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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90호 시작 09화

[경제] GATT 1947의 예외 조항과 그 파급 효과

편집부원 정성현

by 상경논총

1. 여는 글


1) GATT 1947이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이것이 본 글에서 중점적으로 다룰 GATT 1947의 정식 명칭이다. GATT 1947은 오늘날의 다자간 자유무역체제를 지탱하는 협정이다. 물론 현재는 세계무역기구(WTO)가 다자간 자유무역체제의 유지와 확산을 위한 실질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WTO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자간 자유무역체제를 이끌 것인가에 대한 원칙을 담고 있는 것은 GATT 1947이다. 따라서 WTO 체제에서도 GATT 1947은 여전히 그 중요성이 크다.


그렇다면 GATT 1947은 WTO와 정확히 어떤 관계에 있는 것일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1947년으로 돌아가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브레턴우즈에서 전후 경제질서가 논의되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 그리고 국제무역기구(ITO)의 설립이 결의되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ITO는 최종적으로 설립되지 못하였다. 무역에 관한 권한 대부분을 ITO에 이관하면 자국의 이익이 침해된다는 미국 의회의 반대로 미국이 ITO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본래 ITO는 전후의 다자간 자유무역체제를 이끌 예정이었다. 하지만 ITO의 설립이 무산된 상황에서 ITO의 부속협정이 될 예정이었던 GATT 1947을 통해 다자간 자유무역체제를 출범했다.[1] GATT 1947을 토대로 다자간 자유무역체제는 큰 진전을 거두었다. 하지만 1980년대 세계적으로 불황이 심해지고 국제교역이 복잡해지면서, GATT 1947만으로는 다자간 자유무역체제를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에 따라 1986년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GATT 1947을 보완할 국제기구 설립을 위한 협상의 시작이 결의되었다. 그리고 1994년 체결된 마라케시 협정으로 WTO가 설립되었으며, 마라케시 협정은 GATT 1947의 내용을 대부분 포함하게 되었다.[2] 이러한 과정은 결국 GATT 1947이 과거에 실질적인 국제기구로 기능하였지만, 1994년 이후에는 WTO라는 국제기구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음을 보여준다.



2) GATT 1947의 주요 원칙

앞서 GATT 1947에는 다자간 자유무역체제에 관한 중요한 원칙이 있다고 하였다. 그 원칙은 바로 비차별원칙이다. 비차별원칙은 체약국들 사이의 무역상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이때 비차별원칙은 다시 2가지 원칙을 통해 구현된다. 바로 GATT 1947의 제1조 최혜국대우 원칙과 제3조 내국민대우 원칙이다. GATT 1947의 제1조에 따르면, 최혜국대우 원칙은 모든 체약국의 제품을 특정국 제품에만 특혜를 주는 일이 없이 똑같이 대우해야 한다고 규정한다.[3] 이것은 곧 수입품들 사이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가령 미국이 한국과 일본에서 자동차를 수입한다고 가정하자. 이때 두 수입품에 관세를 매길 때는 반드시 같은 관세율을 적용해야 한다. 만약 한국산 자동차에 10%, 일본산 자동차에 20%의 관세를 부과하면 이는 제품의 원산지에 따른 차별이 있다는 점에서 최혜국대우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GATT 1947의 제3조는 내국민대우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수입된 제품은 동종의 국내 제품과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4] 최혜국대우 원칙이 수입품들 사이의 비차별이라면 내국민대우 원칙은 수입품과 국산품 사이의 비차별이다. 가령 수입된 모든 제품의 세율이 50%이고 동종 국산품의 세율은 10%라고 하자. 여기서 수입품들은 모두 적용되는 세율이 똑같다. 따라서 수입품들 사이의 차별은 없으므로 최혜국대우 원칙에 대한 위반은 없다. 하지만 수입품과 국산품이 같은 대우를 받았냐고 묻는다면, 그 대답이 “아니요” 이다. 왜냐하면 수입품과 국산품은 적용되는 세율이 다르다는 점에서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경우는 내국민대우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그런데 위의 두 원칙이 어떠한 예외도 없이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GATT 1947에서도 예외 조항을 두고 어느 정도의 유연함은 보장하고 있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조항에는 제20조 일반적 예외, 제21조 안보 상의 예외, 제24조 지역무역협정 등이 있다. 제도에 있어서 예외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예외를 통해 제도가 가진 경직성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때로는 이러한 예외가 제도의 기존 취지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GATT 1947의 취지는 다자간 무역협정의 확대이다. 그렇다면 위의 예외들이 다자간 무역협정의 확대라는 취지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다음에서는 GATT 1947에서의 예외 조항에는 무엇이 있고 그에 따라 파생되는 영향은 어떠한지를 살펴볼 것이다.




