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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경논총 Jun 03. 2024

[오아시스] 고기잡이배

어부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요. 누군가는 성장과 성숙에서 그 의미를 찾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왠지 어른이 된다는 것은 현실의 냉엄한 기준을 자각하고, 무언가를 포기를 하는 버릇을 들이는 데에 있다고 느껴집니다. 어린 시절, 우리는 앞으로 펼쳐나갈 삶이란 항해에서 항공모함과 같이 위풍당당하게 대양을 가로지를 것이라 기대합니다. 그러나 현실을 마주하다 보면 사회가 만들어 둔 여러 기준을 내가 모두 충족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무언가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동경하던 슈퍼 히어로의 자리는 나를 위해 예비된 자리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는 시점인 것입니다. 나의 부족한 부분을 담담히 수용할 수밖에 없는 시간들이 바로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입니다.


 그렇다고 어른이 되어가는 시간이 꼭 이렇게 힘빠지는 시간인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와 동시에 하나의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자신의 항해가 설령 항공모함의 위엄 넘치는 움직임이 아닐지라도 이를 긍정할 수 있는 기회 말입니다. 모두가 항공모함으로서 항해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항공모함이 하는 항해의 실상은, 항공모함이 되어보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는 것이기도 하죠. 이 사실을 망각하면, 질투와 박탈의 감정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겠지만, 이 사실을 이해하는 순간 비로소 그간 경시해 왔던 고기잡이배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기껏해야 바닷가 근처를 오가는 자그마한 고기잡이배라도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 수 있음을 배우는 것이죠.


저도 어렸을 때는 항공모함과 같은 인생을 꿈꿨던 것 같습니다. 함대의 중심에서 위엄을 뽐내는 항공모함처럼, 인생이란 항해를 멋지게 완수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막대한 항공모함처럼 살아가는 데에는 너무나도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 한다는 것을, 또 여유를 잊은 채 언제나 위기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많은 에너지를 가진 사람도, 여유보다 명예가 중요한 사람도 아니기에 이제는 굳이 항공모함으로서의 항해를 꿈꾸지 않습니다. 설령 연안가만 오가는 고기잡이배라고 할지라도 괜찮습니다. 항공모함으로 살았으면 몰랐을 해변가 부두의 광경도 볼 수 있고, 사람들을 위해 고기도 잡아다 줄 수 있으니까요. 어떤 배든지 간에,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가진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아, 이제는 한결 마음이 편합니다. 내가 부족한 점과, 포기해야만 되는 것들을 알아가는 시간이 끝나고, 이제는 나의 항해를 온전히 응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항해를 꿈꾸고 계신가요?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 항해는 분명 고유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고기잡이배의 선장으로서, 여러분의 항해를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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