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원 김수연
2025년 3월 4일, 국내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에 인수된 지 10년을 맞은 대형 유통기업 홈플러스가 기습적으로 법인회생 개시를 신청하였다. 회생신청 논란의 중심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린 4000억 원 규모 유동화증권의 부도를 둘러싼 변제 책임이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경영상 문제를 넘어서 그 배경에 얽힌 복잡한 자금조달 구조와 시장 내 신뢰 붕괴 과정을 보여주었다. 2000년대 이후로 실제 많은 기업들은 다양한 금융기법을 유동성 확보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새롭게 등장한 자금조달 기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함께 살펴보자.
비전통 자금조달 수단 등장의 배경
과거 기업들은 은행 차입, 회사채나 주식 발행 등 비교적 단순하고 표준화된 방식에 의존해 자금을 조달했으나 몇 차례의 경제위기와 금융시장의 변화는 새로운 자금조달 수단의 기회를 제공하였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수많은 기업들이 파산하고 금융회사들도 줄도산 위기에 놓이자 정부는 기업 구조조정, 금융시장 안정화와 부실자산 정리를 위한 다양한 수단을 모색하였다. 당시 자산유동화법이 제정되며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매각과 기업의 보유자산을 활용한 유동성 확보 목적으로 자산유동화증권 발행이 허용되었는데 부실정리 수단으로 쓰이던 해당 기법은 이후 점차 민간 기업들의 자금조달 및 자산운용 수단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또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들이 초저금리 및 양적완화 정책을 실시하며 형성된 저금리 기조와 풍부한 유동성 환경은 더욱 다양한 금융상품에 대한 수요를 촉진하였다. 자산유동화상품을 포함해 기업과 금융기관은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고 고수익 투자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구조화금융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특히나 이 시기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자금 조달이 어려웠던 신용도는 낮지만 성장성이 높은 기업들을 중심으로 상환 부담을 낮추고 자본처럼 부채를 활용할 수 있게 하는 메자닌 금융이 확대되었다. 그 배경으로 상법 및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다양한 증권 발행이 가능해지고 벤처펀드가 활성화됨에 따라 메자닌 금융 수요가 더욱 커진 영향도 한 몫 하였다. 새롭게 등장한 금융기법들은 자금조달의 유연성과 효율성을 높여 더 많은 기업과 투자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유동성 리스크의 부각
복잡한 설계를 통한 만들어진 새로운 상품들의 구조적 설계는 시장의 신뢰를 전제로 하기에 한 번 시장 불안이 촉발되면 급격한 신뢰 이탈과 함께 유동성 리스크가 증폭되는 취약성을 안고 있다. 전통적인 금융리스크 가운데 재무 리스크는 크게 신용, 시장, 유동성 리스크로 구분된다. 신용 리스크는 거래 상대방이 계약상 의무를 이행하지 못해 발생하는 손실 위험, 시장 리스크는 금리, 환율, 주가 등의 변동으로 보유 자산의 가치가 하락하는 위험, 유동성 리스크는 보유한 자산을 현금화하기 어렵거나 자금조달이 어려워 지급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위험을 말한다. 각각의 리스크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어 신용 리스크가 현실화되어 자금 회수가 어려워지면 유동성에 타격을 주고 혹은 시장 리스크로 자산 가격이 급락하면 자산 매각을 통한 현금 확보가 불가능해져 유동성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 세 리스크 중 유동성 리스크는 다른 재무리스크의 결과로 나타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를 매개로 전체 금융시스템에 충격을 확산시키는 경로가 된다는 점에서 가장 그 파급효과가 크다.
복잡한 비전통 금융기법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교해 보이는 자금조달 수단이 유동성 위기에 노출될 경우, 순식간에 자금 경색 및 경제주체 신뢰 붕괴로 이어져 전체 금융시스템을 마비시키는 시스템 리스크로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나 구조화나 메자닌금융처럼 설계가 복잡하고 시장의 이해도가 낮은 수단은 위기 상황에서 신속한 평가와 대응을 어렵게 하므로 시장 불안은 더욱 빠르게 확산될 수 있다. 본 글에서는 진화하는 자금조달 수단이 어떻게 시장에서 유동성 리스크를 초래하는지 실제 사례들을 통해 구조적으로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복잡한 금융상품이 촉발시키는 금융시장의 위기를 고찰하고 나아가 비전통 금융수단이 가지는 구조적 취약성을 보완할 수 있는 제도·정책적 시사점을 도출할 것이다.
