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미
오늘 인턴 면접에서 엠비티아이를 물었는데 나도 모르게 원래 MBTI와 완전히 다르게 대답했다. 네 글자 안에서 거짓말을 꽤나 많이 한 건데, 이렇게까지 말하면서 얻고 싶은 게 뭘까? 짐짓 이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울컥울컥 튀어나오는 반(反)이성적, 논리적 모습에 스스로 몸서리쳐질 때가 있나보다. 스스로 상정한 관념적 자아가 있는데 그 경로를 이탈하려는 일종의 모든 움직임이 고까운 모양이다. 에디슨 젓가락을 어거지로 끼며 낑낑대던 20년 전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젓가락질은 여전히 개판이다.)
그 관념은, 이상은 어떻게 만들어졌던가? 유령마냥 형체가 없지만, 때때로 가위에 짓눌리기에 존재감은 확실하다. 그 유령과의 공존 (또는 유령의 기생) 을 인정하고, 때로는 협력하기도, 편승하기도 하며 가까스로 의지를 다져왔다. 누가 강요한 적은 없다.
사실, 나는 더 무르고 그 유령에 대적할 힘이 없지만 쫄지 않은 척했다. 그래서 아예 그 존재를 무시하고자 애를 썼다. 모든 외압과 유령을 피해다닌 결정이다. 극복이 아니라 의식하지 않으려 애쓴 것이다.
유령에게서 자유로워진 사람들을 자주 만났다. 유령을 격퇴한 이 사람들이 자유로워 보였고, 가장 나다워지는 질문을 해나가며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존중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 동기라면 삶의 의지를 다질만하다고 생각했다.
그치만 내가 무시하던 유령의 존재가 아직 너무 크다. 사실명제보다는 당위명제가 커져가고, 여전히 기존의 관성에 탑승하는 자아는 전에 했던 논의들이 무색하게 고소장을 내민다. 아니, 그냥 유령을 업고 살아가도 되는거잖아? 굳이 이렇게까지 반추해야할까? - 어쩌면 오류인 문제인데도 붙들고 넘어가지 못하는 아둔한 사람일지도. 그런데 그건 오히려 내 삶에 대한 애착이잖아?
나는 유령과의 괴리를 좁히려, 혹은 한쪽을 퇴치하려 들겠지만 어떤 결말이 오든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유령에 편승하든, 그것을 격파하든. 그런데, 어쩌면 유령에게 쉐도우복싱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유령은 대적의 대상이 아니다. 본질은, 유령을 타파하려 애쓰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마음의 순간을 끌어안는 것일지도.
이제 새로운 국면에 들어간다. 뻗쳐나가는 삶의 도로 위에 매듭으로 방지턱을 만든다. 쫓아오던 유령은 매듭의 울퉁불퉁함에 이 쪽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나는 그 매듭의 실뭉치를 수 없이 말아 올려 묶어냈다. 이제 더 이상 쫓아오지 않도록.
마음을 웅크리고 싶은 요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