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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 Jan 20. 2024

낮과 밤은 어떻게 같은 하루를 공유하는 걸까?

노을, 다정한 핏물을 통해 접착되는 이질적 세계  












 구름들이 꾸준하게 움직이는 모습, 새들이 날갯짓을 하는 순간, 비행기가 그려가는 비행운, 모두 하늘이란 배경 속에 펼쳐지는 것들. 내가 맑은 날이면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하늘은 하루라는 시간 동안 여러 번 모습을 바꾼다. 그중에서 나는 노을 지는 시간 때엔 꼭 하늘을 보려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계절이 바뀌면 일몰시간을 검색하는 버릇이 생겨버렸다. 지금 같은 겨울엔 일몰은 6시 부근이며 5시 넘어서부터 점차 해가 기울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다 점점 하늘은 어두워지고, 그러다 어느 순간 가로등이 일순간 점화된다. 마치 해와 가로등이 바통을 터치하듯. 사람의 삶에서 빛이 부재하는 시간이 존재해선 안된다는 듯, 딱 맞추어 떨어지는 이 일사불란한 모습, 계획된 평화로움은 어딘가 마음을 안정시켜 주는 구석이 있다.  





 이렇게 낮과 밤의 교차지점을 계속 건너다보면 알게 되는 게 있다. 어떤 계절이든 낮과 밤은 너무나 다르다는 걸, 그걸 깨닫게 될 수밖에 없다. 낯에 보이는 풍경과 밤에 보이는 풍경이, 낯에 들리는 소리와 밤의 들리는 소리가, 낯에 활동하는 생명과 밤에 활동하는 생명이 확연하게 다르니까. 이건 단지 하나의 세계에서 해와 달의 주종이 바뀌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이지 전혀 다른 별개의 두 세계가 교차되는 것만 같다. 그만큼 많은 것들이 바뀐다. 그래서 나는 만약 공간을 공유하는 두 세계가 있다면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존재할 거라 믿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나는 이런 물음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렇게 이질적인 두 세계, 낮과 밤이라는 세계가 어쩌다 하루라는 같은 시간의 단위에 묶일 수 있는 건지 말이다. 



 


 나는 그게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이 시간 덕분이라 생각한다. 푸르른 낮의 하늘과 검푸른 밤의 하늘 사이 끼어드는 노을의 붉은빛 덕분이라고, 그래서 이질적인 것들이 하나로 묶이고 공존할 수 있는 거라고 말이다. 온통 푸르기만한 물통 속에 갑자기 끼어드는 붉은빛 물감. 그건 우리를 위해 희생하는 하늘의 핏물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견디지 못하기 마련이라 한순간에 빛의 세계에서 어둠의 세계로 바뀐다면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할 게 분명하고 또 그러다 보면 이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 본인조차 이해하지 못할 불가해한 행동을 하거나 심할 경우엔 극심한 공포를 겪을지도 모르니까. 이질적인 세계를 접합하고, 사람들이 그 불순된 세계를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레 넘나들 수 있게 하기 위해 노을 지는 시간이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너무 밝아 그림자도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에서 너무 어두워 그림자도 묻히는 세상으로, 낮의 세상에서 밤의 세상으로 매끄럽게 넘어가기 위해선, 우린 노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노을은 단지 세계의 쓸모없는 미적 요소로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나 우릴 위한 다정한 희생의 역을 자처하고 있는 거며 우린 이를 통해 그토록 다르기만 한 낮과 밤을 하나의 것으로 통일시켜 놓을 수 있었던 거라고. 그래서 우리의 하루가 하루일 수 있었던 건 노을이 있었던 덕분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나는 일몰이 지는 시간대에 그 색색들이 흩뿌려지는 붉은빛을 보면서 하늘의 희생에, 아무도 생각해주지 않는 나를 위해 애써주는 모습에 위로를 받는다. 그만큼 다정한 핏물이 까맣게 굳어버릴 때까지 그렇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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