#1. 구조화금융 리스크
구조화금융은 기존의 전통적인 금융기법으로는 충당하기 어려운 자금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증권화, 특수목적법인(이하 SPV) 설계 등을 활용하여 거래구조를 설계하는 금융기법이다. 이러한 구조화금융은 자산의 장부상 가치보다는 그 기초자산이 창출하는 현금흐름에 중점을 둔다. 자산을 직접 매각하거나 평가절하하기보다 해당 자산이 향후 발생시킬 수 있는 현금흐름을 토대로 금융상품을 설계하고 이를 통해 투자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 또한 자산의 현금흐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리스크 요인을 구조적으로 제거하거나 분리하는 데 중점을 둔다. 대표적으로 파산 위험, 조기상환 요구, 금리, 신용 등 외부 환경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법적·계약적 장치를 통해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유지되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중개기구인 SPV을 활용하여 발행기관과 투자자 간의 위험을 분리한다. 여기에는 대표적으로 자산유동화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이 있다.
자산유동화
자산유동화는 가장 대표적인 구조화금융의 형태로 특정자산에서 발생하는 현금흐름을 기초로 다양한 형태의 유동화 증권을 발행하여 자금을 조달하는 구조를 지닌다. 이러한 유동화증권은 일반적으로 채권, 수익증권, 기업어음, 출자증권 등으로 다양하다. 자산유동화는 현금흐름이 비교적 안정적인 동질의 자산들을 집합하여 이루어지며 다양한 형태의 신용보강을 통해 유동화증권의 신용등급을 상승시켜 자금조달 비용을 절감하고 투자자들의 신뢰를 확보한다. 이 때 자산을 법적으로 독립된 SPV에 양도해 자산보유자의 파산위험으로부터 투자자를 보호할 수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이하 PF)은 특정 프로젝트나 목적에 맞게 전체 자금조달 구조를 설계하는 방식으로 대표적으로 부동산 및 인프라 사업개발 등 대규모 프로젝트에 활용된다. PF는 차입자의 전체 자산이나 신용이 아닌, 해당 프로젝트 자체가 창출할 것으로 기대되는 현금흐름을 담보로 한다. 이 과정에서 SPV가 사업 수행의 주체가 되며 해당 사업에서 창출되는 현금흐름만을 기반으로 자금조달이 이뤄지기에 프로젝트 실패 시 채권자는 SPV의 자산 외에는 추가적으로 상환을 요구할 수 없다. 최근 부동산PF 금융은 자산유동화증권, 신용파생상품 등과 결합되면서 복잡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리스크 분산이 중요한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최근 발생한 홈플러스와 레고랜드 사태를 통해 어떻게 구조화금융이 리스크의 증폭 장치로 작동할 수 있었는지 살펴보자.
사례1: 홈플러스 ABSTB 부도
지난 3월 회생신청으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홈플러스의 가장 큰 논란은 카드대금 유동화 전자단기사채(이하 ABSTB)였다. ABSTB는 기업이 보유한 자산을 담보로 발행하는 단기채권으로 자금을 빠르게 조달하기 위해 사용되는 유동화증권이다. 홈플러스는 제품 납품업체에게 지급할 물건 대금을 구매전용카드로 지급해왔다. 홈플러스가 카드로 대금을 결제하면 카드사가 대금을 납품업체에게 전달하고 홈플러스는 이를 약 3개월 뒤에 상환해 대금 정산을 늦추는 식이다. 카드사 및 증권사들은 홈플러스의 매입채무를 기초로 한 ABSTB를 발행해 일반 법인과 개인에게 다시 판매하였다.
