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부원 김태헌
들어가며
2001년 12월,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라는 카드 회사 광고가 TV에 등장했다. 당시 정부는 조세포탈 방지의 일환으로 신용카드 규제를 완화하고 발급 확대를 장려했다. 카드 발급 요건이 완화되며 늘어난 카드 이용자와 대금으로 2년 뒤인 2003년에는 약 250만명의 신용불량자와 카드사들의 잇따른 부도가 발생한 카드대란이 일어난다. 5년 뒤인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론과 여러 파생상품으로부터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와 3년 전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한 경기 부침 그리고 카드대란 사태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배드뱅크는 금융기관의 부실자산이나 채권만을 사들여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구조조정 기관 혹은 은행을 의미하며 부실채권 전담은행, 가교운용사라고도 칭한다. 금리 상승으로 원리금 상환이 어려워지는 채무자가 늘어나는 상황이나 금융기관의 방만한 운영 등을 원인으로 부실자산이나 채권이 발생했을 때 배드뱅크가 개입한다. 이들의 주 업무는 부실 여신이나 담보로 잡힌 공장, 부동산 등의 가치를 높인 뒤 높은 가격에 파는 것이다. 채무자가 담보로 잡힌 부동산을 개발하거나, 가동이 중단된 공장에 자본과 인력을 투입해 정상화시키는 일도 한다. 뿐만 아니라 가계 혹은 영세법인의 채무는 사들인 채권을 장기보유함으로써 차주의 원리금을 일부 면제하거나 금리 재조정, 장기 분할 상환을 유도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채무자가 배드뱅크로부터 장기, 저리로 대환대출을 받아 기존 대출채권을 상환하고 채권자인 기존금융기관은 채무불이행 정보 등록을 말소하면서 신용회복을 돕는 기능도 하는 것이다. 앞선 사례와 같은 금융부실이 발생하였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정부기관 주도나 민간 금융사 공동으로 배드뱅크를 설립해 부실을 처리해 왔다.
한국 배드뱅크의 탄생과 변천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인해 많은 기업이 대규모의 부실에 처했고 은행도 동반 부실화되었다. 결과적으로 많은 기업과 은행이 부도 및 파산하고 합병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시기가 국내 NPL2 시장 및 배드뱅크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시점으로 정부는 구(舊) 성업 공사를 현재의 한국자산관리공사(KAMCO, 이하 캠코)로 전환하는 형태로 설립하고 캠코를 통해 부실채권정리기금을 조성하여 총 39.2조원의 부실채권을 인수하고, 46.7조원을 회수했다. 2003년 카드대란에는 신용카드사 건전성 제고와 개인신용회복을 주요 목적으로 한마음금융, 희망모아SPC라는 명칭의 배드뱅크가 설립된다. 이를 매개로 기금을 조성, 부실채권을 매입하여 채무재조정, 신용회복지원, 신용보증 등의 절차를 진행했다. 그 외에도 2008년과 2013년에 각각 신용회복기금과 국민행복기금이 가계부실 해소 및 1억 원 이하의 신용대출을 6개월 이상 갚지 못한 채무 불이행자의 신용회복 지원을 위해 조성되기도 하였다.
한국은 캠코가 부실채권 관리의 역할을 전담하다시피 했고, 추가적인 상설기관 없이 필요에 따라 일시적으로 배드뱅크를 설치하고 기금을 조성해왔다. 이후 2009년 초 처음으로 민간 주도 배드뱅크 설립을 추진하게 된다. 본래 한국회계기준에 의해 진성 매각(True Sale)으로 인정받던 SPC로의 매각이 2010년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으로 진성매각이 불인정되면서 부실채권을 NPL시장에 매각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외에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부실채권 증가도 민간 배드뱅크 설립에 대한 논의를 가속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해외자본보다 국내자본의 NPL시장 참여가 필요했던 당시 환경과 IMF와 대비해 향상된 부실채권처리 및 관리역량을 배양한 정부와 금융기관이라는 제반조건을 고려해 순수은행출자, 은행+민간투자, 민관합동출자 등의 여러 형태의 구상안이 나왔다. 궁극적으로는 매각가치 극대화가 목적인 민간 배드뱅크와 신속한 정리가 필요한 채권을 전담하는 캠코가 동시에 NPL시장에 참여함으로써 공정한 시장가치가 형성될 수 있도록 유도하려는 목적이었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 중심의 유암코가 최초의 민간 배드뱅크로 2009년 10월 설립되고 뒤이어 여타 민간 금융기관이 시장 참여자로 등장한다. 유암코 설립 이후 연간 5조원 규모의 부실채권이 경쟁입찰을 통해 매매되었고 NPL투자의 수익성이 확인되면서 NPL 펀드운용사, 전문 자산관리회사 등이 생기며 투자층이 다양해졌다. 한시적으로 설립되어 운영됐던 공적 부실채권정리기구와 달리 상시적 부실처리 역할을 할 민간 기구의 수가 늘어나며 NPL시장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도 커졌다. 2011년에는 부실 PF사업장 정리 목적의 PF정상화 뱅크가 은행권 공동 출자로 펀드 형태로 조성되어 부실사업장 인수 활동을 했다.
