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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94호 매듭 29화

[오아시스] 나 홀로 집에

행복한 야자수

by 상경논총

벽난로에서 따스한 불빛이 고요히 일렁이는 거실 한켠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따스한 불빛을 내뿜는다. 푸른빛 전구 사이로 루비색 오너먼트가 은은하게 반짝이고, 벽난로 위에 걸린 빨간 양말이 겨울밤의 포근함을 더한다. 밖으로 눈이 내리는 창가에는 작은 등불이 켜져있고, 트리 밑자락에는 크고 작은 선물 상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반짝이는 포장지와 색색의 리본들은 은은한 조명 아래 더욱 영롱하다.

방 안을 가득 채운 계피와 바닐라 향초의 달콤한 향 속에서, 금색 리본으로 묶인 빠알간 상자를 바라본다. 단단히 두 번 교차된 리본은 꼭대기에서 우아한 매듭을 이루고, 그 위로 둥글게 말린 끄트머리는 마치 작은 꽃잎처럼 피어있다. 그 이가 상자의 매듭을 묶을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리본을 고르고, 한 번, 두 번 돌려 매듭을 만들며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조심스레 리본 끝을 당기자, 단단하게 묶여있던 매듭이 스르르 풀린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 순간의 설렘만큼은 변함이 없다. 마치 상대방의 마음이 열리는 것만 같은 감각. 리본이 선물 상자에서 미끄러져 내리는 모습을 보며, 누군가가 정성스레 선물을 포장하던 밤을 떠올린다. 그도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담아 매듭을 만들었을 것이다. 한 뼘의 리본이 두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어, 상대의 온기가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시간을 거슬러 전해지는 따스한 떨림. 지금 내가 느끼는 설렘이 상대방의 마음과 살며시 맞닿아 부드러운 파동을 그린다.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하나의 감정으로 만나고 있다. 매듭 하나로 이토록 섬세한 교감이 피어나는 순간, 모든 것이 선명해진다. 마음이 다른 마음에 닿는 순간은 이렇게나 고요하고도 깊은 것일까.


우리는 모두 다른 이의 매듭을 풀고, 또 다른 이에게 매듭을 만들며 살아간다. 때론 말로는 전하지 못할 마음도, 정성스레 묶은 매듭 속에 담아낸다. 꼼꼼하게 접어 묶은 매듭에서는 세심한 배려가, 화려하게 장식된 매듭에서는 한껏 부푼 기대가, 수줍게 묶인 작은 매듭에서는 담백한 진심이 스며든다. 누군가는 매듭을 여러 번 돌려 단단하게 묶어 깊은 애정을 표현하고, 또 어느 누구는 은은한 무늬의 리본을 골라 말없는 그리움을 전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매듭에 마음을 새기는 우리는 그렇게 조용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도 모른다.

트리 아래 놓인 선물들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서로의 마음을 묶고 푸는 순간들로 가득하다. 매듭을 묶는 사람의 설렘과 푸는 사람의 기대가 만나는 순간,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의 작은 매듭들처럼 우리의 마음도 이렇게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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