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편집장 서재원, 편집부원 김동현, 김수연, 오승주
세계 경제 대공황, 외환위기, 닷컴버블 등 한 국가를 넘어 세계를 뒤흔든 경제 사건들은 주기적으로 발생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것들을 모두 이해하고 있는가? 아니면 쉽게 접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그에 따라 관련 영화 두 편을 소개하며 독자들께 조금은 가볍게 경제 사건들을 이해하고 시사점을 느낄 수 있도록 기획하였다. 2008년 금융위기를 배경으로 하는 <빅쇼트>와 <라스트 홈>을 통해 2008년 금융위기를 이해함과 동시에 외면하고 있던 사회의 이면에 한발 더 가까워져 보는 것은 어떠할까.
[빅쇼트, 국가의 몰락에 베팅하다]
2008년 금융 위기는 현대 경제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로 손꼽힌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에서 시작된 이 위기는 전 세계 금융 시스템을 붕괴 직전으로 몰고갔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란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에게 고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제공하는 금융상품이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의 주택시장은 호황을 맞이했지만 무분별한 대출과 부실한 금융상품으로 인해 거대한 버블이 형성되었다. 이 버블이 터지면서 금융 시장은 급격히 붕괴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집을 잃는 사태가 벌어졌다. 영화 빅쇼트는 이러한 금융 위기의 원인과 과정을 다룬 실화를 바탕으로 금융 위기를 예견하고 이익을 얻은 몇몇 투자자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금융 시장을 분석하던 중 서프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부실함을 발견한 헤지펀드 매니저 마이클 버리는 주택담보대출 채권이 결국 붕괴할 것임을 예측하고 은행들과 신용부도스왑 계약을 체결하여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에 대한 공매도를 시작한다. 신용부도스왑이란 기업의 부도위험과 신용을 맞바꾸도록 설계된 금융파생상품으로 거래 상대방 중 하나가 상대에게 수수료를 지급하는 대신 부도나 채무 불이행이 발생한 경우 상대로부터 원금에 해당하는 보상을 받도록 설계되었다. 마이클의 예측에 따라 이상 징후를 포착한 다른 투자자들은 이를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함께 공매도에 참여하게 된다. 시간이 흐르며 주택 시장은 붕괴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지만 금융 시장은 이를 무시하고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의 부실함이 드러나면서 주택 시장은 완전히 붕괴되고 금융 위기가 시작된다. 주인공들은 금융 시장의 붕괴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얻게 되지만 그 과정에서 금융 시스템의 부패와 무책임함을 목격하며 충격을 받게 된다. 영화는 금융 위기가 실물 경제에 미친 영향과 수많은 사람들이 집과 일자리를 잃는 비극적인 상황을 묘사하며 마무리된다.
빅쇼트에는 다양한 금융용어와 금융현상에 대한 내용이 등장하는데, 금융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다면 영화의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이 많다. 이 글을 읽고 빅쇼트를 보러 갈 여러분을 위해, 빅쇼트의 배경이 되는 당시 경제상황과 영화에 등장하는 금융상품에 관해 얘기해보려 한다.
2000년 당시 6%대까지 올라갔던 미국의 기준금리가 2001년을 기준으로 꾸준히 하락하여 2002년 1%대의 기준 금리를 기록하며 2000년 초반 풍부한 유동성을 공급했다. 이러한 유동성이 꾸준히 누적됨에 따라 미국의 부동산 가격은 고공행진했고, 미국의 투자은행은 기초자산인 주택가격과 관련한 파생상품을 찍어냈다. 리먼브라더스를 포함한 투자은행은 주택담보대출을 담보로 하는 유동화 채권인 MBS 중 위험도가 높은 채권을 저위험채권과 묶어서 낮은 위험도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CDO를 제작해서 판매했다. 그리고 이러한 CDO를 다시 묶어 2차, 3차 CDO를 발행했다.
금융위기 발생 직전인 2007년 기준, 미국의 LTV가 95%까지 치솟았다고 하니, 당시 주택 구입시 자기자본은 5%도 되지 않았던 셈이다. 당시 CDO를 이용한 미국 5대 투자은행들의 레비리지 비율이 30배가 넘었기에, 굉장히 작은 자본금에 수많은 채권과 파생상품이 의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2007년 초부터 이미 모기지 연체로 인한 부실 징후가 나타났음에도, 오랜 부동산 경기 호황으로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없다는 믿음은 유지되었고, CDS 역시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며 규모만 47조 달러로 당시 미국 GDP의 2배에 달했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상승함에 따라 미국 부동산 버블은 꺼지기 시작했고, 주택담보대출을 갚지 못하는 사례가 생기면서 관련 파생상품을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던 금융기관들 또한 부실화되고 파산한 것이다.