자산유동화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산보유자의 신용위험으로부터 유동화자산과 투자자를 완전히 분리하는 것이다. 자산유동화법 제13조에서 명시하고 있듯이 발행기관은 해당 자산을 SPC에 완전양도, 속칭 트루세일하여 법적으로 독립된 구조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통해 유동화된 자산이 원발행자의 재무상태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설계해야 한다. 하지만 홈플러스의 ABSTB 발행은 이와 다르게 ‘참가계약’이라는 특수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홈플러스에 대해 약 4816억 원 규모의 카드대금 채권을 가지고 있는 카드사들과 SPC가 참가계약을 맺고 SPC는 이 카드대금 중 일부를 받을 권리를 기초자산으로 하여 ABSTB를 발행하였다. 실질적인 채권을 완전히 양도한 것이 아니라 카드사 채권에 대한 부분적인 참가권만을 유동화했던 것이다. 이에 따라 채권의 실질적 권리와 통제는 여전히 홈플러스와 카드사에 남아 있었고 투자자들은 홈플러스의 영업 지속성과 신용위험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결국 홈플러스가 갑작스럽게 법인회생을 신청하며 변칙적 자산유동화의 취약성이 그대로 드러났다. SPC는 홈플러스에 대하여 직접 청구권은 갖지 않고 카드사로부터 발생하는 현금흐름에 대해 간접적으로만 권리를 행사할 수 있으므로 카드사는 홈플러스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더라도 SPC에 대해 별도의 상환 책임을 지지 않는다. 따라서 홈플러스의 카드이용대금 상환이 중단되자 SPC는 유동화증권의 상환 재원을 확보할 수 없게 되었고 ABSTB는 대규모 부도 처리되었다. 해당 ABSTB는 다수의 금융기관과 증권사를 통해 유통되었으며 투자자 상당수가 구조 자체에 대한 이해 없이 홈플러스라는 브랜드만을 신뢰하고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변제 피해는 물론 유사한 구조의 ABSTB와 단기 유동화 상품에 대한 투자심리가 위축되며 시장 유동성 경색에 대한 우려도 뒤따랐다. 금융소비자 보호 미흡 및 불완전판매 논란이 불거짐에 따라 현재까지도 계약상의 책임 소재를 묻는 법적 공방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사태는 구조화금융의 본질적 설계가 왜 중요한지 명확히 보여준다. 자산유동화는 그 이름에 걸맞은 위험 절연을 갖추지 못한다면 단순한 차입구조에 불과하며 위기 시에는 오히려 더 빠른 속도로 신뢰를 잃고 금융시장의 유동성을 흡수하는 전염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사례2: 레고랜드 ABCP 부도
2022년 9월 강원도 춘천시에서 추진된 레고랜드 테마파크 개발 사업과 관련해 강원중도개발공사 (이하 GJC)가 발행한 약 2050억 원 규모의 ABCP가 부도처리 되며 시장에 충격을 안겼다. 자금시장에 혼돈을 불러온 레고랜드는 시작부터 끝까지 순탄하지 못했던 사업이었다. 2011년 강원도와 영국의 테마파크 운영사인 멀린 그룹은 함께 출자한 GJC가 2300억 원을 투자해 테마파크를 건설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하였다. 하지만 레고랜드 일대의 도로와 상수도 등의 기반 공사를 맡은 GJC는 추가 자금조달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2020년 SPC 아이원제일차를 설립해 2050억 원 규모의 ABCP를 발행했다. 해당 기업어음은 지방자치단체인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섰기에 레고랜드의 사업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채권 신용평가 최고등급인 A1등급을 받아 다수의 증권사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2022년 5월 레고랜드는 개장했으나 그 해 새롭게 부임한 강원도지사가 코로나로 인한 경제 불황과 강원도의 재정 상태를 고려해 레고랜드 사업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내비치기 시작하며 상황은 반전되었다. 결국 상환 날짜를 얼마 남기지 않은 9월 28일, 강원도는 GJC에 대한 회생신청 계획을 발표하였고 10월 5일 2050억 원의 ABCP는 최종 부도처리 되었다.
국가 신용도에 준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채권의 부도 소식은 당시 코로나로 인한 금리 인상의 여파로 이미 유동성이 말랐던 채권 시장의 투자심리를 더욱 급속도로 얼어붙게 만들어 연쇄적인 자금 경색을 불러일으켰다. 최상위 신용을 보장하는 AAA등급 채권마저 유찰되고 신용등급이 높은 공공기관에서 발행한 채권도 고금리 보장 조건에도 목표 물량을 소화하지 못하였다. 국고채와 회사채 및 단기어음까지 채권시장 전체가 급속도로 얼어붙으며 단기물 발행금리는 금융위기 직후 수준까지 이르렀다. 가장 큰 문제는 부동산 PF 유동화증권에 대한 불신이 증권사와 건설가까지 확산된 점이었다. 레고랜드처럼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부동산 개발 사업장은 대부분 미래 사업성을 담보 삼아 PF를 통해 돈을 빌린다. 당시 부동산 시장은 물가 상승과 고금리로 인한 건설비용의 증가로 업황 자체가 좋지 않았는데 거기에 자금 경색으로 인한 자금조달 차질로 부동산 부도위기가 더욱 커졌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정부가 긴급히 유동성 지원 대책을 내놓고 금융당국도 PF 대출에 대한 관리 강화와 시장 안정화에 나섰지만 한 번 흔들린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레고랜드 사태는 비단 하나의 프로젝트 파산에 그치지 않고 부동산 PF 구조 자체가 얼마나 구조적으로 유동성 리스크에 취약한지를 잘 보여주었다.
