 완성된 형태로 나오는 게 아니라 기본적인 규칙과 구조를 가진 채로 나와선 세상과 상호작용하면서 점차 본인만의 뇌지도를 만들어간다. 이걸 생후배선의 원리라고 한다. '아이 앞에선 말 하나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건 아니었던 거다.
그런데 우리는 어려서부터 핸드폰을 사용한다. 정확히 말하면 '초고속 통신망을 통한 인터넷'을 사용한다. 손가락 까딱하면 한 개의 앱에서 다른 앱으로 순식간에 전환되고, 동영상도 끊김 없이 스킵이나 배속해서 볼 수 있다. 처음 정보만 입력해 놓으면 사고 싶은 물건 결제도 순식간에 된다. 우린 손안에 스마트폰 세계에선 전능하다. 기다릴 필요도, 누군가의 요구에 맞출 필요도 없다. 이런 손쉬움에 익숙해지면 조금의 지체도 견딜 수 없게 된다. 자신의 입맛에 맞추는 게 익숙해져 버리면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게 불편할 뿐이다.
2. 코로나시대의 두려움과 무력감은 부정적 감정들을 만들어냈으며
"증오, 혐오, 분노는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 (마사 누스바움, 타인에 대한 연민 中)
2년 여 간의 코로나 대유행 시기. 사람들은 자의든, 타의든 집안에 있어야 했다. 전염병은 생명의 위협뿐만 아니라 생업에 위기를 가져왔다. 자신이 노력한다고 해결될 수 없는 대중성 유행병은 무력감과 공포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공포와 무력감은 증오, 혐오, 분노, 비난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로 쉽게 이어지기 마련이다.
3. 긍정적 에너지든 부정적 에너지든 쌓이면 해소돼야 했기에
모든 에너지는 쌓이기만 할 수 없다. 쌓이면 해소돼야 한다. 그렇기에 우리 내부에 쌓인 에너지들은 어떻게든 해소돼야 했다. 하지만 코로나 때에 우린 적절한 운동이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사람들과 수다를 떨거나 하는 방법으로 이 에너지를 해소하지 못했다. 모든 건 집에서 해결해야 했다.
4. 인터넷은 부정적 에너지를 발산하는 창구가 되었고,
그러니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다. 긍정적인 영상을 보고 생각 없이 웃는 걸로도 해소될 수 있지만 비극적이고 분노를 유발할 만한 영상을 보고 욕하고 분노하는 것으로도 에너지를 해소할 수 있다. 그리고 의외로 사람들은 희극보단 비극에 더 눈길을 두기 마련이다.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 영상들은 더 자극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관심과 공감을 받고 살아남는 글들은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글들이었다.
5. 스마트폰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들의 뇌는 그렇게 흘러갔다.
"우리가 무엇에 시간을 쏟는지에 따라 뇌는 달라진다" (데이비드 이글먼,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中)
우리의 뇌는 완성되어 나오는 게 아니라서 우리가 어디에 시간을 쏟는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하나의 생각은 다른 생각들을 그 방향으로 끌어들이는 힘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러니 내면의 온갖 부정적 에너지들이 인터넷 창구로 쏟아지고, 그 에너지들을 계속 받아들이면서 어느새 우리 뇌에 폭력성이 자리 잡은 게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우려되는 건, 어릴수록 더 많이 영향을 받는다는 거다.
물론, 경기침체, 사회적 양극화 같은 이유도 분명 있을 거다. 이건 단순히 개인적 생각이고 정설은 아니다. 그저 지금 현상에 대해 나름의 이유를 생각해 본 거일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생각해 보는 것, 쉽게 동조하고 휩쓸리지 않는 것뿐이니까.
아, 그리고 요즘엔 인사를 덧붙인다. 나는 수줍음이 너무 많아 인사도 개미목소리로 하는데 어느 날 종종 가던 만두집에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인사를 건넨 이후론 꽤나 열심히 하고 있다. 별생각 없이 덧붙인 말 한마디에 그렇게 기분 좋아하실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일찍 용기를 내 인사를 건네볼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