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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 May 11. 2024

요즘 읽을 만한 책이 뭐가 있을까?

햇살 한 줌, 커피 한 잔, 소설 한 권






 벌써 연재글을 올린 지 4달이 지났다. 그동안 올린 글들을 쭉 살펴보니 무거운 주제가 생각보다 많았다. 5월은 가정의 달이고, 꽃들이 만개하는 달이기도 하니, 분위기를 환기시키기엔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저번 글에서 언급한 '사랑, 음식, 이야기' 중에서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책을 좋아해서 자주 읽는다. 특히 책을 용도별로, 혹은 그날의 에너지별로 분류해서 읽는 편이다. 글감이나 영감이 필요할 때, 그리고 시간적/정신적 에너지가 넘칠 때엔 비문학 쪽 책을 읽는다. 그때그때 관심사에 따라 다른데 최근에는 심리학에 빠져 그 분야의 책들을 읽고 있다. 그리고 다른 관점을 배우고 싶을 때, 에너지가 보통 정도일 땐 고전소설이나 문학상을 받은 작품들을 읽는다. 그런 책들엔 그 작가 고유의 관점이 오롯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정말 휴식을 취하는 날엔 가벼운 책들을 읽는다. 주로, 현대문학을, 그중에서도 국내 소설을 읽는다. 같은 문화권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글을 읽는 데에 외국소설보다 에너지가 더 적게 들기 때문이다. 





주말 중 하루엔 운동과 청소와 목욕을 오전 중에 다 마치고선 커피 한 잔과 좋아하는 디저트 하나와 함께 책 한 권을 읽는다. 책의 분위기에 맞는 노래를 틀어놓은 채로. 나의 이번 글에선 이때에 읽었던 책 중 유별나게 재밌었던 책들을 소개하려 한다. 곁들이면 좋은 노래도 함께. 참고로, 순서는 추천순이 아니라 가독성순이다.





1. 지구에서 한아뿐(정세랑)  

- 추천곡 : 변하지 않는 것 (Yoshida Kiyoshi)


<보건교사 안은영>이란 작품으로 잘 알려 작가님이시지만, 나는 이 작가님의 작품 중 <지구에서 한아뿐>이란 책을 가장 좋아한다. 가끔 책을 읽다 보면 흔치 않은 일이지만 한 장만 읽고도 '이건 내 거다!'라는 확신이 들 때가 있는데 이 작품이 그랬다. 간단히 말하면, 외계인 남자친구와의 사랑이야기다. 내용은 조금 유치하고 단순하다고도 말할 수 있는데 정세랑 작가 특유의 따듯하면서 다정하고 말랑한 서술이 맘에 들었다. 따듯한 비눗방울 같은 느낌을 받았다. 5월 햇살과 잘 어울릴 것 같다. 이 분이 쓰신 책은 다 비슷한 분위긴데, <목소리를 드릴게요> <재인, 재욱, 재훈> <피프티 피플> <시선으로부터> 순으로 좋았다. 하지만 <보건교사 안은영>,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는 특유의 서사적 특징이 사라지고 엔터테인먼트적인 부분만 있어서 씁쓸했다. 




2. 밤의 얼굴들 (황모과)  


"할아버지는 하는 일마다 운이 따르지 않았다.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낡은 명언은 할아버지 삶에 적용되지 못하고 늘 빛바랬다. 그 덕에 할아버지에겐 무례함과 그악스러움만 남았다. 그는 동정을 구하거나 도움을 청하는 대신 세상과 주변에 야만을 쏟아냈다. 타인의 값싼 호의와 얕은 동정을 곧장 돈으로 바꾸었고 갚지 않았다. 성질은 더러워도 그이가 생활력은 좋아, 하는 식으로 억지로 포장해도 이해받기 어려웠다." p66~67


 이 책의 이 문장은 내 잘못된 생각에 경종을 울려 주었다. 나는 부끄럽지만 이 문장을 읽기 전까지 목소리 크고 억척스러우면서 동전 하나에 벌벌 떠는 노인분들을 보면 쉽게 경멸하곤 했다. 왜 나는 그들이 당연히 쉽고 나태한 인생을 보냈을 거라 생각했을까? 열심히 살았지만 모든 행운에서 번번이 빗겨 났을 수도 있던 건데. 마치, 나는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항상 얻었고, 세상에게서 행운만을 받아온 듯이 말이다. 나는 이 책에서 다른 시선을 배웠다. 

  이 책은 sf와 역사가 섞인 단편소설집이라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작가님 특징은 역사 속에서 잊히고 소외된 사람들이 이야기 전면에 드러낸다는 점이다.  어떻게 보면 정세랑 작가님과 비슷한데 좀 결이 다르다. 정세랑 작가님이 현시대에서 끊임없이 시야 외로 내쫓기는 사람들과 환경들을 비춘다면 황모과 작가님은 과거에 이뤄나서 흙 속에 파묻혀 소리 없이 잊히는 사람들의 기록들을 손수 파내어 꺼내 보인다. 우리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말하면서. 그래서 이 책에서 sf라는 장르는 과학이 주가 되는 게 아니라 묻힌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5월 18일에 할 일이 없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3. 이웃집 슈퍼히어로 /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김보영 외 다수)


 국내 내로라하는 작가들이 '슈퍼 히어로'라는 공통 소재를 가지고 창작한 소설을 한 데 모은 단편집이다. 이렇게 여러 작가들이 참여한 단편집 같은 경우, 작가님에 따라 달라지는 소설의 분위기나 장르를 취향껏 맛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글만 읽어도 스펙터클한 이미지가 머릿속에 그려질 정도로 역동적이면서도, 히어로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들어있다. 비정형적이고 독창적인 히어로들의 이야기라서, 좀처럼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이웃집 슈퍼히어로>와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작품들이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에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먼저 <이웃집 슈퍼히어로>를 읽고, 취향에 맞는다면 그 후속작을 읽는 걸 추천한다. 쨍한 햇볕 들 때 읽기 딱 좋은 소설이다. 