더욱 최근의 설립 논의 및 운용 사례로는 2020년 라임자산운용 펀드의 자산 회수 작업을 목적으로 펀드 판매사들의 출자를 통해 설립된 배드뱅크가 있다. 다만 본래의 부실채권을 직접 인수 및 처리하는 방식이 아닌 펀드 자체를 이관받아 관리하는 방법으로 운영 중인 것으로 보인다. 2023년에 논의되고 있는 부동산PF 부실 해결을 위한 배드뱅크와 그와 별도로 캠코에 상설기금을 설치하는 안에 대해서는 추후의 장에서 다뤄보고자 한
다.
부실채권의 매각과 가치평가
이들이 사고파는 부실채권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채권은 단순화하면 담보유무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별도의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 채권과 통상 부동산을 담보로 하는 담보 대출 채권의 두 가지로 나뉜다.
신용대출의 매각은 NPL시장에서 경쟁입찰 방식으로 매각하는 방법이 있고, 배드뱅크를 통해 금융권 공동매각을 추진할 수도 있다. 이때 공동매각의 경우 회계법인 평가액으로 매매대금을 받는 확정가 매각방식과 향후 초과수익 발생 시 그를 되돌려 받는 사후정산 방식 중 채권 매도자가 선택할 수 있다. 해당 방법의 경우 채무자는 여러 금융회사의 채무를 동일한 조건으로 채무재조정 받음으로써 분할상환의 방식으로 납부하고 잔여 채무를 면제받을 수 있다. 개인 신용대출 채무자는 여러 곳으로부터 대출한 다중채무자인 경우가 많고 각 기관마다 채무감면 절차와 상환방법이 달라 어려움에 직면하는 케이스가 잦은데, 배드뱅크를 통한 공동매각 방식이 이들에게 적합한 방식임이 여러 선례로써 증명되었다.
담보채권은 신용대출과 달리 부동산담보의 경매 완료 전까지 대손상각으로 대차대조표에서 제거할 수 없어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에 악영향을 끼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2010년 국제회계기준 도입 전과 후를 기준으로 매각방식이 바뀌었으며 도입 이후 NPL 시장 매각의 대부분이 담보채권 매각이라고 한다. 도입 이전에는 자산관리를 위한 페이퍼 컴퍼니 격인 특수목적회사(SPC) 설립으로 유동화를 통한 매각을 했다. IFRS 도입 이후에는 위와 같은 방법이 진성매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아래의 그림2와 같이 매도자인 은행이 SPC의 최종 손익을 부담하는 형태로 위험과 보상의 이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NPL시장을 통한 시장매각의 방법을 채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부실채권의 매각과정에서 초기 가격은 가치평가를 통해 정해진다. 매도자와 매수자가 평가하는 가치가 제각각일 수 있기 때문에 상호가 납득가능한 가격을 도출해야 한다. 신용채권의 경우 매도자는 연체기간・금액 등이 유사한 동질 모집단의 과거 데이터를 추출해 평가액을 정한다. 매수자는 추심 시 회수 예상액을 추정해 시장에 참가한다. 신용대출의 경우 별도 담보가 없고 자진변제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연체 기간이 짧고 연체원금이 작을수록 회수율이 높게 산출된다. 반면에 담보채권은 추후 경매로 대금이 회수될 시점을 예측해 낙찰금액을 산출하고, 그 금액에서 당사자가 받게 될 배당예상액을 현재가치로 할인해 평가한다. 낙찰 예상 시점은 법원의 경매 낙찰률과 유사사례 비교를 통해 예측한다. 그 외에도 법원에 회생을 신청한 회생채권, 사업이 중단된 부실 PF사업장 채권이 있으며 세부적인 방법은 다소 상이하지만 기본구조는 이와 유사하다. 핵심은 예상회수금액과 시기를 언제로 예측하고, 미래의 회수액을 얼마의 할인율로 적용해 평가하는가에 있다.
