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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95호 물결 02화

[사회·정책] 'K-파업' 돌풍과 노동권 양극화

편집장 조민재

by 상경논총


1장. 당신은 파업을 지지하시나요?


“파업이 없는 나라를 내게 알려주십시오. 그러면 자유가 없는 나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미국노동총연맹을 창설하고 38년간 위원장을 지낸 새뮤얼 곰파스가 남긴 말이다. 노동운동의 아버지로 불리며 종종 노동자의 권리에 관한 논쟁이 나올 때면 그의 말이 인용되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보다 100년은 더 전,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노동투쟁을 이끌던 그가 말한 ‘파업’의 의미를 오늘날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2025년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 글을 읽을 당신에게 묻는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파업’은 무엇인가? 곰파스의 격언처럼 정당하게 보장받지 못한 노동자의 처절한 투쟁인가, 혹은 보수언론의 주장처럼 기업과 사회를 마비시키는 극단적 대립의 산물인가?


물론 위 질문이 짖궃은 흑백논리에 빠져있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 모두 노동조합과 파업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하면서도, 마찬가지로 파업을 포함한 노동조합의 쟁의행위가 사회에 종종 손실을 초래한다는 점도 인지하고 있다. 여러 국민인식 여론조사들에서도 노동조합과 파업의 이중적 딜레마를 뒷받침하는 통계결과들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2022년 10월 한국리서치 정기조사에 따르면 66%의 설문자가 ‘노동자의 인권 보호’ 역할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반면, 파업에 관해서는 52%의 응답자가 ‘부정적이다’는 답했다. 주목할 점은 파업의 목적에 따라 지지하는 정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안전 시설이나 휴게 시설 등 업무 제반적 환경의 개선을 요구하는 파업은 68%가 적절하다고 응답하였고, 노동자의 건강권 및 안전을 위한 파업, 특히 택배노동자 파업에는 75%의 지지를 보였다. 하지만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은 적절하다는 응답비율이 23%로 급감하였고, 같은 임금 및 지위 향상을 요구하는 파업이더라도 블루칼라의 파업이 화이트칼라의 파업보다 더 큰 지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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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여론 조사에 불과하지만 위 결과는 우리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국민들은 파업의 직군에 따라 해당 노동자가 주장하는 권리의 정당성과 기업 및 사회적 피해를 내 비교하고, 노동자의 처우 개선이 더 시급하다고 여길 때 높은 지지를 보낸다. 결국 파업은 서두에 건넨 필자의 ‘극단적인’ 질문과 같이 이분법적 잣대에 따라 좋고 나쁨을 특정할 수 없다. 다만 직종과 산업구조가 지난 100년간 빠르게 변화하며, 이에 따라 파업의 종류도 새뮤얼 곰파스의 시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변화되었다. 결국 파업은 어떤 목적으로 행해지는지, 또한 파업 노동자가 어떤 사회적 계급에 위치하는지에 따라 사회 구성원들은 특정 파업에 지지를 보낼수도, 비판을 가할수도 있다.


허나 파업 현상을 그 목적과 노동자의 지위 등으로 나누어서 면밀하게 따져보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결국 파업에 대한 전반적인 국민인식은 실제 우리 사회에서 어떤 종류의 파업이 만연한지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파업은 단발적으로 발생하며 노동자 역시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입기 때문에 주로 단기적인 파업사건들이 다수이다. 하지만 유독 파업 및 갈등이 장기화되거나 사회적 비용이 극심해지는 시기가 간간히 도래하기도 하는데, 최근 들어 대한민국은 전례 없는 ‘파업 사이클’의 과열 국면에 접어들었다. 2024년 2월 의정 갈등에 따른 전문의 파업, 같은 해 7월 전국삼성노동조합(이하 전삼노)의 삼성전자 창립 이래 최초 50일 간 총파업, 그리고 2025년 상반기의 현대제철 파업 등만 보아도 우리 사회는 지난 1년동안 굵직한 ‘파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신음했다.


