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물 Jun 01. 2024

다이어트 강박이 대체 뭐길래?

 








나는 다이어트 강박에서 드디어 해방되었다. 그 기념으로 그동안의 지난한 과정을 말해볼까 한다. 나의 섭식장애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시작되었다. 통통했던 내가 갑자기 살이 키로 간 게 화근이었다. 한 순간 날 보는 눈빛이 달라지고, 먼저 말 거는 아이들이 생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호감을 사게 되버리고 나니 살이 찌는 게 죽기보다도 무서워졌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엔 흰 우유 한 팩만 마시고 하루 종일 쫄쫄 굶은 적도 있다. 삼일 동안 밥 한 끼 안 먹은 적도 있었다. 그땐 적게 먹는 게 마치 대단히 부러운 능력처럼 취급되었기 때문에 나는 배고픔을 잘 참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한 끼도 안 먹고 하루를 버티면 괜히 뿌듯했다. 채 성장하기도 전에 나를 망가트리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 후로도 나는 음식의 중요성을 모르고, 오로지 살과 외모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서 하루 한 끼만 먹는 생활을 오래 했다. 하루종일 쫄쫄 굶다가 저녁에만 몰아서 먹고, 심지어 그 저녁조차도 영양성분이 아닌 오로지 칼로리만 고려해서 음식을 골라 먹었다. 급식에 나와있는 5-600kcal라는 숫자가 너무 무서워서 밥을 먹지 않았다. 혼자 교실에서 점심을 굶거나 아주 조금만 받아먹었다. 석식도 굶거나 혹은 편의점 고구마와 보리차로 때우고선 너무 배고플 때엔 초콜릿 한 봉지를 야식으로 먹었다. 하루에 600 kcal 남짓하게 섭취하는 생활을 꽤 오래 했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내 식습관은 더 이상해졌다.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하루에 만 보 이상씩 걸으면서 하루에 800kcal 이하로 먹었다. 그보다 더 먹은 날엔 그만큼 다음날 더 적게 먹었다. 모든 음식은 칼로리로만 보였다. 맛있게 먹어도 항상 괴로웠고, 괴롭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배고팠다. 배부르게 먹은 날보다, 오로지 만족한 날보다, 배고프고 불만족스러운 날들만 가득이었다. 운동으로 뺄 생각은 하지 않고, 오로지 음식 섭취를 극한으로 제한하는 그런 말도 안 되는 다이어트 방식을 몇 년 동안 고수해 왔다. 





그러니 나는 어려서부터 정상이었던 적이 없었고, 그게 나에겐 정상이었다. 나는 항상 근육부족이었고, 마른 비만이었고, 체지방률이 높았다. 악력은 항상 최하, 체육능력도 최하, 비정상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여자아이였고 그렇게 비정상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여자어른이 되었다. 나는 과거의 나를, 나의 선택을 후회한다. 내 몸은 완전히 망가졌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나 할 수가 없는 몸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숨만 쉬는 것만으로도 벅찬 그런 몸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비교적 최근부터 비만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행되어 칼로리와 영양에 대한 새로운 정보들이 알려졌다. 나는 그제야 음식 섭취의 중요성을 깨닫고 내 식습관을 하나하나 뜯어고쳐나갔다. 우선, 세끼를 조금씩 다 챙겨 먹는 것부터 시작했다. 아침, 점심, 저녁을 조금씩이라도. 그리고 영양성분을 고려해서 먹기 시작했다. 칼로리가 아니라 그 음식이 가진 영양을 고려해서. 그다음으론 식사 시간을 바꿨다. 원래는 오후 2시에 첫 끼를 먹고, 밤 10시에 마지막 끼니를 먹었지만 지금은 오전 8시에 첫 끼를, 오후 12시에 두 번째 끼니를, 오후 6시 정도에 마지막 끼니를 먹는 걸로. 그리고 빵, 과자, 아이스크림 같은 음식을 모두 과일, 야채, 고기 같은 자연식으로 변경했다. 그렇다고 완전히 끊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밥을 줄이고 주전부리를 먹던 습관에서 밥을 제대로 먹고선 가끔 먹는 걸로. 





가장 신기했던 건, 그전 날 먹은 음식에 따라 다음 날 아침의 기분이 달라지고, 컨디션과 그날 쓸 수 있는 에너지가 확연히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전 날에 과하게 조금 먹으면 다음 날 무조건 쓸 수 있는 에너지가 부족하고, 전 날에 빵이나 과자 같은 가공식품으로 끼니를 때우면 다음 날 아침엔 무기력해진다. 그래서 나는 내 몸에 채우는 음식들을 신경 쓰게 됐다. 살이 아니라 내 삶을 위해서. 하지만 내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바로, 그건 운동강박이다. 





나는 매일 유산소를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음식을 먹질 못했다. 아무리 몸이 지치고 힘들어도 무조건 러닝이나 사이클을 타야지만 무언가를 먹었다. 정말 앞으로 당장 꼬꾸라질 거 같아도 에너지드링크를 한 잔 마시고 일단 밖으로 나가 뛰었다. 그러다 나는 생리가 약 열 달가량 끊겼다. 몸의 다른 기능의 문제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몸의 피로가 누적되고 스트레스가 쌓인 게 그 원인이었다. 언제부턴가 온몸이 팅팅 부었다. 마치 얼굴 위에 한 겹이 더 쌓인 느낌이었고, 손가락 굵기도 달라졌다. 무기력해지고, 기분도 오락가락 난리가 났다. 항상 너무 추워서, 추워서 살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뛰었다. 내가 지금 무슨 문제인지도 모르고.  그러다 나는 자연생리가 안 되는 몸이 돼버렸다. 