나아가 빅쇼트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금융상품인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는 우리말로 부채담보부증권으로, 회사채, 대출채권, 모기지채권(주택탐보대출채권) 등을 묶어 하나의 파생상품으로 만든 것을 의미한다. 여러 종류의 채권을 하나의 풀(pool)로 구성하고, 이를 기초자산으로 하여 위험도가 낮은 채권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다.
이상으로 <빅쇼트>의 내용과 영화에 등장하는 낯선 금융용어를 풀어보았다. 하지만 <빅쇼트>는 그 흥미진진한 내용만큼이나 많은 생각을 주는 영화이다. 이는 바로 영화가 마이클 버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위기에 베팅하여 막대한 수익을 벌었다. 이 점이 단순히 그를 도덕적으로 비난할 근거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똑같이 금융위기를 맞이한 상황에서 누군가에게는 이것이 막대한 부를 벌어들이는 기회였다는 점은 다소 씁쓸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최근 국내에서도 부동산 시장 침체로 인한, 특히 PF 우발채무가 잔존하는 사업장 위주로 차환을 연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22년 하반기 이후 자금 조달 환경이 악화됨에 따라 본 PF로 전환되지 못한 경우도 많고, 시행사의 신용보강을 위해 시공사가 제공한 PF 보증을 시공사 또한 감당하지 못해 국내 10위권 대의 건설사가 워크아웃을 신청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과거 2008 금융위기 때처럼 부동산 자산을 담보로 파생상품이 만연한 것은 아니지만, 최근 증권사 앱을 통해 작은 단위의 채권을 구입하는 게 훨씬 수월해졌다. 만약 <빅쇼트>에서처럼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우리 역시 영화에서 그랬듯이 누군가는 이를 이용해 부자가 되고, 누군가는 몰락하고 말까? 결론을 쉽게 짐작할 수는 없지만, 위기상황이 닥쳤을 때 누가 이득을 보고, 또 누가 피해를 보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우리 사회의 이면을 이해하는 데에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사회 역시 위기가 발생하였을 때 다수의 고통 위에서 누군가는 부를 쌓지는 않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라스트홈, 금융위기 이후 남겨진 자들에 대하여]
<빅쇼트>가 2008 리먼브라더스 사태의 이전을 다룬다면, 영화 <라스트 홈>은 금융위기 이후 폭락한 집값과 그에 따라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공사장에서 험한 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주인공 데니스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어느날 동료로부터 건물주의 부도로 인해 공사대금을 못받게 되었고, 이는 곧 임금을 받지 못함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전해 듣게 된다. 금융위기 이전의 주택 가격 거품과 은행의 부실한 대출 심사의 기류에서 데니스 역시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상태였기에, 밀린 임금은 곧 대출 이자의 연체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는 법정에서 자신의 집에 대한 압류 판결을 받게 되고, 법률적 지식이 전무했던 그에게는 최소한의 방어권을 행사할 틈도 없었다. 얼마 후, 그의 집을 압류하기 위해 부동산 업자 릭 카버가 보안관들과 함께 집을 방문한다. 결국 데니스는 집을 압류당하고 말고 가족들과 함께 모텔 신세를 지는 처지로 전락한다.
