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아시스] 어린 마음으로, 당신에게 손을 건넵니다

사소

by 상경논총


‘바쁘디 바쁜 현대사회’입니다. 빠르게 물결치는 파동 속에서 제 한 몸 가누고 바로 나아가기도 힘든 요즈음입니다. 피터 팬의 그림자를 쫓으며 웃던 아이들은 어느새 훌쩍 커서 빅벤의 시침마냥 매일 같은 하루를 살아내고, 네버랜드 행 티켓을 기다리며 창문을 열고 잠드는 대신 통장 속 숫자에 일희일비하는 어른들이 바글바글합니다. 세상은 그래도 잘 돌아가지만, 주변을 둘러보기에는 너무나 지친 어른들의 세상에서 괜스레 우리의 유년기를 떠올리며 슬퍼지곤 합니다.


어릴 적 읽던 동화 속에서, 악당은 언제나 어른이었습니다. 어린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악용하며, 자신만의 그릇된 목표에 사로잡혀 주변을 둘러보지 못하는 어른들이요. 피터 팬의 후크 선장, 백설 공주의 왕비, 라푼젤의 마녀 등이 어린 주인공들과 대비되는 대표적인 어른 악당들입니다. 다만 저는 특히 ‘어린 왕자’ 속의 인물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자신의 별을 떠나와 다른 별을 돌아다니는 어린 왕자는 수많은 어른을 만나고, 악당이라 부르기엔 뭣하지만, 여전히 어리석고 자신만의 목표에 매몰되어 있는 그들을 보며 의문을 가집니다. 혼자만의 권력에 심취해 있는 왕, 별의 개수에 집착하는 사업가, 무엇을 위한 줄도 모른 채 끊임없이 가로등을 껐다 켰다 하는 사람…. 어린 왕자가 보기에 이들은 참 이상해 보였고, 그건 어렸던 제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고작 10살 남짓의 저는 거창한, 그러나 당시에는 당연한 결심을 합니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른 세계에 물들지 않고 어린이의 마음을 가져야지, 라고요.


그러나 눈높이가 올라가는 만큼 넓게 볼 수 있게 된 세상은 그런 결심 하나만으로 홀로 버티기에는 너무나 모진 곳이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끔찍한 사건들이 뉴스에 보도되었고, 모두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동화책과는 달리 시들고 있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그래서 동화 속 이야기와 현실에 괴리를 느끼던 나날이었습니다. 어린 제게는 너무 끔찍하다며 뉴스를 보지 못하게 막던 부모님을 피해 꾸역꾸역 뉴스를 보면서, 어떻게 하면 동화와 현실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지 고민하곤 했습니다. 그리곤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말하자면, 피터 팬이 되기로 결심한 겁니다. 홀로 버티기에는 냉혹한 이 세계를, 웬디의 손을 끌어당기는 피터 팬마냥 사람들과 함께 바꿔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시들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장 가까이에서 듣고, 이를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자라는 직업을 통해서요.


어렸을 때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들이라 왜 명작인지 몰랐던 「어린 왕자」를, 머리가 큰 뒤 읽었을 때 다가오던 감동을 잊지 못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가치들, 예컨대 피터 팬과 어린 왕자의 마음 같은 것들이, 어른이 되어서는 애를 써야 지켜낼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풍랑 속에서 홀로 애처로이 버티기보다는, 당신과 손잡고 파도의 방향을 바꿔보기로 결심했다고, 그렇게 조심스레 고백한다면, 들어주시겠습니까. 거창하게 방향키까지는 돌리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당신의 손은 놓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면, 손을 잡아주시겠습니까. 누군가는 제 한 몸 바로 세우기 힘든 세상에서 어떻게 남의 손까지 잡냐며 코웃음을 칠지도 모르지만, 모름지기 세상이란 혼자가 아닌 함께일 때 더 쉬워지는 법이라는 걸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어린 마음으로, 이 파도를 헤쳐넘어, 방향키를 돌리고, ‘그리고’ 당신과 함께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keyword
이전 16화[특집] 경영대 반비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