물론 파업은 좁혀지지 않는 노사갈등의 산물일 뿐, 노동단체의 일방적인 생떼나 사회 마비 행위로 폄하해서는 안된다. 다만, 위 파업 사태들에 필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연유는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듯’ 최근 파업 현상은 이전과 달리 막대한 사회적 손실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의대 증원으로 초래된 정부와 의사협회의 갈등은 어느덧 1년차에 접어들었는데,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쏠리는 안타까운 풍선효과가 관찰된다. 지난해 대학병원 등 상급종합병원 47곳의 6대 암수술건수는 파업 전해인 2023년보다 16% 가량 줄었으며, 이에 2차 병원으로 환자들이 쏠리며 불필요한 의료 부담을 가중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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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국내 산업에서 큰 비중을 담당하는 삼성전자와 현대제철의 파업은 생산성 하락 및 경기 침체를 유발할 위험이 있다. 지난해 7월 전국삼성노조는 창립 이해 처음으로 50일간 파업을 전개하여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되었고, 당시 주가 하락 및 반도체 실적 악화로 위기를 겪던 삼성에게 또 하나의 악재로 작용했다. 전체 제조업과 시가총액의 20%를 차지하는 삼성의 DS부문 총파업은 올해 3월 임금 교섭이 마무리되며 봉합됐지만, 국민적 우려를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다. 현대제철은 2024년 9월 이후 2025년 상반기까지 노측과의 임금 협상에 난항을 겪었다.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한 현대차와 달리 현대제철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건설 침체 및 저가 중국산 철강 공급에 영향을 받아 각각 10.4%, 60.6% 급감하였는데, 현대제철 직원들은 계열사인 현대차 수준의 성과급을 주장하며 사측과 치열하게 대치했다. 물론 호황일때는 불황 당시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서, 불황일때는 불황을 근거로 성과급을 비롯한 분배문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 삼성전자와 현대제철 노조측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 사회의 노동자와 기업을 갈라 놓았을까? 우리는 이 답을 찾기 위해 우선 노동자에게 주어진 노동쟁의권의 법리적 의미를 분석하고, 이를 파업에 대한 법원의 판례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현재 규정하는 파업의 시사점과 한계를 도출할 것이다. 또한 사법 및 입법례에서 보인 이론상 논리구조와 달리, 실제로 노동쟁의권에 따른 파업행위가 우리 경제 및 사회 전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관련 지표 및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면밀하게 분석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한국 사회만의 파업 특성이 가진 구조적 문제점을 도출한 후 사회 각계각층에서 일어나는 노동 갈등 문제를 풀어갈 바람직한 방향성을 시사하며 ‘K-파업’의 자화상을 파헤쳐 보고자 한다.



2장. 규범과 실증의 양날로 ‘K-파업’을 해부해보다!


1) 파업은 ‘불법’인가?


우리 헌법은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서 노동자의 단체행동권을 보장한다. 단체행동권뿐만 아니라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인 단결권, 사측과 교섭할 권리인 단체교섭권도 보장되며, 파업으로 표출되는 단체행동권은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 주장을 위해 최후 수단적으로 발현하는 몸부림이다. 피용자는 파업을 통해 사용자에게 계약상 보장한 노무의 제공을 이행하지 않으며, 심각한 경우 사용자의 기물 및 자본을 파괴시켜 직접적 손해를 가한다. 따라서 파업 행위 자체에 내재된 효과를 고려하면, 파업은 사용자의 영업에 차질을 초래하고 손해를 발생시키는 위법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노동조합법에 따르면 쟁의행위란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행위’라고 정의되어 있다. 그리고 ‘파업의 정당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이러한 위법성이 조각되며 노동자에게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및 형사상 책임이 지워지지 않는다. 반대로 파업의 정당성이 결여되었다고 판단되면, 노측의 파업은 불법쟁의행위에 해당하여 사측에 민사상 손해배상과 함께 형사상 책임까지 져야 한다. 비록 노동권이 헌법상 보장을 받더라도, 우리 법체계는 노동쟁의행위를 본질적으로 위법하지만 정당성이 인정되는 경우 위법성이 조각되며 법적 책임을 면제받는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우리 법체계는 파업의 정당성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을까? 헌법은 정당한 파업은 ‘근로조건 향상’을 목적으로 하여야 한다고 규정하는데, 이는 회사가 직접적인 위법을 저지르지 않아도 피용자의 요구를 맞춰주지 못할 때 종종 파업의 ‘파도’에 휘말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위법률인 노조법에서는 헌법에서 규정한 파업의 범위를 ‘노사 간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근로조건에 관한 것’으로 한정하였고 쟁의행위의 절차 및 효력에 대해 규정한다. 하지만 법률 특성상 여전히 추상성이 높기 때문에, 판례는 노조법의 조항에 근거해 파업의 정당성을 주체, 절차, 목적, 방법의 네 가지 실질적 요건을 기준으로 분류하고 심사한다.