나는 이제 드디어 강박에서 해방되었다. 운동 강박과 음식 강박, 둘 당에서. 이제 과하게 굷주린다거나 16시간의 공복시간을 지키려고 한다던가 몸이 아파도 무조건 러닝을 뛴다거나 하지 않는다. 아침, 점심, 저녁때가 되면 칼로리 신경 쓰지 않고 음식을 먹는다. 매일 아침엔 가벼운 스트레칭과 따듯한 물 한잔을 마시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주 2-3회 정도 러닝을 뛰거나 자전거를 타고 있다. 나는 근육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 4-5회 정도, 하루 2-30분 남짓 가벼운 맨몸근력운동도 하고 있다. 모든 운동은 나의 건강을 위한 것이지 살을 빼기 위함이 아니며 하기 싫어 스트레스받아가며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고 나니, 나는 확실히 건강해지는 걸 느꼈다. 물론, 긴 시간의 잘못된 식습관으로 망가진 몸을 모두 회복하긴 어렵겠지만. 





나는 왜 이렇게 되었던 걸까.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의 내 삶을 되돌아봤다. 그러고 보면 여자아이들에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살에 대한 온갖 폭력적 단어들이 쏟아졌던 거 같다. 뚱뚱한 아이에게 '돼지'라는 별명이 붙는 건 남자아이, 여자아이 가리지 않지만 '코끼리 다리'라는 단어는 통통한 여자아이들에게만 붙어지는 별명이다. 체중에 관한 별명은 유독 여자들에게만 많이 붙어진다. 유독 통통한 여자애에게 남자애들은 '네가 여자냐?'라는 식의 말로 상처를 준다. 아이들이 하는 말은 모두 어른들 세계에서 보고 배운 거다. 





매체 속 어른들은 50kg가 넘는 여자는 여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여자 연예인들은 딱 붙는 못을 입고 저체중의 빼빼 마른 몸을 뽐내고 있으니. 여자 연예인들은 체중을 재는 걸 꺼려하고, 다른 사람들은 여자 몸무게는 묻는 거 아니라며 괜히 부채질하고 있으니. 남자애들이 통통하면 나중에 다 키로 갈 거라고 말하면서 여자 애가 통통하면 살 좀 빼야겠다고 잔소리하곤 하니까. 남자는 살집이 있으면 남자는 덩치가 좀 있어야 한다며 괜찮다 더 먹이지만 여자가 살집이 있으면 왜 이리 살이 쪘냐며 살 좀 빼야 하지 않겠냐고 말 한마디씩 얹곤 하니까. 심지어 어른들은 다이어트를 한다며 급식을 적게 먹는 아이들에게 살은 나중에 가서 빼면 된다고 말하곤 했으니까. 이미 정상체중인 애들한테. 





여자들의 식탁에서 보편적으로 보이는 모습들이 있다. 먹고 싶은 음식을 들었다가 칼로리를 확인하고 아쉬운 눈빛으로 내려놓는 것, 그러면서 "아 배부르다"나 "잘 안 들어가네"같은 말을 하는 것, 같이 먹는 사람들이 얼마나 먹는지 눈으로 확인해 가며 먹는 것, 그러다 자기가 더 많이 먹은 거 같으면 자책하는 것, 자신보다 마른 사람이 더 많이 먹으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것, 그리고선 "너는 많이 먹는데 살이 안 찌네"같은 말을 하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살'과 '칼로리'라는 단어가 꼭 한 두 번씩 나오는 것, 그리고 마지막엔 "아 다이어트해야 하는데" 혹은 "오늘은 치팅데이니까"라고 말하는 것. 음식에 대한 강박과 집착, 그리고 거기서 오는 부정적 감정들은 여자들이 더욱 많이 느낀다. 어리면 사춘기라서, 젊으면 외모 때문에, 나이가 들면 살이 쉽게 찌고선 잘 안 빠지니까, 여러 가지 이유로 자신의 음식을 제한하고 식사를 하는데에서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지금껏 여자로 살면서 느낀 건 여자들 대부분의 삶은 음식과 살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마 어려서부터 살에 관련된 여러 가지 말들을 들어오며 자란 결과일 거라 생각한다. 여자가 음식의 유혹에 더 취약해서가 아니라. 그래도 다행인 건 미의 기준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내가 어렸을 대엔 여리여리하고 툭하면 쓰러질듯한 청순한 사람이 유일한 미적 기준이었다. 그래서 여자인데 근육이 도드라지거나 조금이라도 울퉁하기만 하면 남자 같다며 손가락질당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근육 없이 마르기만 한 몸보다 건강하고 탄탄한 몸을 선호한다. 그래서 다행이다. 아마 지금도 여자 아이들은 그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적어도 나처럼 근육이 생기고 뼈가 성장할까 봐 두려워하며 모든 운동을 하지 않고, 모든 음식을 먹지 않는 그런 방식을 취하진 않을 테니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