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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Dec 21. 2022

2022년, 나를 웃긴 말들

소리 내서 웃은 적이 언제인가, 가물가물하신 분 들어오세요.

  나는 연애지상주의도 외모지상주의도 아닌 '웃음지상주의'이다. 심지어 수업 시간에도 '큰 웃음 1회 + 작은 웃음 3회'를 유발하는 장치를 배치해 둔다. 슬프게도 성공 확률이 그리 높진 않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수연 선생님 = 웃기고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주입식 교육을 한다. 고백하자면, 구독자님들에게도 내 글이 웃기고 재밌다는 세뇌를 몇 번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풉.. ㅎㅎ


  2022년 연말을 맞아 올해를 정리하는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주제로 쓸까, 한참을 생각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웃음'을 주제로 쓰기로 했다. 나는 글쟁이라서 언어유희를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나를 웃겼던 말에 대한 기록을 남겨본다. 서론이 좀 길다. 그 이유는 혹시라도 재미없을까 봐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핵노잼이라는 굴욕적인 말을 들을까 봐) 밑장을 좀 깐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반드시 웃게 될 것입니다. (세뇌... 세뇌... 세뇌...)



#1.

엄마 지인 : 딸은 결혼했어요?

우리 엄마 : 저희 딸은.. 반만 결혼했습니다.

ㅋㅋ..



#2.

지우(내 친구, 33세)가 금이(내 딸, 8세)와 놀아주고 있었다.

금이 : 내가 속담을 그림으로 그려볼 테니까, 무슨 속담인지 이모가 맞혀봐.

금이가 종이에 호랑이인지 고양이인지 헷갈리는 동물을 그렸다.

지우 : 아~ 알겠다! 고양이한테 줄 긋는다고 호랑이 될까.

ㅋㅋㅋㅋ 정답은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였다.



#3.

한 여름이었다. 내가 에어컨 희망 온도를 23도로 설정해 두었는데, 금이가 그걸 보고 화를 냈다.

금이 : 아 진짜 23은 꼴도 보기 싫어. 당장 22도로 해놔.

알고 보니 금이가 반에서 제일 싫어하는 남자 짝지가 23번이었다. 참고로 금이는 22번이다. ㅋㅋ



#4.

혜숙(우리 엄마, 63세)이 금이 겨울 옷을 사주신다고 해서 함께 백화점에 갔다. 금이가 마음에 드는 니트가 있었는데 혜숙은 그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혜숙 : 금아, 그 옷은 목도 잘 늘어날 것 같고 색깔도 하얀색이라서 잘 더러워지고 별로야.

금이 : 내가 입을 옷인데 내 마음에 들어야지 할머니 마음이 뭐가 중요해?

이 모습을 지켜본 옷가게 사장님이 폭소를 터뜨리셨다.

사장님 : 우와~ 너 진짜 똑 소리 난다. 내가 여기서 10년 장사했는데 너처럼 자기주장 확실한 어린이는 처음 봐. 너 커서 뭐가 돼도 되겠다. 여성 지도자 뭐 이런 거? 미리 악수라도 한 번 해놔야겠다. ㅋㅋ



#5.

효준(내 사촌오빠, 42세), 지훈(효준의 아들, 9세), 금이가 만났던 날이었다.

금이 : 삼촌~ 지훈이 오빠는 참 웃기고 재밌어요.

효준 : 그렇지?

금이 : 네. 근데 장난기도 심해서 삼촌이 지훈이 오빠 키우신다고 고생이 많아요.

효준 : ㅋㅋㅋㅋㅋㅋ

지훈 : ???? (의문의 1패...)



#6.

최근 우리 할머니 생신이어서 온 가족이 모인 날이었다. 삼촌, 숙모, 고모, 고모부 등등 대가족이 모였다. 이분들에겐 아직 내 이혼을 알리지 않은 상태였다.

삼촌 : 금이 아빠는 안 왔어?

나 : 네...

금이 : (나에게 귓속말로) 엄마, 이혼했다고 말 안 했어?

나 : (금이에게 귓속말로) 응.. 아직 말 못 했어.

금이 : 내가 해줄까?

나 : (당황) 아니.. 엄마가 할게.

금이 : 엄마도 아까 전에 나 러닝셔츠 안 입은 거 큰 소리로 다 말했잖아.

나 : 미안해~ 앞으로는 안 그럴게 ㅋㅋ



#7.

할머니 생신 파티 중, 우리 아빠랑 금이가 나눈 대화 중 일부.

아빠 : 금아 이제 2학년 올라가니까 공부도 열심히 해야지.

금이 : 할아버지~ 지금 내 나이에는 공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노는 게 더 중요해.

아빠 : 그래도 공부도 열심히 해야 엄마처럼 훌륭한 사람 되지~  

금이 : 할아버지 공부 안 했어도 지금 행복하게 잘 살고 있잖아.

아빠 : ㅋㅋㅋㅋ 그건 그래... ㅋㅋ



#8.

얼마 전, 잠자리에 누워 금이와 나눈 대화이다.

금이 : 엄마, 엄마랑 나랑은 몇 살 차이야?

나 : 우리? 28살 차이지.

금이 : 그럼 엄마 나이가 1000살 되면 나는 몇 살이야?

나 : 1000살? ㅋㅋ 엄마가 그때까지 살 수 있을진 모르겠는데, 1000에서 28을 빼면 금이는 972살이겠네.

금이 : 엄마, 나 그러면 산타 할아버지한테 크리스마스 소원으로 이렇게 빌래. 엄마는 1000살까지 나는 972까지 살게 해 달라고.. 나는 다른 선물은 필요 없어.



  마지막 금이의 말은 나를 웃기기도 했지만 울컥하게도 만들었다. 아이를 키워본 사람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부모는 가끔 아이에게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예상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100년 동안 받을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당겨 받은 느낌이랄까. ㅎㅎ


  새해엔 웃게 되는 일이 더 많아지길. 글도 더 잘 쓰게 되길. 무엇보다 건강하길. 모두 모두,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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