2. 본론


1) GATT 1947 제21조 안보 상의 예외

제21조 안보 상의 예외는 영토의 보전 또는 정치적 독립의 유지 등을 명목으로 각국이 안보이익을 조약에 따른 국제적 의무보다 우선시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이는 국제법적으로도 안보가 국가가 마땅히 가지는 권리라는 점을 보여준다.[5] 구체적으로 제21조는 (b)항을 통해 핵물질, 전쟁 도구, 전시 또는 국제관계에 있어 비상시의 조치에 관하여 자국의 안보이익을 보장받기 위하여 무역제한을 포함한 자체적인 행동을 허용하고 있다.[6] 이러한 조항은 안보라는 핵심적인 사유에 대해서는 개별 국가의 자율성을 가능한 보장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그렇지만 제21조에는 한가지 맹점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제21조에 근거하여 각종 무역제한을 가하는 것이 각국의 재량이라는 것이다. 즉 각국은 자체적인 판단으로 제21조의 발동 여부를 정하며, WTO는 사후에 비로소 해당 판단이 적절한지를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재량을 무기로 제21조가 만약 남용된다면, 이는 불필요한 무역제한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


러시아-통과운송 사례와 한국에 대한 일본의 수출 제한 사례는 제21조의 남용 여부를 살펴보기에 적절한 비교 사례이다. 우선 러시아-통과운송 사례는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우크라이나는 EU와의 친선을 강화하면서 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우크라이나의 돈바스에서 친러 반군으로 인한 내전이 발생하였다. 이 내전을 계기로 서방을 중심으로 대러 제재가 이어지는 가운데 2016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를 경유하여 카자흐스탄으로 물품을 운송할 때 특정 경로만 이용하게 하고 특정 품목은 경유 자체를 금지하는 조처를 했다. 이에 우크라이나는 WTO 패널에 러시아를 제소하기에 이르렀다.[7] 이때 러시아는 제21조를 근거로 해당 조치의 정당성을 주장하였다. 러시아가 내세운 주장은 현재의 상황이 전쟁, 폭동에 준하며, 이는 곧 국가안보와 밀접하다는 점에서 앞서 제21조 (b)항에서 언급한 비상시의 조치에 해당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반하여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주장이 현재 상황이 비상시라는 것을 입증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결과적으로 패널은 러시아의 손을 들어줬다. 패널은 이때 비상시를 무력충돌, 잠재적 무력충돌, 긴장 또는 위기의 고조, 국가를 둘러싼 일반적인 불안정의 상황으로 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8] 당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군사적 긴장의 수준과 실질적인 군사적 충돌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비상시에 대한 패널의 판단은 타당해 보인다. 이 사례는 제21조와 관련하여 실체적인 판결이 존재하는 드문 경우이기 때문에 제21조의 발동에 관한 적절성을 살펴보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위의 사례를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사례와 비교해보자. 2019년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제외함과 동시에 불화수소, 불화 폴리이미드를 비롯하여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공정과 관련한 핵심 소재의 수출을 전격적으로 제한하였다. 이때 일본은 한국이 제3국(북한)에 불화수소를 비롯한 일본의 전략물자가 밀수출되는 것을 방치했다고 주장하였다.[9] 그리고 이를 근거로 위의 제한 조치가 제21조에 부합한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일본의 주장이 러시아-통과운송의 사례처럼 인용되기 위해서는 여러 난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한국과 일본의 상황이 비상시에 해당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러시아-통과운송의 사례에서는 돈바스 내전이라는 실제 무력 충돌이 있었다는 점에서 패널이 제시한 비상시의 요건을 만족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의 경우 우선 무력 충돌이 없을뿐더러 비상시를 무력 충돌 이외의 상황으로 확장하더라도 일종의 외교적 분쟁이 비상시에 해당하는지는 의문이다.[10] 더군다나 앞서 우크라이나가 조처한 러시아에 충분한 입증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한국과 일본 가운데 조치의 정당성을 증명할 쪽은 일본이다. 하지만 명백한 충돌이 없는 상황에서 한국에 의해 일본의 안보가 심각하게 침해되었다는 주장은 타 사례와 비교했을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 게다가 전략물자가 제3국에 밀수출되었다는 일본의 핵심 주장도 아직 추측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일본이 안보가 침해되었다는 주장을 충분히 납득시키기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제21조는 그 발동에 있어서 조건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다만 각국이 자율적으로 판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위의 두 사례는 이러한 자율성에 기초한 제21조의 발동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사례들이 상당히 상이함을 보여준다. 보다시피 한 사례는 주변 상황에 비추어 보았을 때 안보가 위협받았다는 주장이 신빙성이 있으나 다른 사례는 자율적인 판단임을 고려하더라도 과연 상당한 안보 상의 위협이 있었는지가 의문이다. 후자의 사례는 자칫 제21조를 근거로 안보를 이유로 하는 무역제한이 ‘자의적인’ 판단에 기반하여 생겨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자율성이 자의성으로 변질한 것이다. 비록 안보는 각국의 자체적인 판단을 존중해야 하는 영역이지만 이것은 반대로 안보를 명목으로 불공정한 조치들이 난립할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이러한 상황에서는 타국이 조치의 불공정성을 주장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안보라는 주권과 관련한 명분을 깨뜨리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만약 이를 악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면, 이것은 곧 다자간 자유무역체제의 걸림돌이 될 무역제한의 양산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2) GATT 1947 제24조 지역무역협정

