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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87호 선 11화

[오아시스] 수평선

물개

by 상경논총

몇 년 전, 대학교 입학을 앞둔 1월에 고등학교 친구들이랑 부산 여행을 갔다. 하루종일 열심히 유명한 관광지들을 돌아다니느라 진을 뺐다. 그렇게 놀고 나서 저녁에 숙소로 돌아오고 치맥을 했더니, 밤을 새우며 놀 각오로 왔던 친구들이 생각보다 일찍 하나둘씩 잠들기 시작했다.


나도 잘 준비를 하고 먼저 잠든 친구들 옆에 누웠다. 그래도 꽤 늦은 시간이어서 그런지 사방이 어둡고 고요했다. 무심결에 숙소 창문을 봤다. 숙소 창문을 액자 프레임 삼아 하늘에 별들 열댓 개가 콕콕 박혀있었다. 천문 사진 대회에서 보던 사진들만큼 별이 쏟아질 듯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정말 멋졌다.

초등학생 때까지 운 좋게 별을 발견해서 "우와 별이다!"라고 신나서 얘기하면 항상 옆에서 누군가 장난으로, 혹은 진심으로 "그거 인공위성이야,"라고 말했었다. 많이 어려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래서 그 이후에는 하늘에 반짝이는 빛을 봐도 그냥 인공위성이겠거니 생각하고 살아왔고, 하늘을 잘 안 보게 됐다.

20년 인생 중에 직접 그 정도로 “(인공위성으로 알고 있었던)별”을 많이 본 게 처음이어서 창문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검색해보니 핸드폰을 별이 보이는 방향으로 들면 그 별이 진짜로 별인지, 인공위성인지, 국제우주정거장인지, 다른 행성인지, 성운인지까지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이 있었다. 앱을 다운받고, 친구들을 깨우지 않기 위해 조용히 누운 자리에서 창문 쪽으로 핸드폰을 들어봤다. 지금까지 줄곧 인공위성으로 생각했던 “별”들이 정말 별들이 맞았다. 그날 액자 프레임에 걸렸던 별자리들은 오리온자리, 작은개자리, 큰개자리, 쌍둥이자리, 마차부자리 그리고 목성이었다.

[사진 1] 아주 희미한 오리온자리, 본인.

별도 신기했지만, 사실 그날의 하이라이트는 수평선이었다. 처음에는 하늘도 깜깜하고 바다도 깜깜해서 별이 보이길래 하늘만 창문에 들어온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불빛들이 어떤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 “틈”은 바로 수평선이었다.


[사진 2] 박철종, “[울산 겨울바다 여행코스]강동해변에서 간절곶까지…오감만족 낭만여행”, 경상일보, 2016-11-30.

처음에는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것처럼 작고 희미했던 불빛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커지더니, 이내 완전한 불빛을 이루더니 점점 항구 쪽으로 왔다. 오징어잡이배가 밤에 바다로 나갔다가 돌아오는 장면을 본 것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을 항상 알고 있었지만 이런 방식으로 두 눈으로 확인할 줄은 몰랐다.

필자는 여전히 별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날씨 좋은 날에는 밤하늘을 보면서 별자리를 찾으며 귀가하는 것이 취미이자 습관이다. 하지만 수평선은 이 이후로 한 번도 보지 못했고, 특히 오징어잡이배의 불빛이 수평선 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 신비로운 장면은 살면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부산 여행을 갔을 때 유명한 관광지들 위주로 부지런히 돌아다녔지만, 오히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밤에 자려고 누웠을 때 숙소에서 보이던 겨울 바다 경치였다. 여전히 창문 프레임으로 경치를 바라보던 장면을 생각하면, 그때의 고요한 분위기가 그대로 생각이 나고, 그때 느꼈던 신비로움도 방금 겪은 것처럼 되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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