해외의 배드뱅크
배드뱅크는 1980년대 후반 미국 저축대부조합(이하 S&L)의 주택담보대출이 부동산 가격 급락으로 부실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처음 도입되었다. 유럽의 경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뒤이어 2010년대 초반 유로존 금융위기까지 겪으면서 여러 국가들에서 배드뱅크 설립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이 장에서는 중국, 일본과 미국의 사례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중국은 1999년 최초로 4개의 국영 자산관리회사(배드뱅크)가 출범하면서 그 운을 뗐지만 최근에는 그 수가 59개로 늘었다. 이들은 부실자산의 일원화 및 정리라는 본 목적에서 벗어나 부동산 및 증권거래, 국외 고수익대출 등의 다양한 사업에 관여하는 투자은행으로 변모했으며 현재는 사실상 주주출자 은행의 부실자산을 감추고 수익을 추구하는 용도로 활용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12 전문가들은 중국의 실패 사례에서 배드뱅크가 기존 목적에서 벗어나 불필요한 확장을 추구하면 안된다는 점과 파산법과 같은 통상적인 금융부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배드뱅크가 영구히 존속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일본은 1980년대 버블 형성기와 90년대 버블 붕괴로 기업 보유 자산과 은행 대출채권이 급격히 부실화되었다. 정부는 1999년 예금보험기구가 전액 출자한 RCC라는 배드뱅크를 설립했다. 하지만 부실채권 규모는 공적자금 투입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며 가시적인 효과가 보이지 않았다. 버블 붕괴 초기에 정부뿐 아니라 기업과 금융기관들도 심각성을 과소평가하면서 채권 회수 혹은 정리보다는 추가 융자 방안을 택하며 초기에 효과적인 대응을 못한 것이 원인으로 보였다. 버블이 어느 정도 제거되면 경기가 성장세로 전환할 것이란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부실 자산의 가격이 회복하기만을 기다리고 처리에 대한 고민은 부재하면서 장기침체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S&L의 부실 해결을 위해 정리신탁공사(RTC)가 설립되었다. 부실자산이 정리될 때까지 운영되었던 한시적 기구였고 주로 공적 자금이 투입되었으며 제한적으로 사적 자금을 투자받았다. 이들은 매입한 부실자산을 분할하거나 합쳐서 자산담보부증권(Asset Backed Securities)을 발행하거나 회사 자체의 가치를 높여 재판매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대규모의 자산 풀을 만들고 단순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담보물을 사용해 부실
자산을 매매하는데 성공하면서 약 7년 간의 운영기간 동안 4100억 달러 이상의 부실 자산을 처리했고 성공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보다 최근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말미암은 위기 때는 TARP(Trouble Asset Relife Program)을 만들어 부실 모기지담보부증권(Mortgage Backed Securities)을 인수하고 금융시장 경색을 막기 위한 여러가지 지원책을 수행했다. 특히 국가 재원으로 조성된 구제금융을 민간에 투입하는 것에 대한 도덕적 해이 논란에도 불구하고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응으로 경제 회복의 기반을 조성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미국은 공적자금 유입으로 민간이 부실채권 투자에 참여할 인센티브를 제공해 시장을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사용했으며, 부실채권의 담보여부에 따라 각기 효율적인 기법을 채택함으로써 리스크를 줄여나갔다.
해외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부실자산이 충분히 저렴하면서도 합리적인 가격에 매각되어야 하고, 인수 이후 적극적인 관리가 가능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적극적인 관리라함은 정부와 민간 분야가 상호의 목적인 공공성과 수익 극대화를 어느 한쪽에 편향되지 않고 균형감 있게 추구하는 것이다. 또한 민관의 전문가들이 시간적 여유를 가지면서도 한편으로는 배드뱅크의 한시적 성격을 명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운영하여야 함을 알 수 있었다.
배드뱅크 설립과 운용에 담긴 함의
2022년 레고랜드 사태로부터 촉발된 부동산 PF 사업 부실 우려로 현재까지 논의되고 있는 방안을 들여다보면 금융부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에는 배드뱅크 가동 이외에도 대주단 협약, 정상화 펀드, 정부 차원의 유동성 공급 및 지원 등 여러 선택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상 비슷한 기능을 하는 여러 옵션 중 배드뱅크가 지속적으로 거론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배드뱅크는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부실채권을 정리함으로써 재정 건전성을 개선시키고 관리비용을 축소해 운영 정상화를 도모할 수 있고, 채무자는 빚을 탕감받거나 상환 부담을 경감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순기능을 한다. 다만 배드뱅크에 의지한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다. 이에 대한 방지책으로 채무자가 채무를 3개월 이상 연체할 경우 기한이익을 상실시켜 고율의 연체이자를 부과하는 한편 신용불량기록을 재등록하고 기존 대출에서의 연체이자까지 인수하여 강도 높은 추심을 집행하기도 한다. 더해서 당해 대출자의 신용정보를 신용정보회사에 제공하는 배드뱅크 나름의 장치도 존재한다.