제24조 지역무역협정에 따르면, 해당 조항에 근거한 지역협정 당사국 사이의 특혜는 최혜국대우 원칙의 예외로 인정된다. 이때 지역협정은 지역무역협정(RTA), 관세동맹(CU),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의미하여 여기서는 FTA 중심으로 논의를 이어갈 것이다. FTA는 가맹국 간의 자유무역을 위해 관세 및 비관세장벽을 완화, 철폐하는 무혁협정이다. FTA와 WTO는 각각 양자주의와 다자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그렇기에 FTA는 다른 국가보다 유리한 대우를 제공하는 것을 허용하는 반면 WTO는 다른 국가보다 유리한 대우를 제공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한다. 따라서 FTA는 WTO의 방향성과 정면으로 충돌하며, 이것이 FTA가 일종의 예외로 취급되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하지만 이러한 충돌이 무색하게 FTA는 무역창출효과와 무역전환효과를 업고 그 체결 건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한국은 1999년 칠레를 시작으로 2022년 9월 기준으로 18건의 FTA를 체결하였으며 세계적으로는 2022년 2월 기준 총 574건의 FTA가 체결되었다.[11] 분명히 FTA는 나름의 순기능이 있지만, 다자주의와 대비되는 양자주의의 부상에 따라 WTO 주도의 다자간 자유무역체제가 받을 부정적인 영향도 간과할 수는 없다. 그리고 이는 크게 WTO에 대한 회의와 FTA에 따른 블록화로 생각할 수 있다.