하지만 때로는 위의 판단 기준이 정당한 파업의 범위를 축소시킴으로써 실질적 권리보장이 필요한 노동자들을 사각지대로 몰아넣기도 한다. 이를 테면, 파업을 할 수 있는 주체를 두고 노조법은 근로자가 조직한 노동조합으로 한정하며, 판례는 주체성 요건을 그 범위가 훨씬 좁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의 노동조합으로 한정한다. 이에 학습지 교사, 택배 기사 등과 같이 업무위탁계약을 통해 임금 대신 수수료 등의 대가를 받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쟁의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또한 판례는 파업주체의 정당성이 인정되기 위해서 그 상대방을 사용자 혹은 사용자단체로 규정한다. 이에 회사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는 하청노동자는 여러 차례 노동3권의 행사를 부정당했다.


또한 판례는 절차적 요건에 따라 노조가 파업에 돌입하기 전 필히 거쳐야 하는 절차를 준수하였는지 판단한다. 하지만 최근 절차적 요건이 결여되어 정당성이 부정되는 경우는 드물다. 가장 법적 논쟁이 크게 발생하는 논점은 3번째 요건인 정당성 요건과 마지막 요건인 방법적 요건이다. 정당성 요건의 경우, 헌법이 규정한 ‘근로조건의 향상’을 두고 판례는 정당한 파업의 목적을 노사 간 단체교섭의 대상에 해당할 때로 제한한다. 이에 따라 정리해고는 근로조건의 개선에 해당하지 않고 기업의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특별한 사정 없이는 정당한 파업을 통한 위법성 조각이 성립하지 않아 불법행위가 된다.


만약 위의 세 가지 요건이 만족되어도 방법성 요건은 사용자의 재산권에 전격적이고 막대한 손해를 입혔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업무방해죄를 들어 형사상 책임을 부과한다. 해당 요건에서 노동자의 쟁의권과 사용자의 재산권이 충돌하므로 법원은 양측의 이익을 형량 후 개별적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같은 양태의 파업이어도 정당성 인정 여부가 달라진다. 이를 테면, 2011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노조 사건에서 노조 측이 생산 라인 하나를 쇠사슬로 묶고 상주하며 가동을 막은 사례가 있다. 이를 두고 사법부는 전면적 점거는 아니어도 라인 하나를 점거한 것이 전체 생산을 중단시키므로 배타적 점거에 해당한다고 하여 불법 파업으로 판결했다. 일각에서는 파업이 노동자가 꺼낼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라기에는 그 방식이 상당히 제한적이라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판례 변경을 통해서도 가능하겠지만, 위의 정당성 요건의 확장은 근본적으로는 입법 개선이 동반될 때 효과적이다. 이에 따라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법적 분쟁에서 나타나는 노측과 사측의 힘겨루기가 입법 영역에서도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특히 현재의 노조법의 개정방안을 둘러싼 일명 ‘노란봉투법’ 논의가 가장 대표적이다. 노란봉투법은 2015년 19대 국회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개정안’을 의미한다. 해당 개정안의 유래는 2014년 쌍용자동차 파업 당시 쌍용 자동차 노조원들이 사측에 대한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자 시민단체들이 이를 돕기 위해 노란봉투에 성금을 담아 보낸 것에서 착안하였다. 노란봉투법은 그 유래대로 폭력·파괴로 인한 손해를 제외하고 노동자들의 쟁의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과 가압류를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2항에서 규정하는 사용자의 범위를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 결정하는 지위에 있는 자로 확대하였다. 이에 따라 조건이 충족된다면 하청 근로자는 원청을 상대로 교섭을 요구할 수 있게 된다.