수혜자가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는 대부분 정부 주도로 이를 운용해온 한국의 특성상 개인 부실자산 문제를 공적자금으로 해결한다는 지적도 상존한다. 앞서 한국 배드뱅크의 변천에서 설명한 것처럼 배드뱅크는 운용자금의 원천에 따라 공적 배드뱅크, 공적 및 사적자금에 의한 혼합형, 그리고 사적자금으로만 운영되는 배드뱅크로 나눌 수 있다. 또한 운영형태에 따라서도 하나의 배드뱅크가 모든 관계은행을 담당하는 중앙집중형, 관계은행들이 자신들의 자체적인 배드뱅크를 만드는 분산형,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둘의 특성이 섞인 혼합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현재까지 여러 나라에서 운영된 배드뱅크 대부분은 운영자금의 관점에서 공적 또는 혼합형 배드뱅크의 형태인데, 이는 경기 침체기에 사적 자금을 유치하기 쉽지 않은 상황적인 특성에 기인한다. 미국의 정리신탁공사를 벤치마킹해 설립된 캠코도 마찬가지로 공적자금이 투입된 중앙집중형 배드뱅크이며, 이후 2009년 설립된 유암코와 2012년 설립된 PF(Project Financing) 정상화뱅크는 민간은행 주도임에도 정부지원을 받는 운영형태상 혼합형 배드뱅크이다. 결국 배드뱅크가 설치되는 시기는 많은 경우 정부재원의 불가피한 투입과 납세자의 비판까지 감수해가며 부실을 처리해야하는 경제적으로 시급한 상황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외에도 민간 주도 배드뱅크의 경우 설립 추진 과정에서의 출자자 간 지분 문제나 설립 이후 운용 과정에서 주주은행 이해관계에 따른 역선택 문제도 경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부실채권을 보유하고 있는 은행이 배드뱅크 출자은행 중 하나가 되면 해당 은행은 본채권을 최대한 높은 가격에 매각하려고 할 것이지만 다른 출자은행들은 가급적 낮은 가격에 매입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라임사태 당시 배드뱅크 수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최대주주 선정에 부담을 느낀 대주주 후보군의 금융기관이나 펀드 판매량이 적었던 금융기관들에서 참여를 꺼려하며 난항을 겪는 일도 있었다. 따라서 민간 참여 방식으로 운용 시 출자은행 간 이해상충 문제가 최소화되도록 사전에 의사결정 및 지배구조를 정교하게 조정해 나가야 하고, 운영에서의 투명성과 독립성을 제고하여 배드뱅크가 시장에 교란을 일으키는 참여자가 되는 것을 방지할 필요성이 있다.
일각에서는 민간 주도 배드뱅크가 부실채권을 수익성 관리의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는 점도 지적한다. 이는 금융감독기관이 부실채권 처리를 금융시장 안정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과 달리 민간기업은 채권자인 금융회사의 입장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설령 공적 처리기구가 설립되어도 채무자의 추후 입장까지 감안한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다른 국가의 공적 부실채권정리기구와 비교할 때 IMF 당시 캠코가 운용한 부실
채권정리기금의 회수율은 120%로 상당히 높다고 평가받는다. 그럼에도 개인신용회복지원제도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절대적인 채무불이행자의 수가 많고, 기존의 배드뱅크가 채무불이행 상태의 해소에만 집중하고 있으며 이들의 실질적인 경제적 재기에 대한 지원은 불충분하다는 평가가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실채권 정리의 정의 자체를 채권자 입장에서 매각 또는 상각함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채무자로부터 분리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정리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인식의 개선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배드뱅크가 단순 채무 재조정의 기능뿐만 아니라 개인 채무자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고 지속적인 소득을 창출할 수 있게끔 관련기관과 연계해주는 절차까지 마련한다면 금융시장의 안정화에 더욱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2020년부터 코로나19 유행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소상공인 대상 대출이 급격히 증가했다. 그 해 4월부터는 정부 차원에서 한시적으로 만기를 연장해주거나 상환을 유예하는 등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사태 종료 이전까지 여러 차례 시행했다. 그 이후에도 고금리로 연체율이 높아짐에 따라 정부는 새출발기금이라는 배드뱅크를 만들고 기존에조치를 받았던 개인 및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원금을 일부 탕감하고 거치기간을 부여해 분할상환을 진행하고 있다. 기업을 대상으로는 부동산PF에 초점을 두고 배드뱅크가 진행 중이다. 부동산PF 사업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대출은 고금리 단기 대출인 브리지론으로 저축은행, 캐피탈사 등의 채권이 집중되어 있다. 특히 브리지론은 만기가 짧은 사업 초기의 대출로 위 금융사들의 보유 비중이 높고 연체율도 10%대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짧은 시간 안에 부실화될 우려도 있어 금융지주 산하 캐피탈사들의 주도로 5000억원 규모의 기금이 조성되었다. 200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다양한 형태의 경제위기가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동시에 그 주기가 짧아지면서 최근에는 배드뱅크의 상설화를 골자로 캠코에 상설기금을 설치하는 안에 대한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다.