부동산 PF는 본질적으로 자금조달의 상환 재원이 전적으로 해당 프로젝트의 미래 현금흐름에 의존한다. 즉 시행사나 모기업의 신용이 아니라 사업장에서 발생할 매출과 분양 수익 등이 유일한 상환 수단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구조는 개발 단계에서부터 자금조달에 있어 선분양-후상환의 순환 구조를 형성하는데 분양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중간에 금리가 급등하고 자재비용이 폭등하는 등 외부 환경이 악화될 경우 사업성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또한 부동산 PF는 대부분 단기자금을 차환 구조에 의존해 자금을 굴리는 방식이기 때문에 만기 도래 시 시장에서 신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하면 바로 유동성 위기로 직결되는 ‘차환 실패 = 부도’라는 구조적 속성을 가진다. 단기자금시장에 유동성 위기가 발생하게 되면 부동산 PF 유동화증권 차환발행과 자금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증권사와 시공사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며 부동산 PF 부실로 전이되어 금융기관과 단기자금시장이 충격을 받을 수 있다.
#2. 메자닌금융 리스크
메자닌금융은 전통적인 부채와 자본의 중간 단계에 위치하여 두 요소의 속성을 일부 결합한 금융수단을 말한다. 이는 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때 부채처럼 이자를 지급하면서도 일정 조건 하에 자본처럼 전환되거나 손실을 흡수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다. 일반적으로 부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은 기업 입장에서 이자비용 부담이 발생하고 주식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은 부채 부담은 없지만 지분 희석을 초래해 경영진의 통제력이 달라질 위험이 있다. 메자닌금융은 이 둘 사이에서 지분 희석 부담을 줄이면서도 자본처럼 활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하기 때문에 특히 재무구조 개선이 필요한 기업이나 신용도가 낮아 일반 회사채 발행이 어려운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었다. 즉, 일반적인 채권과 달리 주식으로 전환될 수 있는 권리를 포함함으로써 투자자는 주가 상승 시 자본차익을 기대할 수 있고 발행기업은 이자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에서 주가 하락 시 전환가격을 하향 조정하는 리픽싱을 통해 투자자에게는 불리한 시장 환경에서도 손실을 완화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대표적인 메자닌금융 수단은 다음과 같다.
전환사채
전환사채(Convertible Bond, 이하 CB)는 일정 기간 내에 발행 기업의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채권이다. 기본적으로는 채권의 형태를 띠기 때문에 투자자는 만기까지 보유할 경우 이자 수익을 받을 수 있으며 동시에 정해진 전환가격에 주식으로 전환함으로써 주가 상승에 따른 자본이득도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CB는 보통의 채권보다 낮은 이자율로 발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자금조달 비용을 절감하려는 기업에게 매력적인 수단으로 작용한다. 투자자 입장에서도 이자수익과 주식전환 수익이라는 두 가지 수익원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신주인수권부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Bond with Warrant, 이하 BW)는 채권에 일정한 가격으로 주식을 청약할 수 있는 권리인 워런트를 결합한 형태로 구성된다. CB와 달리 BW는 채권 자체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채권은 그대로 보유하면서 별도로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구조상 차이가 있다. 이러한 방식은 투자자에게 채권의 안정적인 수익과 함께 주가가 상승할 경우 워런트를 통해 주식 투자로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기업 입장에서도 주식을 직접 발행하지 않고도 자금을 조달할 수 있어 일정 기간 주가 상승에 대한 기대가 있는 상황에서 BW는 효율적인 자금조달 수단이 될 수 있다.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 사례와 크레딧 스위스 코코본드 전액 상각 사례를 통해 메자닌금융이 어떻게 시장 불안을 증폭시키고 유동성 리스크를 현실화시키는지 살펴보자.