과연 파업의 정당성을 확대하는 것으로 노사대립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논의를 토대로 보자면, 노조측은 현행 노조법과 판례상 법리가 노동자 권익보호에 굉장히 소극적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앞선 판례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고 민사 및 형사상 책임을 부담했다. 그런데 정말 이들의 주장처럼 현실에서 파업의 행사가 크게 제한을 받고 있을까? 따라서 다음으로 규범적 논의를 넘어 실제 우리 사회에 파업이 불러온 실증적 효과를 살펴보려 한다. 파업은 실제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있는가? 아니면 과도하게 기업 및 사회적 손실을 침해하는가?


2) 파업은 ‘비효율적’인가?


파업의 효과를 기업적 측면에서 분석한 연구 결과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정치적 의견이 편향적 결과를 유도할 수 있기 때문에 개별 연구결과들을 모두 신뢰할 수는 없지만 주목할만한 실증 연구 영역에서의 논의들을 간단히 소개해보려 한다. 앞선 규범적 논의가 파업 중의 행위 자체에 대해 심사한다면, 실증적 논의는 파업 전의 발생확률과 파업 후의 파장효과에 대해 분석한다.


우선, 파업의 발생확률을 결정하는 모수들을 살펴보자. 국내 파업에 관한 연구는 비교적 최신 연구는 없지만 1997년부터 2002년까지의 패널 데이터를 통해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파업발생 확률에는 기업의 재무정보보다는 과거의 파업발생 여부, 과거 불법파업 발생 여부, 과거 파업참가자수 등 과거 파업의 양태가 더 유의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는 기업의 성과에 따라 경제적 목적 달성을 위해 파업이 발생하기보다는 과거로부터 누적된 전투적 노사관계 분위기 및 관행이 이력현상(hysteresis)을 일으켜 현재의 파업발생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한다.


마찬가지로, 파업 후 파장효과 분석 결과에서도 현재의 파업뿐 아니라 과거의 파업도 현재의 기업성과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파업이 기업 성과에 가하는 누적적인 영향을 시사한다. 또한 조준모 외 1인(2006)은 다수의 통념과 달리 노사관계와 기업의 객관적 노동생산성 지표(1인당 매출액, 1인당 부가가치, 1인당 당기순이익)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고, 근로자의 경영참여 수준이 높을수록 오히려 노동생산성 간 부(-)의 효과가 성립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노동조합이 경영에 개입할수록 의사결정이 지연되고 발전적 투자 대신 단기 급여나 복지후생 지출을 선호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해외 연구에서는 Karier(1985)가 노동조합이 고임금과 저이윤을 유발하고, 파업이 간접적인 기업 부실화를 촉진시킨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Freeman과 Kleiner(1999)는 Karier가 주장한 기업 부실화 문제는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다고 반박하였다. 이는 파업의 효과가 연구 범위 및 방법, 가설 구조 등을 어떤 방식으로 구조화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결과를 도출시킬 수 있음을 보인다. 따라서 파업의 비효율성에 관한 개별 연구 결과는 비판적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또한 위의 연구들은 모두 파업의 실증 효과를 기업적 관점의 분석에만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할 점은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업의 효과이다. 따라서 파업의 비효율성은 기업적 관점을 넘어, 산업 및 사회 전반적 관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허나 사회적 손실 자체를 계산하기보다, 국내 파업의 손실을 해외 국가에서 초래된 파업의 손실과 상대적으로 비교할 때 비로소 효율성에 관해 유의미하게 논의할 수 있다. 국가 간 비교를 위해 경제 규모 등의 차이를 고려해 객관적인 노동시간 손실로 고려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각국의 실제 임금 지불 및 근로계약도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체결되므로 이를 불이행하는 파업의 파장은 그 참가자수와 파업시간에 의거해 측정된다.