이후, 데니스는 압류과정에서 자신의 공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항의하기 위해 현장에 있던 릭과 그 인부들을 찾아가면서 영화의 전개는 다른 국면을 맞는다. 수렁에 빠진 데니스에게 릭은 자신과 함께 일해볼 것을 제안하고 데니스가 이를 수락하게 된 것이다. 데니스는 릭을 도와 자신에게 릭이 그랬던 것처럼 퇴거명령을 받은 이들의 집을 찾아가 그들의 집을 빼앗는 일을 진행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각종 부정과 불법을 저질러 가며 부를 쌓아나가고, 데니스는 끝끝내 새로운 집을 장만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데니스는 그의 가족 및 집을 압류 당한 이들과 갈등을 겪게 되지만, 그는 도덕적 갈등을 겪으면서도 결국 자신의 일을 이어나간다. 그러던중, 릭과 데니스는 무려 1000채를 매매할 수 있는 일확천금의 기회를 얻게 된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30일 이내로 모든 집의 거주자들을 내쫓아야한다는 전제가 동반되었다. 릭은 이에 문서를 위조해가면서까지 법원에서 퇴거명령을 받아내고, 데니스는 양심적 가책을 느끼지만 결국 그를 돕고 만다. 위조된 문서 때문에 억울하게 집에서 쫓겨나게 된 거주자는 릭과 데니스가 보안관들과 함께 집을 찾아 닥치자 총을 쏘아 가며 자신의 집을 지키기 위해 울부짖었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행동이 불러온 최후를 마주한 데니스는 그에게 다가가 모든 사실을 말해주고 그는 경찰에 연행되어가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라스트 홈>은 금융위기라는 거친 파도에 결국 휩쓸려나가고 만 것은 아무런 관련 없는 소시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위기는 정작 탐욕에 물든 월스트리트와 은행, 그리고 이를 방조한 감독기관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지만 정작 그 피해는 가장 연약한 곳에서 아무것도 모른채 묵묵히도 하루하루를 살아내던 이들에게 돌아간 것이다. 집을 빼앗기는 과정에서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결과가 정해진 다툼에서 발버둥 치는 것뿐이다. 영화에서 데니스는 법률적 조력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법원의 퇴거명령이 언제 집행되는 것이지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릭의 문서위조로 인해 마지막에 결국 집을 빼앗기고만 마지막 씬의 인물 역시 스스로가 법률을 공부해가면서까지 집을 지키려고 애썼지만 그의 최후는 위조문서를 근거로 한 1분짜리 판결이었을 뿐이다. 누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고 하였었는가, 법은 모두에게 동일한 잣대를 들이민다고 말하지만 정작 법적 절차는 약자에게는 너무나 어렵고 복잡할 뿐이며 그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힘겹게 싸워야만 한다. 정작 위기를 불러온 가진 자들은 그간 축적한 충분한 금전적 자원을 바탕으로 자신의 것을 여유로이 되찾아오지만, 역설적으로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들은 탐욕에 희생되고 마는 것이다. 위기로부터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이 가감없이 드러나버리는 것이다.
영화의 포스터에는 “1%에 먹힐 것인가, 99%를 빼앗을 것인가?”라는 문구가 써져 있다. 이는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자신의 살 곳 마저 빼앗기는 형국에서 결국 릭을 도와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을 이용하기를 선택하며 고뇌에 빠지는 주인공 데니스의 심정을 잘 표현하는 말이다. 자신의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남의 것을 빼앗을 수밖에 없는 데니스가 처한 상황의 표현인 것이다. 영화의 전반에서 데니스를 악인이나 약자에 대한 배신자로 묘사한 부분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인물에 대해 거리를 유지함으로써 데니스의 선택과 고뇌가 한 사람의 개인적 서사가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마주하였던 딜레마였음을 관객이 느끼도록 한다. 나아가 데니스가 릭의 편에 서서 저질렀던 행동의 원인을 개인의 도덕적 타락이 아닌, 살기 위해서는 남의 것을 빼앗도록 강요하는 사회의 모순적 모습으로 돌리는 효과를 거둔다. 첨단의 문명과 복잡한 금융이 지배하는 사회의 이면에는, 야만적이기 짝이 없는 약탈의 모습이 숨어 있음을 고발하는 것이다. 영화에는 릭과 함께 일하는 것을 만류하는 데니스의 어머니와 순수한 모습을 잃지 않은 그의 아들이 등장하지만, 가정의 생존을 실질적으로 도맡아야 할 데니스의 입장을 고려하면 그 누가 그의 선택을 나무랄 수 있을까. 책임의 주체는 데니스가 아니라, 데니스가 임금을 제대로 받지도 못하고, 한때 무분별하게 대출을 남발했던 은행으로부터 도리어 집을 빼앗기고, 그 후에 모텔방 신세를 지게 되었을 때도 그를 철저히 외면하였던 사회 시스템에 있을 것이다.
앞서 <빅쇼트>를 통해서는 2008 금융위기가 일부의 금융인들에게 일확천금이 되는 과정을 보았다. 그러나 위기는 이를 역이용하는 이들에게는 막대한 부를 쌓는 기회가 되었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비극의 씨앗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나아가 <라스트 홈>에서는 위기의 비극을 마주한 이들이 어떻게 구렁텅이로 내몰리는지, 그 과정에서 정부는 무엇을 외면하였는지를 신랄하게 보여준다. 두 영화에서 알 수 있듯이, 위기는 이중적인 모습을 가진다. <빅쇼트>와 <라스트 홈>은 우리에게 2008년 전후의 미국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금융위기의 여파를 가감없이 보여주었다. 우리 역시 1997년 IMF 사태라는 전국민적 위기를 겪은 바 있기에, 영화 속에서의 금융위기 상황을 마주하지 말란 법이 없다. 과연 위기를 마주하였을 때, 우리 사회 역시 여러명의 데니스를 만들어 내지는 않을까? 감춰 온 사회의 이면이 위기를 통해 드러나기 전에, 무엇을 준비하고 논의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