사례1: 흥국생명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행사
2022년 11월, 국내 보험사 흥국생명은 2017년 발행한 5억 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에 대해 시장의 기대와 달리 조기상환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발표하였다. 신종자본증권은 원금의 상환 없이 이자만 영구히 지급하는, 다시 말해 만기가 없는 채권을 의미한다. 이러한 신종자본증권은 만기 상환 의무가 없기 때문에 회계상 자본으로 인정받아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RBC)을 개선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으며 시장에서는 만기가 30년 이상이어도 통상 발행 5년 후 콜옵션을 행사해 상환하는 것이 관례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2022년 당시 이미 레고랜드 사태로 한국 채권 시장에 대한 불신이 높아진 시기에 흥국생명의 콜옵션 행사 연기 발표는 한국채권에 대한 투자 심리를 더욱 악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에는 팬데믹과 레고랜드 사태의 여파로 금리가 매우 높은 상황이어서 차환하면 콜옵션을 미행사할 때보다 훨씬 높은 금리를 감수해야 했기에 금리측면상 실리 추구의 목적으로 흥국생명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재무건전성 지표인 RBC를 유지하면서 부채 부담없이 자본비율을 늘리려면 5억 달러치를 신종자본으로 계속 보유하고 있어야 했고 이를 위한 가장 합리적 수단은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기존 증권의 조기상환 포기로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한국 금융기관도 약속을 번복할 수 있다는 불신이 더욱 확산되었고 이는 한국물에 대한 전반적인 투자심리 위축으로 이어졌다. 이후 다른 국내 보험사들의 외화채 발행이 연달아 무산되거나 고금리 발행을 감수해야 했으며 메자닌 수단을 통한 자본조달 창구가 사실상 막히게 되었다. 한국을 넘어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신뢰성에 금이 갈 수 있다는 여론이 거세지자 흥국생명은 콜옵션 행사 연기를 철회했지만 한 번 무너진 시장의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고 차환 목적으로 신규 외부 자금을 조달하려고 했던 보험사들의 조달 부담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메자닌금융은 통상 만기가 길고 시장 내 거래가 활발하지 않아 평상시에도 유동성이 낮은 특성을 지닌다. 이런 상태에서 발행기관의 신뢰가 흔들리면 투자자들이 일시에 자금을 회수하려 하면서 시장에서 해당 증권을 매각하려 하지만 거래 상대방이 없거나 가격이 급락하면서 유동성 경색이 발생한다. 결국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활용한 수단이 오히려 차환 리스크를 발생시키고 결과적으로 새로운 자금 유입을 차단함으로써 자금시장 전체의 경색을 유발하는 전염 경로가 될 수 있다.
사례2: 크레딧스위스 코코본드 전액 상각
2023년 3월 스위스 금융시장감독청은 스위스 최대은행 UBS가 유동성 위기에 빠진 크레딧스위스(이하 CS)를 인수합병한다고 발표하였다. 당시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의 여파로 글로벌 은행권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CS는 수년동안 리스크 관리 실패 및 각종 소송과 과징금으로 경영 위기에 직면한 상황이었다. 잇따른 투자 실패와 유동성 위기에 따라 결국 스위스 정부와 금융당국의 주도 하에 CS는 UBS에 인수되기로 결정되었다. 문제는 인수합병 과정에서 약 22조원에 달하는 조건부자본증권(Contingent Convertible Bond, 이하 코코본드)이 전액 상각된 점이다. 코코본드는 일정 조건이 발생하면 주식으로 전환되거나 원금이 전액 또는 일부 상각되어 사라지는 채권으로 해당 조건은 보통 재무건전성 지표인 자기자본비율이 일정 수준 밑으로 내려갈 때 발동한다. 코코본드는 앞서 살펴본 신종자본증권의 한 종류로 특히나 원금 상각에 따른 전액 손실 가능성을 가진 보다 위험한 메자닌금융 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스위스 당국은 CS가 처한 파산위기가 상각조건을 만족한다고 보아 신속한 인수진행을 위해 코코본드를 모두 상각처리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CS 주식은 UBS의 주식으로 교환해주어 채권투자자보다 주주를 우선하였다는 점에서 많은 투자자들의 반발을 이끌어냈다. 일반적으로 주주가 손실을 부담한 뒤 후순위, 선순위 채권자가 차례로 손실을 부담하는 자본구조 원칙을 정면으로 뒤집는 조치였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기관투자자들이 비교적 안정적인 수익을 기대하며 보유하던 코코본드가 전액 손실 가능 자산으로 재인식되며 신규 자본조달 수단으로서 코코본드의 기능이 위축되었다. 