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롱
매듭. 국어사전에 따르면, 노, 실, 끈 따위를 잡아매어 마디를 이룬 것을 지칭합니다. 매듭을 묶는 것은 일상적인 행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세함과 적절한 힘조절이 요구됩니다. 매듭은 자주 풀려서도, 너무 세게 묶여서도 안됩니다. 특히 후자의 경우가 더 곤란한 상황을 만들곤 하는데, 헐렁한 매듭은 다시 묶으면 그만이지만 지나치게 꽉 조여진 매듭은 다시 푸는데 많은 어려움이 들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매듭의 법칙은 비단 물리적 의미의 매듭을 넘어 사회적 의미의 매듭인 법, 질서, 상식, 문화와 같은 영역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최근 세상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너무 빠르게 사회적 매듭을 지으려는 것이 아닌가하는 개인적인 걱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선진 사상의 반영이라는 좋은 명목 아래 그 본질을 오인한 자들이 무분별한 악성 매듭을 짓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잘못 묶인 매듭이 다시 풀기 힘든 것처럼, 잘못 도입된 정책으로부터 사회를 정상화시키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특정 입법과 정책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만 커지고, 정말 옳은 정책인지 성찰하는 능력과 반대 의견에 대한 관용적 태도는 이에 비례해 성장하지 못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최근 뜨거운 화제가 된 포괄적 차별 금지법 제정 논란이 우리 사회의 성급한 매듭짓기의 폐해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포괄적 차별 금지법은 남성과 여성 외의 무려 31가지의 제 3의 성을 인정하며, 개인의 의사만으로 제3의 성까지 본인이 원하는 대로, 자기 입맛에 따라 변경이 가능하다는 것을 골자로 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이 법에 대한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지면을 무릅쓰고 언급하는 연유는 이 법이 미래세대에게 동성애 및 성소수자 관련 교육을 사법 제재까지 동원해 강제하며, 이를 비판하는 자들을 처벌한다는 편향적 조항 때문입니다. 한 번 법이 만들어지면 이를 정상화하기 위한 모든 시도를 비가역적으로 무력화하겠다는 성급한 고집이 엿보입니다. 그렇기에 포괄적 차별 금지법은 ‘포괄적’이라는 수식과 달리 특정 집단의 입맛대로 구성된 ‘배타적’인 법안에 가까워 보입니다. 또한 이 법이 가지는 파급효과를 고려해봤을 때, 현재 우리의 실정에 과연 맞는 법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통상적으로 개인의 성적 자유는 기존의 가족 관념과 심한 충돌을 일으킵니다. 이 법을 옹호하는 인터뷰를 보면 유럽/북미 등에서 먼저 제정되었다는 명분만 대두될 뿐, 저출산과 분단 문제가 산재한 대한민국에서 가족의 해체와 성역할의 붕괴가 어떤 문제를 불러일으킬지에 대한 숙고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사회적 매듭은 종종 특정 집단의 목소리에 휘말려 성급하게 지어지기도 하지만, 그렇게 잘못 지어진 매듭을 다시 풀기 위해서는 모두의 피해와 희생이 감수되어야 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천문학적 비용을 치르고도 다시는 이전처럼 돌이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은 오랜 기간 유교사상에 경도되었고, 식민 지배를 벗어난 지 80년, 전쟁을 극복한지 70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현재의 중년층은 강력한 군부 독재를 경험했고, 북한 문제, 병역 의무로 인해 억압적인 구시대적 군대문화는 현재까지도 젊은 남성들에게 주입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현재 우리 사회의 많은 조직은 군대와 비슷한 결을 보입니다. 물론 민주주의를 이뤄냈지만, 국민 주권 국가가 된 지는 50년도 되지 않은 탓인지 정치권부터 유권자까지 대의성 부족이나 중우 정치 등의 미성숙한 정치 문화가 사회 전체에 만연합니다. 최근 들어서는 ‘정치적 올바름’과 같은 포스트 민주주의 사상까지 급물살을 타며, 전근대/근현대/포스트 현대 사상이 혼재된 ‘갈등’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생각은 다양할수록 좋지만, 이는 상호 간의 관용이 전제되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자신의 매듭을 더 빠르고 단단하게 묶기 위한 각 집단들의 각축장이자 아비규환에 불과합니다. 보수의 탈을 쓴 아집을, 진보의 탈을 쓴 급진을 잘 구별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올바른 매듭을 묶기 위해 조금은 신중히, 그리고 현명하게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