이를 고려한다면, 국가 간 노사분규건수를 비교하는 방안이 고려될 수 있다. 하지만 노사분규 산정기준은 국가별로 다르기 때문에 해당 수치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대신 노사분규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발생한 사회적 손실을 근로일수로 측정한 근로손실일수를 통한 비교를 본 분석에서 채택하고자 한다. ILO에서는 국가별 경제규모를 고려하여 임금근로자 1,000인당 근로손실일수를 사용하도록 국제 비교 기준을 제시한다. 수식은 아래와 같다.


근로손실일수 = 파업기간 중 파업참가자수 파업시간 1일 근로시간(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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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연구원의 ‘2023 해외노동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2005~2022년 국내에서 파업으로 인한 근로자 1,000명당 근로손실일수는 39.5일이다. 2012년~2021년까지 10년 기준을 잡아도 38.79일에 달하는데, 이는 노조가 활성화된 독일(5.77일)의 6배 수준이고, 미국(8.5일)보다도 4.5배 높다. 옆나라 일본(0.2일)과 비교하면 197배 높은 수치이다. 총 근로손실일수를 기준으로 본다면, 2024년 파업 근로손실일수는 45만 6천863일로, 2023년 35만 5천222일 대비 29% 증가하였다.


한국과 독일의 노사관계 지표가 주는 충격은 단순히 근로손실일수가 한국이 더 높다는 사실을 지적하는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쟁의 발생 자체는 독일이 훨씬 많았다. 같은 기간 한국의 연평균 노동쟁의 발생 건수는 113.5건으로, 독일(11위19건)의 10분의1 수준에 불과했다. 마찬가지로 노동쟁의행위 참가자 수도 독일(19만 4400명)의 절반 수준인 10만 4800명이었다. 발생 건수가 적어도 압도적인 근로손실일수를 초래한다는 결과는, 파업 1단위 당 불러오는 파장이 우리사회에서 특히 막대함을 의미한다. 또한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여전히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총노동시간 대비 국내총생산(GDP)으로 측정되는 노동생산성이 보고서 발간 당시는 OECD 37개국 중 28위 하위권이었으며, 2023년 기준 38개국 중 33위까지 추락하였다.


3장. 비대한 노조 예산, 그럼에도 왜 ‘격차’는 벌어지는가


2022년 정부 국무조정실은 민주노총 등 주요 노조에 지급한 정부 지원금 규모 파악 및 보고를 지시했다. 이에 보고된 2021년 민주노총 본부 예산은 184억이며, 최대 산별 노조 중 하나인 금속노조는 550억을 포함한 16개 산별 노조 예산까지 합산 시 민주노총 총 1년 예산은 1000억원대로 추정된다. 조합원 월급에서 정액 혹은 비율로 조합비를 걷곤 하는데, 이러한 회계 내역을 외부로 공개할 의무도 없기에, 이와 같은 국무조정실의 공개 요청이 아니면 일반 시민은 알 턱이 없다. 중앙정부나 지자체가 ‘노사 관계 지원’ 등 명분으로 노조에 수십억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함에도, 이 과정에서 하자가 없는지 지속적으로 관리 및 감독하는 기관이 전무하다. 2023년 정부는 회계 제출 거부한 노조와 기존 90% 가량의 정부 지원을 받아온 양대 노조의 지원금을 축소하고, 소규모 노동조합에 지원 비율을 늘리며 노조 지원 정책을 개편하였다. 하지만 해당 정책의 지속성이 현재로서는 요원하고, 여전히 명시적인 감독 기관도 부재하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노조의 비대함 자체로 노동권의 수호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대형 노조와 노조 약자 간의 불평등을 심화한다.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2023년 기준 13%에 불과한데, 20년 전은 12%로 사실상 정체 수준이다. 근로자 30~99명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이 1.3%이며, 특히 30명 미만 사업장은 0.1%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 문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와 맞물려있다. 우리 노동시장은 ‘대기업·정규직 일자리’와 ‘중소기업·비정규직 일자리’로 나뉘어 단절돼 있다. 두 노동시장 간 임금, 고용안정성 등 측면에서의 격차가 날로 커지고 있는데, 정작 노조의 주요 활동은 대기업·정규직 중심이다. 또한 2019년 학술지 <동향과 전망>에 발표된 ‘근로자의 결합노동시장지위가 임금 분포에 미친 효과’ 논문을 보면 정규직이더라도 노조 유무에 따라 임금 차이가 확연했다. 노조가 있는 곳은 한 달 임금이 421만 9천 원이었지만, 없는 곳은 291만 2천 원으로 유노조 사업장의 69%에 불과하다. 노조에 지원금을 늘려도 노조의 품 안에 노동 약자가 없다면 권리 보장은 허상이다.