마치며
대부분의 경제 시장이 그러하듯 NPL 시장의 원활한 작동과 배드뱅크의 안정적 운용의 전제 조건은 시장 참여자 간의 신뢰와 왜곡 없는 가격 형성에 있다. 예컨대 배드뱅크가 부실자산을 과도하게 낮은 가격으로 매입하려 한다면 금융기관들은 예상보다 큰 손실처리가 불가피하고 다른 기관들의 유사자산 가격까지 동반하락하는 악순환이 야기될 수 있다. 반대로 과도하게 높은 가격으로 매입한다면 공적 배드뱅크의 경우 납세자의 잠재적인용부담이 늘어나고 민간은행에 특혜를 제공하는 양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신뢰와 균형이 깨지게 되는 순간 이 기구는 그 존재 의의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일괄적으로 신속하게 부실자산을 관리 및 처리할 수 있어 대출이라는 계약에서 양 당사자 모두에게 좋은 도구가 될 수 있는 한편, 신중하고 정교한 운영에 실패한다면 도덕적 해이, 역선택, 공적재원 낭비, 민간의 과다수익 추구 등의 측면도 마주할 수 있는 것이 배드뱅크이다.
원리금 상환과 강압적인 추심이라는 리스크를 떠안기 꺼리는 개인은 대출을 터부시하고, 반대급부로 그 위험성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를 남용하기도 한다. 당장 전술한 새출발기금도 2년간 만기연장 및 상환 유예가 이미 시행된 상황에서, 자영업자들은 새출발기금을 신청할지의 여부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형국이다. 채무조정이 이루어지면 기록이 남으면서 신규 대출 등 정상적인 금융활동이 어려워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경제 주체들은 이처럼 저마다의 주관을 가지고 시장에 참여한다. 이들이 내리는 모든 의사결정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일 수는 없다. 금융기관에서는 부실채권 비율이 높아지면 자연스레 기존 대출을 회수하며 신규대출에 대한 기준은 높이게 된다. 그로 인해 유동성이 줄면서 기업과 가계의 부실이 심화되어 부실채권이 더 많아지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있다. 시의성 있고 효율적인 부실자산 정리가 필요한 이유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배드뱅크 제도의 메커니즘과 장단점에 대해 이해하고 신뢰와 균형이 존재하는 부실자산정리시장이 형성되길 기대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참고문헌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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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기사
권화순, 이용안, “[단독]캐피탈사·저축은행, 5000억 규모 PF대출 ‘배드뱅크’ 만든다”, 머니투데이, 2023-09-21.
류선우, “라임 펀드의 자산 회수 위해 설립, 배드뱅크...우려 많아”, SBS, 2020-06-11.
천인성, “민주당 ‘배드뱅크 지원법’ 이달 발의...“부실정리 위한 상설기금 설치”, 중앙일보, 2023-03-19.
웹페이지
기획재정부 경제배움e 시사・경제용어사전 (https://econedu.go.kr/mec/ots/main.do)
“인도의 배드뱅크 모델: 기대효과와 미래를 위한 제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AIF 전문가 오피니언, (https://www.kiep.go.kr/aif/issueDetail.es?brdctsNo=326631&mid=a30200000000&systemcode=02)
그림 및 도표
[그림1] NPL시장 내 여러 참여주체의 경쟁구도
[그림2] 유동화 방식의 매각 예시
[도표1] 매각방식의 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