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넘는둘리
세상 만물이 그렇듯, 음악도 선으로 짜인 예술이다. 특히 한국인이라면 높은 확률로 피아노 학원에서 오선지 악보를 마주했을 것이며, 한 번쯤 취미를 가져보겠다며 클래식 기타의 줄을 퉁겨보기도 했을 것이다. 실제로도 음악의 다양한 부분에서 선의 마법을 발견할 수 있다. 녹음이 없던 과거의 음악을 재현할 수 있는 것은 악보에 그려진 선의 공로이며, 현악기나 건반악기를 연주할 때에는 선의 길이와 굵기를 조절하며 음의 높낮이나 질감을 표현하기도 한다. 선율, 베이스 라인 등 수많은 음악 용어들도 선과 관련이 있는데, 이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선’을 주제로 하는 많은 노래들 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세 곡을 소개하고자 한다.
1. 1415 – 선을 그어 주던가
연인이 되기 전의 애매한 관계에서 오는 감정을 ‘선’에 비유하여 담백하게 표현한 인디 음악이다. 아이유의 ‘금요일에 만나요’에 모티브를 얻어 작곡했다고 하는데, 만남을 앞두고 생각이 많아지는 모습이나,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없어 답답한 마음이 드러난 가사가 많은 공감을 일으키리라 생각된다. 과하지도 허전하지도 않은 밴드 사운드가 방해되지 않고, 후렴에서 보컬의 스타일이 달라지면서 지루하지도 않은, 봄날에 추천하는 곡이다.
2. The BLANK Shop – 랜선탈출(feat. 이진아)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가수 이진아와 꼭 어울리는 아기자기한 재즈 팝 트랙이다. “랜선 속 재즈 트리오의 연주에 감동을 받아 같이 연주 해보고 싶어하는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주제와 가사, 곡 전반을 이끌어가는 칩튠 사운드(80년대 게임에서 들을 수 있는 ‘뿅뿅’ 거리는 소리를 일컫는다)까지 모두 잘 어울리는 재미있는 곡이다. 후반부의 즉흥 연주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져 햇살을 맞으면서 한가로이 산책할 때 듣기 좋으리라 생각한다. 더하여 선우정아, 10CM 등과 함께한 앨범의 다른 트랙들도 아티스트의 개성을 극대화한 곡들이니 따뜻하면서도 팝적인 재즈를 듣고 싶다면 앨범 전체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3. 혁오 – Hey Sun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혁오 노래’와 달리 단순한 기타 리프와 선문답 같은 영어 가사가 반복되는 낯선 곡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풍부한 공간감에 보컬도 샤우팅 없이 대부분 가성으로 표현되어 편안하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조성한다. ‘해는 항상 뜨고 지고, 우리의 기다림도 끝이 없다’과 같은 애매한 가사는 사랑에 대한 직설적인 표현 대신 모두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각자의 사랑이 모두 다름을 시사하는 듯하다. ‘사랑으로’ 앨범 전체가 이 트랙과 같이 일견 불친절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데, 그럼에도 늦은 저녁에 차분히 들어보면 꽉 찬 밴드 사운드를 느낌과 함께 묘한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