4. 다섯 번째 감각 (김보영) 


이 책이야 말로 과학적 상상력이 가장 돋보이는 sf단편집이다. 테드 창이나 그렉 이건정도까진 아니어도 소프트 sf가 주를 이루는 한국 장르소설 기준으로 말하자면 말이다. 모든 단편들이 독창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시야가 다른 작가와 달리 넓은 느낌이다. 한 국가의 역사나 문화를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전인류적 역사와 기원, 우주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런 경향은 이 분의 최근작인 <종의 기원담>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하지만 <다섯 번째 감각>이 훨씬 좋다. 6월 초여름밤의 별빛을 닮은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5. 타워 (배명훈) 

- 추천곡 : Chorong The Fighter (목영진)


이 책은 674층의 타워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sf연작소설집이다. 이 작가의 작품은 같은 sf장르지만 서도 정치적인 풍자가 섞여 있는 게 특징이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캐릭터스럽다. 위의 말한 작품들보다 좀 더 사실적이고 통통 튀는 느낌이다. 특히, <빙글빙글 우주군>이라는 작품에서 작가 특유의 익살스러운 묘사와 틈틈이 섞은 정치적 역학관계가 잘 드러난다. 사람들의 어두운 속내를 잘 보여줘서 그런지 미세먼지 잔뜩 낀 날에 읽기 좋을 거 같다. 





6. 중력의 노래를 들어라 (남세오) 


이 책을 읽자마자 이 작가님의 다른 책들을 읽고 싶어 찾아봤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직 한국핵융합연구원으로 일하고 계신 신인작가여서 나온 작품이 별로 없었다. 이 작품도 sf단편소설집인데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색다른 방향으로 독창적이었다. 특히, 이 작품 속 <살을 섞다>나 <중력의 노래를 들어라> 같은 경우엔 스산하면서도 잔인한 분위기가 열 두 방울 정도 들어가 있다. 이 분위기를 한껏 살리기엔 비 오기 직전 습하고 우중충한 날이 딱이다.





7. 균형 잡힌 기적 (이신주)


처음 든 생각은 '아작 출판사랑 모종의 관계가 있나?'였다. 그도 그럴 게 신인작가 작품이 아작에서 연속 네 권이나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첫 책은 sf소설이고, 두 번째 책은 판타지소설이고, 세 번째 책은 호러소설이라니. 첫 번째 읽은 <공산주의자가 온다!>를 감흥 없게 읽은 탓에 <균형 잡힌 기적>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 보는 종류의 공포라서 새로웠다. 귀신이 나온다거나 신이한 존재들이 나오는 그런 공포가 아니라 실생활에 밀접한, 있을법한, 그런 기이한 일들에게서 전해지는 스산함이랄까. 이 분의 글은 유려하고 부드럽게 읽힌다기보단 조금 경직되게 읽히는 느낌인데 그렇다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비가 시원하게 쏟아질 때 읽으면 정말 최고로 좋을 책이다. 

 




8. 신세계에서 (기시유스케) 

- 추천곡 : 打上花火타상연화 (쏘아올린 불꽃, Kenshi Yonezu)


환상소설, 모험소설, 판타지소설, sf소설 모두 다 해당된다. 무려 1,2권으로 나뉜 책이라 읽는 데에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해리포터>처럼 휘몰아치는 이야기에 정신없이 빠져드는 게 아니라 지루할 때가 되면 간간히 떡밥 하나씩 던져주기에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세 시간이 지나있는 소설이다. 7월 밤, 너무 습하지 않은 날, 반딧불이로 가득 찬 강가를 바라보는 듯한 분위기의 소설이다. 나는 여태껏 이런 분위기를 선사해 주는 책을 본 적이 없었고, 아직까지도 찾지 못했다. 반딧불이는 아니라도 여름 바람에 나무 잎사귀 부딪치는 소리나 매미 우는 소리, 밤에 귀뚜라미 우는 소리와 곁들이면 더 좋을 거 같다. 





9. 오르부아르 (피에르 르메르트)

- 추천곡 : Court Of Love (Durand Jonees & The Indications)


처음 이 책을 읽은 이후로 책을 꽤나 좋아한다는 친구들에게 매번 추천해 왔다, 심지어 선물까지 해줬다. 그러나 아무도 읽지 않았다. 두께도 두껍고, 글자도 작아서 그런가? 나름 인기도 많아서 후속작도 나오고, 심지어 영화로도 제작된 작품인데. 이 책은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되다가 하나의 종점에서 만나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화려하게 장식하며 끝내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작품이다. 간단히 말하면, 전후에 살아남은 두 사람이 사기극을 기획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 속에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적 감정의 모순, 그리고 사회의 위선, 그 안에서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들이 얽히고 얽혀있다. 프랑스 작품이라 이름이 해괴망측한 것만 빼면 정말 좋다. 이 책은 9월이랑 어울린다. 말머리가 나와서인가? 아무도 안 읽을 거 같지만 조심스레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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