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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 Jan 13. 2024

인사











을 적어 내리기 이전에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한 소개를 해야될 것 같아서 조심스레 나를 드러내보고자 한다.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에 사람이 있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과 꼭 맞물려 살아가는, 철저히 동화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 그 첫 번째이다. 그리고 세상이 돌아가는 거에 어찌어찌 맞춰서 그럭저럭 맞춰 살아내는 이들이 두 번째이다. 마지막으론,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과 분리되고, 이질 된 채로 삶에 대한 감을 잡지 못한 채 어정쩡하게 놓여 있는 이들이 있다. 나는 아무래도 마지막에 해당하는 삶을 살고 있는 듯싶다. 





나는 검은 토끼 마을에 살고 있는 흰 토끼이다. 개구리마을에 살고 있는 청개구리이고, 사슴마을에 살고 있는 루돌프이다. 완전히 다른 건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섞이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한 사람. 그게 나다. 내가 부모님께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그건 당연한 거야" 나는 다른 사람들일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는 방법을 배우면서 컸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쉬이 지나치는 것들에 굳이 바라보고 마는 사람이었다. 과자를 지고 가는 개미들, 하반신이 잘린 친구를 들고 가는 꿀벌, 수영장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잠자리 따위의 것들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






나는 동물들의 순간을 담는 걸 좋아한다. 음식점 앞 지루해 보이는 동네 개, 그냥 걸어 다니다가 무언갈 발견하고 황급히 날갯짓하는 까치, 왜 저기 붙어있는지 알 수 없는 비둘기 등. 보통 쉽게 지나치지만 우리 주변에도 다양한 생명들이 살고 있고, 나는 그런 그들의 일상을 엿보길 좋아한다. 이들을 보며 나는 지구에서 살고 있는 생명이 비단 인간만이 아님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렇게 되면 인간으로서의 먹고사는 모든 일들이 조금은 하찮아지고, 쉬워지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때론 모든 일들이 너무 무겁게만 느껴질 때엔 이들을 떠올려보곤 한다. (*바닥을 기어가는 사슴벌레, 벽에 붙은 송충이, 풀 숲에 숨은 사마귀의 사진도 있는데 징그러워할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서 그건 올리지 않으려 한다)










나는 왠지 잘 맞추고 공들인 사진보다 초점이 나가고, 빛이 번진 사진들을 좋아한다. 그 찰나의 아름다움을 어떻게든 남기고 싶어서 빠르게 셔터를 누른 그런 사진들을. 횡단보도를 걷다가 서둘러서 찍은 사진들, 건너편에 해치를 찍으려는 순간 버스가 지나가는 바람에 찍은 사진들, 양손에 짐이 한가득임에도 꽃이 너무 예뻐서 한 손으로 다급히 찍은 사진. 되려 빼어난 기술이 없어야, 시간과 노력이 필요 없어야 비로소 담아낼 수 있는 자연스러운 풍경들이 더 맘이 갈 때가 있다. 꼭 공을 들여야만 아름다운 건 아니기에. 







 


 나는 찍으라고 위풍당당하게 놓인 것들 보단 일상 사진들을 더 좋아한다. 잘 짜인 건축물이나 구조물, 조형물에선 그 나름의 절제되고 단정한 아름다움이 있듯이 일상엔 놓인 사물들이나 건물들엔 사람들의 손 떼가 묻어 있다. 나는 거기서 나오는 '정감'을 좋아한다. 때 묻고, 삐딱하고, 정돈되지 않은 것들. 일상과 딱 맞닿아 있는 것들. 그런 것들. 그리고 나는 도로와 표지판, 신호등도 좋아한다. 정돈되지 않은 것들 사이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놓은 사소한 규칙들. 그리고 그 규칙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들을 좋아한다. 가끔 그 규칙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나는 하늘을 보는 걸 좋아한다. 그러다 낮에 뜬 달을 발견할 때면 마치 뽀빠이 속 별사탕을 찾은 기분이다. 왕꿈틀이 젤리 속에서 한 번에 콜라맛 왕꿈틀이를 찾아낸 기분이다. 내 하루에 미묘하게 기분이 나아지는 아무것도 아닌 행운이다. 해를 위해 숨어있는 달을 굳이 발견한 기분이어서 일까? 나도 잘 모르겠다. 곧 있으면 또 보게 될 달을, 그것도 아직은 빛 나지 않는 초라한 달을 보고 이리 기분이 좋아지는 까닭을 말이다. 


 그리고 또, 나는 비행기의 배를 보는 걸 좋아한다. 이건 마치 너구리 속에 다시마가 두 장 있는 것과 같은 그런 흔치 않은 행운이다. 그래서 비행기 소리가 저 멀리서 어렴풋 들리면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려본다. 내 일상과 그들의 비일상이, 나의 단조로움과 그들의 설렘이, 나의 안주와 그들의 떠남이, 나의 집과 그들의 여행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그래서 비행기의 배를 볼 때엔 그 안에 타고 있는 사람들의 설렘까지 내게 전해오는 것 같만 같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아'가 당연하다 여길 때 혼자 '어'라고 하는 사람, 세상 주변부에 놓인 것들에 더 마음이 쓰이는 사람, 어른이 된 지 한참 지났는데도 아직 세상살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내가 싫지 않은 사람. 검은 토끼마을의 흰 토끼, 개구리마을의 청개구리, 사슴마을의 루돌프 같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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