먼저 WTO에 대한 회의는 곧 WTO를 통해 자유무역을 확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다. 그리고 이 의구심은 WTO를 통해 모든 국가들이 동의할 수 있는 자유무역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여기서 우리는 WTO의 의사결정방식에 주목해야 한다. WTO가 채택한 의사결정방식은 크게 총의(Consensus)와 일괄수락(Single undertaking)으로 요약할 수 있다. 총의에 따르면, 어떤 안건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공식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한 국가가 있어서는 안 된다. 만장일치와는 차이가 있지만 특별히 반대하는 쪽이 없어야 한다는 점에선 맥락을 같이 한다.[12] 일괄수락은 복수의 의제를 다룸에 있어서 반드시 모든 의제를 수락할 것을 요구한다. 즉 여러 의제 가운데 일부 의제만 선택적으로 수락 및 거부하는 것은 불가하며, 반드시 모든 의제를 수락 혹은 거부해야 한다.[13] 이러한 의사결정방식 때문에 WTO에서는 안건을 처리함에 있어서 고도의 정치력과 협상력이 필요하며, 안건을 원만하게 처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2001년 WTO의 방향성을 설정하기 위해 시작한 도하개발어젠다(DDA)의 협상은 2022년 현재까지 진행 중이다. WTO 가입국은 164개국에 달하는 데 반대 의사를 표명하거나 일부라도 안건에 반대할 국가가 없게 협상해야 함을 고려하면, 이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물론 총의와 같은 방식이 회원국들 사이의 평등과 균형을 꾀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WTO를 통해 공통된 의견을 도출할 때는 효율성이 상당히 떨어지며 나아가 WTO의 운영 및 작동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FTA는 상당히 매력적인 대안 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FTA는 WTO에서와 달리 마음이 통하는 상대국을 선택할 수 있고 의제 또한 소수의 당사국끼리 유연하게 조정 및 대응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EU, 일본 등 43개국과 FTA를 체결하여 교역의 90%를 FTA 체결국과 하는 멕시코를 보면, FTA는 확장성 역시 WTO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14] 그렇기에 여러 국가들이 FTA를 WTO 주도의 다자간 자유무역을 대신할 방안으로 인식할 여지가 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GATT 1947에서는 예외 조항을 통해 FTA를 추진할 길을 열어주고 있다.


더불어 FTA는 국가들 사이의 블록화를 촉진할 수 있으며, 역시 이는 다자간 자유무역체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블록화는 경제를 여러 개의 경제권을 묶고 서로 다른 경제권 사이에는 배타적인 태도를 취하고 같은 경제권에 속하는 국가들 사이에서는 경제활동에 있어서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곧 블록 경제의 형성을 야기한다. 블록 경제는 근본적으로 모든 국가가 모든 국가에 똑같이 유리한 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자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해관계가 맞는 몇몇 국가들끼리 특별한 대우를 한다는 점에서 FTA 나아가 양자주의와 가깝다. 그리고 이 점은 FTA의 확대라는 추세가 곧 볼록 경제의 형성을 가속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보통 대부분의 FTA는 두 국가 사이에서 체결된다. 한국-칠레, 한국-미국, 한국-중국 모두 국가 대 국가로 체결된 FTA이다. 만약 모든 FTA가 위와 같이 체결된다면, FTA를 통해 하나의 거대한 경제권이 형성된다는 것은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FTA의 확대가 블록 경제의 형성을 가속한다는 위의 언급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여기서 우리는 최근의 FTA 동향에 주목해야 한다. FTA의 최근 동향은 메가 FTA로 요약할 수 있다. 메가 FTA는 일대일로 체결하는 통상적인 FTA와 달리 다수의 국가들이 보다 포괄적인 방향으로 체결하는 형태를 보인다. 대표적인 메가 FTA가 2020년 체결된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이다. RCEP는 한중일, 아세안 10개국, 호주 등 15개 국가가 참여하는 거대 FTA이다. RCEP는 글로벌 총생산의 30%, 무역 규모의 28.7%를 차지하는데, 이에 속한 국가들이 서로에게만 특혜를 주는 배타적인 포지션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15] RCEP 외에도 유럽은 유럽연합(EU), 북미는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의 형태로 메가 FTA를 맺고 있다. 그런데 RCEP, EU, USMCA는 모두 인접한 국가 혹은 같은 지역권에 속한 국가들끼리 체결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이는 각종 경제적 비용을 절감하고 교역의 편의를 고려한 차원도 있다. 하지만 메가 FTA가 고착화되고 교역의 많은 부분이 여기에 의존한다면, 세계 경제는 자연스럽게 메가 FTA를 기초로 한 지역권을 기준으로 분절된 형태를 보일 것이다. 한번 각각 RCEP, EU, USMCA에 가입한 호주, 프랑스, 캐나다의 교역 현황을 살펴보자. 호주의 경우 2021년 1~5월 기준 전체 교역액에서 RCEP가 차지하는 비중이 58.5%에 달했다.[16] 프랑스의 경우 2017년 기준 전체 교역액에서 EU가 차지하는 비중이 58.9%였으며 캐나다는 같은 시기 전체 교역액에서 USMCA 가입국 가운데 하나인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75.8%에 달했다.[17] 이는 메가 FTA를 체결한 국가의 경우, 교역의 많은 부분이 마찬가지로 메가 FTA를 체결한 국가들에 집중되는 경향이 존재할 개연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은 나아가 메가 FTA를 매개로 별도의 배타적 경제권들이 형성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FTA는 순기능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WTO의 기본적인 지향성과 충돌한다는 점에서 WTO 중심의 다자간 자유무역체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때의 부정적인 영향은 WTO 내부의 문제점이 FTA 확대로 이어지는 방향 혹은 FTA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그 자체로 확대되는 방향으로 드러난다. 물론 이에 대한 문제 제기가 제24조 지역무역협정의 전면적인 폐기로 귀결되는 것은 상당한 논리의 비약이다. 하지만 여기서 적어도 WTO 체제에서 제24조 지역무역협정을 통해 정당화되는 FTA가 역으로 WTO 체제에 어떻게 작용하는가를 예상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3. 결론