그러므로 ‘파업’도 결국은 1차적으로 ‘단결권’을 실질적으로 보장받은 자들만의 전유물이다. 파업 및 권리주장은 최소한 법적 권리를 가진 ‘노동조합’이나 그에 상응하는 집단적 응집력을 가졌을 때에 전제된다. 아이러니하게도 2024년 기준 전체 임금체불 중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체불액이 무려 74.1%에 달했지만, 노동조합은 이러한 현실을 국민들에게 충분히 알리지 못한다. 다만 현대제철의 파업 투쟁에 관여하며 왜 현대차만큼의 수익을 현대제철 근로자들에게도 보장해주지 않느냐는 주장을 외칠 뿐이고, 노동권과는 거리가 먼 정치적 집회에 조합비를 선뜻 보탠다. 노동 문제를 국민에게 알리고, 노사관계 해결을 명목으로 사용되어야 할 노조 지원비가 대기업 근로자 밀어주기 및 정치적 선동으로 흘러나가는 ‘역선택’이 대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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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노조의 전형적인 투쟁 안건인 임금 상향 요구도 좋지만, 아예 임금을 받지 못하는 이들의 문제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더 급선무이지 않을까? 최근 들어 우리나라는 임금 체불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올해 1분기(1~3월) 임금체불 규모가 역대 최고 규모인 전년 동기보다 325억원 급증한 6043억원을 기록했다. 고용부는 대지급금 제도를 통해 피해 근로자들의 떼인 임금을 ‘선지급’한다. 하지만 늘어난 임금체불 탓에 국회는 올해 1분기 제1차 추경을 통해 100% 대지급금을 690억원이나 추가 증액했다. 3월까지 체불임금 청산율은 79%로, 피해 근로자 수는 무려 7만 2839명에 달한다. 특히 건설업계는 소규모 현장의 경우 작업반장(포맨) 중심으로 임금이 지급되므로 소위 ‘가로채기’ 체불에 취약하다. 특히 건설 현장업은 왜곡된 고용구조,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만연하여 근로계약으로 상시 고용된 현장 노동자는 전무할 정도이다. 현장직일수록, 소규모 사업장일수록 체불구조에 취약하다.


또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만 안전하게 일하고 정당하게 보상을 받을 권리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비록 공법상 주체이지만, 개인으로서의 공무원, 군인, 군무원 등의 처우 개선에 관한 요구도 점점 커지고 있다. 이들은 공공사무를 수행하므로 원칙적으로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도 없고, 직무집행과 관련해 받은 손해에 대해서는 법률이 정하는 ‘보상’ 이상의 배상을 청구할 수도 없다. 연이어 발생하는 교권 침해 논란과 군인 사망 사고가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어도, 결국 누구들과는 달리 목소리를 내줄 ‘집단’이 없다. 물론 군인이나 공무원의 파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이들의 실질적 문제에 귀를 기울이고 처우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평등’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갈 것이다.