다만 이번 코코본드 상각은 CS에 대한 구조조정이 영업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빠르게 인수 과정을 진행하기 위해 채권자 손실부담제도(bail-in) 방식으로 실행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여전히 채권투자자들의 손실에 대한 법적 공방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후 금융시장의 혼란도 어느 정도 진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해당 사건은 코코본드가 가진 태생적인 리스크의 딜레마를 잘 보여주고 있다. 공적자금의 투입 없이 은행의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코코본드는 강제로 상각될 수 있어 시장이 트리거 요인으로 크게 흔들릴 때 예고 없이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 특히 코코본드는 상각 조건이 명확하지 않고 사모 형태로 유통돼 원래도 유동성이 낮은 상품이었기 때문에 시장 불안이 커지면 매도는 쏟아지지만 매수자는 없는 거래 단절 상황이 발생하기 쉽다. 결과적으로 메자닌 금융상품으로서 평상시에 자금조달에 유연성과 수익성을 더하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오히려 신뢰 붕괴와 유동성 경색을 유발하는 불안정 요소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두 사례는 메자닌 금융이 가진 유연성과 자본성이라는 장점이 위기 상황에서는 오히려 신뢰의 붕괴를 통해 유동성 위기와 시장 전염효과로 급격히 전이될 수 있다는 취약성을 보여주고 있다. 메자닌은 복잡한 구조와 낮은 이해도 및 법적 보호의 불완전성이 결합되어 위기 시 신속한 회수와 정확한 평가를 어렵게 만든다. 이러한 특성은 시장 불안이 높아질수록 더욱 부각되며 결국 유동성 리스크가 시스템 리스크로 전이되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자본시장 안전성 제고를 위한 비전통 자금조달 보완점
최근 레고랜드 ABCP 부도, 흥국생명 콜옵션 미이행 사례 등은 비전통 금융수단이 단일 기관의 위기를 넘어 시장 전반의 신용 및 유동성 경색으로 빠르게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개별 상품의 구조적 결함뿐 아니라 투자자 이해 부족, 규제 공백, 정보 비대칭 등 복합적인 요인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위기 상황에서 신뢰 붕괴로 발생할 수 있는 시장경색을 사전적으로 미리 방지하고 사후적으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의 정비가 필수적이다.
먼저 구조화금융의 경우 ABS·ABCP 등 비등록 유동화증권의 정보공개를 강화해야 한다. 비등록 증권은 기초자산과 위험 요소에 대한 정보가 불충분하게 제공되는 경우가 많아 발행 구조와 참여기관 정보를 상세히 공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아울러 자산보유자에게 일정 비율의 증권 보유를 의무화하는 위험보유규제를 도입해 발행 측의 책임을 강화할 수 있다. 위반 시 과태료나 과징금 부과 등의 강력한 행정적 제재 조치도 병행해야 한다. 메자닌금융도 구조적 복잡성과 불투명성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 CB, BW 등 메자닌 상품은 전환 및 상각 조건 등으로 인해 투자자가 예상치 못한 손실을 입는 경우가 많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상품 설계 단계에서 구조 단순화와 핵심 조건의 명확한 설명이 필수적이다. 특히 리픽싱이나 콜옵션이 기존 주주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하고 고위험 상품 판매 시 적합성 원칙 강화, 일반 투자자 대상 정보 제공 및 교육 의무화 등의 사전 예방책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시장 신뢰 붕괴로 인한 유동성 리스크와 시스템 리스크를 방지하려면 정보 비대칭을 완화하고 투자자들이 손실 부담 구조를 사전에 이해하도록 해야 한다. 구조화금융에서는 손실 흡수 순위와 예상 손실률을 명확히 공개하고 신용평가사와 협력해 위험 평가 결과를 제공함으로써 투자자들이 자신의 투자 위치와 위험을 정확히 파악하도록 해야 한다. 메자닌 역시 손실 발생 시 투자자가 감수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손실을 공유하는 메커니즘을 사전에 설정해야 한다. 위기 발생 전 이러한 구조적 이해를 확보해두면 투자자들은 예측 불가능한 손실 대신 예정된 손실로 받아들이게 되어 금융시장 전반의 신뢰 붕괴를 막을 수 있다. 비전통 금융기법들은 자금조달의 중요한 수단이지만 복잡성과 불투명성으로 인해 위기 시 심각한 리스크를 유발할 수 있다. 따라서 금융당국은 정보공개 강화, 위험분담 유도, 감독 체계 보완을 통해 제도적 기반을 정비하고 시장 참여자들은 상품 구조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바탕으로 책임 있는 거래 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이를 통해 고위험 금융수단의 효율성과 자본시장 안정성을 함께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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