지금까지 GATT 1947의 여러 예외 조항 가운데 제21조 안보 상의 예외와 제24조 지역무역협정 그리고 두 조항의 영향에 대해 알아보았다. 위의 두 조항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제도에 일정 부분 유연성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를 근거로 WTO 회원국들이 의무에 지나치게 종속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역으로 이와 같은 예외 조항들이 지나치게 활용되면서 다자간 자유무역체제라는 WTO의 토대를 흔드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제21조 안보 상의 예외는 안보를 무기로 실제로는 안보와는 무관한 무역제한을 남발한 근거로 악용되고 있다. 그리고 제24조 지역무역협정은 WTO의 기능에 대한 회의가 강해지는 상황에서 WTO와 다자간 자유무역체제의 입지를 약화할 수 있는 지역협정을 정당하게 확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주객이 전도된 경우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예외 조항이 WTO의 방향성을 부합하고 있는지, 현 WTO 시스템이 예외 조항이 내포한 부작용을 제어할 수 있는지 등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양한 방안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WTO에 더욱 강한 강제력을 부여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이는 합리적이지 못한 이유로 예외 사항의 적용을 주장할 경우 이러한 주장을 철회할 수 있는 압력 혹은 절차에 근거한 강제적인 철회를 끌어낼 수 있다. 실제로 WTO의 핵심 조직 가운데 하나인 분쟁해결기구(DSB)는 운영에 있어서 필요한 최소한의 인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2020년부터 이어진 미국의 보이콧으로 최소한의 인원조차 구성하지 못하여 지금까지 사실상 마비 상태에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WTO의 위상을 강제력의 부여와 같은 방법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충분히 효과적일 것이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 방안이 존재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점은 다자간 자유무역체제라는 원칙과 예외 조항이라는 유연성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이다. 만약 한쪽이 다른 한쪽을 사실상 무력화한다면, 이것은 항상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다. 원칙이 앞서면 제도는 지나치게 경직될 것이고 반대로 유연성이 앞선다면 제도의 본래 취지가 훼손될 것이다.


다자간 자유무역체제는 전 세계에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풍요와 연결을 가져다주었다. 내가 이득을 보기 위해서 상대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제로섬 게임의 통념을 깬 다자간 자유무역체제는 모두가 함께 잘 사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훌륭한 발명품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지금은 다자간 자유무역체제가 일종의 혼란기를 겪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 뛰어난 체제를 포기하기에는 당장 우리가 감당해야 할 대가가 너무 크다. 때문에 다자간 자유무역체제가 올바른 방향성을 갖고 유지될 필요성이 상당하며, 이를 위해서 각국이 머리를 맞대고 미래지향적인 논의를 펼칠 시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참고문헌


문헌

구민교, 「무역-안보 연계 관점에서 본 한일 무역 갈등, GATT 제21조 안보상의 예외를 중심으로」, 일본비평, 24, 2021, 229쪽.