4장. 노사 양극화 이면의 ‘노조 양극화’


202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다론 아제몰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의하면, 국가 발전의 핵심 요소는 ‘정치적 권력의 분배’이다. 그는 소수의 엘리트에게 정치적 권력이 집중된 ‘배타적 제도’에서는 경제적 기회가 제한되고, 사회적 발전이 저해되며, 결국 국가 실패로 이어진다고 비판한다. 반면 정치적 권력이 분산되고, 여러 사회 구성원이 이에 따라 경제적 기회를 누릴 수 있는 ‘포용적 제도’ 하에서 국가는 발전한다. 따라서 기업의 자율성과 더불어 노동자의 생활수준과 근로조건을 보장하려는 노력은 경제강국이 되기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다. 어느 한 쪽의 권리도 포기할 수 없다.


독립 운동가 신채호 선생은 조선을 ‘아’로 일본을 ‘비아’로 정의한다면, 무조건 ‘비아’를 상대로 투쟁하기보다, ‘아 속의 비아’를 척결하고 ‘비아 속의 아’를 포섭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오늘날의 노동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노측은 사측을 상대로 무한 대립하기 보다 노동조합의 ‘비아’를 찾아야 한다. 양대 노조 중심의 운영과 비대성은 현저히 낮은 소규모 노조 결성률을 초래하고 이는 소규모 사업장에서의 임금 체불 문제 등을 심화시켰다. 또한 노조의 반복적인 파업 양태는 대기업으로 하여금, 파업을 하지 않는 경우에도 향후 파업 발생을 대비하여 임금 지급을 동결하고 대비비를 유보하도록 유도할 가능성도 높다. 무엇보다 대형노조의 비리 및 정치적 개입이 심화할수록 국민의 노동운동에 대한 인식이 악화되며, 정작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관련 논의가 위축된다.


물론 사측의 부당노동행위나 임금 동결 등이 오히려 파업의 빌미가 되어 회사로 하여금 더 큰 손실을 불러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재벌 중심 구조와 낮은 주주 환원 등의 고질적 거버넌스 문제를 품고도 노사갈등이 터지면 사측의 피해를 주장하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모습도 다소 민망하다. 만약 기업의 자정작용이 요원하다면 정부의 적극적 개입도 필요하다. 사고가 터지고 대지급금이나 처벌을 통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보다 예방적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2024년 기준 전체 체불 노동자의 32%가 건설업에 종사하였지만, 건설업에 대한 임금체불 근로감독 실시 비중은 2.9%에 그쳤다. 시장논리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따라서 소규모 사업장이나 현장직 등에서는 투명한 운영구조와 임금 개선이 이뤄져야 하고, 노조는 지원사업의 회계 내역의 투명한 공개와 사회적 인식 제고를 바탕으로 신뢰를 회복해 실질적 권리보장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부는 사측을 상대로 임금 및 근로여건 감독 및 관리 체제를 수립해야 한다. 또한 노측을 대상으로 대규모 노조 운영 감독과 소규모 노조의 자생적 결성 지원 등을 통해 노동시장의 건전한 구성을 도모해야 한다. 제도적 관리 및 감독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입법 영역에서 당론에 따라 대립하기보다, 노사문제의 전방위적 문제를 포괄하는 제도적 개선안을 수립 및 채택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경제 주체들의 목소리를 듣는 정치문화가 확립되길 소망한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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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잔디, “작년 6대 암수술 건수 17% 줄었다… 간·위암 수술 20% 넘게 감소”, 연합뉴스, 2025.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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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및 도표

[그림1] 박정은, 「노동조합과 파업을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인식」, 한국리서치 주간리포트, 제207-1호, 2022.

[그림2] (좌) 정심교, “ “‘의사들 밥그릇 지키기’ 표현은 모독”...국민 설득 나선 의협 ”, 머니투데이, 2024.05.31, (우) 김해정, “삼성전자노조 ‘파업에 6540명 참여…반도체 생산 차질 있을 것”, 한겨레, 2024.07.08

[그림3] 나상현, “파업 덜 했는데 노동손실일수 독일의 6배···한국 노동생산성의 비극”, 중앙일보, 2023.12.12

[그림4] 김용훈, “올들어 3월까지 임금체불 6043억원 ‘역대최대’ ”, 헤럴드경제, 202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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