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쓰지 않는 시대, 앵무새 같은 우리들
인간 문화라는 수프 속에서 새로이 등장한 자기 복제자를 문화 전달 단위 또는 모방의 단위라는 개념을 가진 ‘밈’이라 부르겠다. 이 밈은 뇌에서 뇌로 건너 다니면서 그 수가 늘어난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를 이용하듯이 자기의 뇌는 밈의 번식을 위한 운반자가 되는 것이다. - 리처드 도킨슨, 이기적 유전자 中-
'밈'의 사전적, 학술적 정의는 이렇다. 물론, 대부분은 인터넷 놀이 문화로서 '밈'에 더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의미로 쓰던지 간에 둘 다 뇌에서 뇌를 옮겨 다니며 복제된다는 건 같다. 이게 가장 무서운 지점이다.
어느 날, 우리 엄마는 "방탄노래는 딱 DNA까지가 좋았어. 그 이후론 너무 팝송 같아져서 싫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은 방탄소년단이 '버터'를 냈을 때 인터넷에서 나왔던 비판글과 정확히 일치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론, 엄마는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좋아했던 적이 없었다. 아마 전곡을 들어본 적도 없었을 거다.
이런 일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친구들이 인터넷에서 본 글과 똑같은 이유로 누군가를 비판하거나 무언가를 선호하는 모습을 보았다. 심지어 인터넷에 쓰여있던 글과 비슷한 어투로. 그럴 때마다 나는 어디서 어디까지가 그 사람 고유의 생각과 감정이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인터넷에 올린 누군가의 생각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물론, 나는 그런 사람들을 비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나 또한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과 기호가 정말 나 자신의 원본인지, 아니면 인터넷 생각의 복제본인지 헷갈리니까.
복제가 무서운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글을 읽으면 우린 아무 생각 없이 그 글을 머릿속으로 받아들인 채 그 생각이 마치 자신이 한 생각인 것처럼 말을 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 속엔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 인터넷은 개인의 의견을 빠르게 공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 스스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었다. 생각의 원본이 다양해지는 결과가 아니라 복제본만으로 가득 찬 그런 세상을 만들어버린 거다. 우린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저 다른 사람이 쓴 글이 그럴듯해 보이면 그저 머릿속에 입력하기만 하면 된다. 본인조차 그것이 원본인지 사본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복제에 성공한 인터넷 생각 중, '노력도 재능이다'라는 말이 있다. 아마 많은 사람이 이 말에 공감했던 거 같다. 나 또한 처음 들었을 땐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볼수록 이상했다. 어떻게 노력이 재능일 수 있지? 노력은 재능이 아니며 재능이어서도 안된다. 노력은 말 그대로 '어떤 목적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애쓴다'는 뜻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 즉 자신이 낼 수 있는 자원을 십분 활용해서 목적을 향해 뛰는 건 재능의 영역에 속하는 게 아니다. 그렇게 되면, 노력조차도 재능의 영역으로 인정받게 되면, 정말로 타고난 재능이 없는 이들은 그저 그런 인생을 살다가란 말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노력을 재능이라고 생각해 버리는 건, 단순히 노력하지 않는 삶을 정당화하고 거기서 얻은 죄책감을 지우려는 시도일 뿐이다. 노력을 재능으로 치부해 버리면 내가 지금 아무것도 안 하고, 노력하지 않는 게 본인의 잘못이 되는 게 아니기에. 그저 재능이 부재한 탓에 어쩔 수 없는 거고 본인이 바꿀 수 있는 게 아닌 게 되기에. 그렇게라도 게으른 자신의 삶에 대한 죄책감을 덜려는 거다.
겨우 자신의 마음의 짐 하나 덜자고,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는 이들의 그 노력을 재능이라는 말로 덮어버리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타고난 재능이 없어 그저 노력할 수밖에 없는 이들을 보고, 노력도 재능이라 치부해 버리는 것은 너무 무신경한 행동이다. 인터넷에 누군가 적은 글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의 인생에 너무 무책임한 행동이다. 나는 세상이 점점 앵무새들로만 채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지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