박경석, 「왜 도하개발아젠다 협상은 타결이 어려운가? : GATT 및 WTO 무역자유화 협상에서의 의사결정」, 무역학회지, 36(5), 2011, 24쪽.

박언경, 「국제통상분쟁에서 안보예외조항의 법적 쟁점과 과제, 러시아-통과운송 사건을 중심으로」, EU연구, 58, 2021, 73쪽.

현오석, 『세계 통상흐름을 FTA가 주도』, 나라경제, 2006.

박덕영, 『국제경제법 기본조약집』, 박영사, 2016년, 73쪽.

위의 책 81쪽.

위의 책 177쪽.

한국국제경제법학회, 『국제경제법』, 박영사, 2022년, 142-143쪽.

위의 책 42-43쪽.

신문기사

김선재, “’트럼프식 무역분쟁’으로 판 뒤집기?”, 이코노미뉴스, 2019. 07. 18.

양철민, “경제블록 중심 헤쳐모여∙∙∙통상 판이 바뀐다”, 서울경제, 2022. 01. 13.

이상원, “전략물자 밀수출 한∙일 주장 뜯어보니”, 시사IN, 2019. 07. 30.

정은주, “코로나 이전보다 나아진 호주의 2021년 상반기 교역”, Kotra 해외시장뉴스, 2021. 08. 05.

웹페이지

제약산업정보포털의 무역환경 ▶ 수출입 현황 자료

https://www.khidi.or.kr/board?menuId=MENU01858&siteId=SITE00024

FTA 강국, KOREA의 FTA 현황 자료

https://www.fta.go.kr/main/situation/kfta/ov/

KOFOTI의 전세계 FTA 추진현황 자료

https://ftatex.or.kr/tmcis-ptlweb/fta/fta0210L.do



[1] ITO가 기구(Organization)인 반면 GATT 1947은 협정(Agreement)이다. 따라서 WTO의 회원국을 Members라고 칭하지만 GATT 1947의 체약국은 Contracting Parties라고 칭한다.

[2] GATT 1947의 내용은 WTO의 탄생과 함께 체결된 GATT 1994에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마라케시 협정은 GATT 1994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마라케시 협정은 GATT 1947의 내용을 포괄한다.

[3] 박덕영, 『국제경제법 기본조약집』, 박영사, 2016년, 73쪽.

[4] 위의 책 81쪽.

[5] 위의 책 177쪽.

[6] 한국국제경제법학회, 『국제경제법』, 박영사, 2022년, 142-143쪽.

[7] 김선재, “’트럼프식 무역분쟁’으로 판 뒤집기?”, 이코노미뉴스, 2019. 07. 18.

[8] 박언경, 「국제통상분쟁에서 안보예외조항의 법적 쟁점과 과제, 러시아-통과운송 사건을 중심으로」, EU연구, 58, 2021, 73쪽.

[9] 이상원, “전략물자 밀수출 한∙일 주장 뜯어보니”, 시사IN, 2019. 07. 30.

[10] 구민교, 「무역-안보 연계 관점에서 본 한일 무역 갈등, GATT 제21조 안보상의 예외를 중심으로」, 일본비평, 24, 2021, 229쪽.

[11] 각각 FTA 강국, KOREA의 FTA 현황과 KOFOTI의 전세계 FTA 추진현황 자료를 참고한다.

[12] 한국국제경제법학회, 『국제경제법』, 박영사, 2022년, 42-43쪽.

[13] 박경석, 「왜 도하개발아젠다 협상은 타결이 어려운가? : GATT 및 WTO 무역자유화 협상에서의 의사결정」, 무역학회지, 36(5), 2011, 24쪽.

[14] 현오석, 『세계 통상흐름을 FTA가 주도』, 나라경제, 2006.

[15] 양철민, “경제블록 중심 헤쳐모여∙∙∙통상 판이 바뀐다”, 서울경제, 2022. 01. 13.

[16] 정은주, “코로나 이전보다 나아진 호주의 2021년 상반기 교역”, Kotra 해외시장뉴스, 2021. 08. 05.

[17] 제약산업정보포털의 무역환경 ▶ 수출입 현황을 참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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