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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점에서 전교 1등까지(2)

초3 때 빵점도 받아본 내가 고3 때 전교 1등을 할 수 있었던 이유

by 장수연

난 나와 내 친구들이 특별한 경우라고 생각했는데,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이런 경우들을 정말 많이 봤다. 중학교까지는 전교에서 놀만큼 좋은 성적을 유지하다가 고등학교에 와서 성적이 뚝 떨어지는 경우. 우리 반 아이들과 상담을 하면서 아이들 얘기를 들어보았다.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고등학교 공부는 일단 양이 너무 많고 단순히 암기하는 것만으로는 안 되기 때문에 중학교 공부랑은 다르다고 했다. 중학교 때는 학원에서 선생님이 알려주신 핵심 정리 요약본만 달달 외우면 벼락치기도 되지만, 고등학교 공부는 양이 많기 때문에 다 외울 수가 없고, 외우려고 하더라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혼자 공부해서 모의고사도 된다.


우리가 흔히 공부를 한다고 하면, 수업을 듣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수업을 듣는 것과 학습이 일어나는 것은 거의 독립 사건에 가깝다. 어떤 수업을 듣고 나서 무엇을 이해하고 이해하지 못했는지를 구분한 뒤,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다시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혼자 힘으로 밖에 할 수 없는 과정이다. 수업을 듣는 것은 새로운 내용을 '접해보는 것'에 가깝고,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진정한 학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근데 학원을 다니면, 수업을 또 듣게 되기 때문에 배운 내용을 혼자서 숙성시킬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 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이제라도 혼자 공부하는 습관을 기르고, 부족한 부분만 과외 같은 개인 지도를 받으면 안 되겠냐고 했지만, 이미 학원의 포로(?)가 되어버린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너무 불안해서 안 될 것 같다고 했다. (중학교 내신 한 번 망치는 거랑 고등학교 내신 한 번 망치는 건 너무나 다른 문제이니까)


그러고 보면, 나의 경우에도 중학교 때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나만의 공부 루틴을 만들었다. 수학은 한 학기 선행하기. 방학 때 개념원리 같은 문제집을 사서 스스로 개념을 깨치고 예제를 풀며 익숙하게 해 놓은 다음에 학교 수업을 들었다. 영어는 약간 사이비 윤선생을 했었는데(무슨 말이냐면, 나를 가르치시던 윤선생님께서 해고를 당하셔서, 조금 저렴한 가격으로 영어 과외처럼 봐주심), 선생님께서 감사하게도 주요 영문법을 한 꼭지씩 가르쳐주셨고 노트에 스스로 정리하도록 유도해주셨다. 그래서 고등학교 입학 후에도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다. 예외적인 문법 사항 몇 개 정리하고, 새로운 단어만 쭉 암기하면 되었다. 다른 과목들은 시험 시작 한 달 전부터 시작해서 단권화를 거친 후, 반복해서 보면 되었다. 백지에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을 다 적어본다든지, 엄마랑 아빠한테 교과서에서 문제를 내달라고 하기도 했고(두 분 서로 하기 싫으셔서 서로에게 미루심ㅠㅠ 부부싸움 각), 나중엔 내가 스스로 괄호 문제를 만들어두었다가 하루 정도 뒤에 풀어보기도 했다.


비교적 중요하지 않은 중학교 내신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 나름의 시행착오를 다 거쳤기 때문에,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정해진 방식 그대로 공부하는 시간만 조금 더 늘려주면 되었다. 물론 고등학교 때 공부하면서 슬럼프도 겪고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그 시기를 이겨내는 노하우도 스스로 조금씩 쌓아갔다. 힘들 때는 서점에 가서, 선배들의 합격 수기나 공부 방법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문구류를 싹 바꾸고 나면 새롭게 공부할 의지가 생기는 날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이냐가 아니라, 스스로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느냐(교육학적 용어로 메타인지 능력)이다.


고2 성적표 가정통신문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빵점에서 전교 1등까지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1. 엄마가 학원을 보내지 않으셨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중학교 공부를 하면서 충분한 시행착오를 거칠 수 있었다. 그 결과,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나에게 맞는 학습 방법을 찾을 수 있었다.


2. 친구와 선생님으로부터 좋은 자극을 받았다. 이로 인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스스로 들게 되었다(외적 자극으로 인한 내적 동기 유발).



특히,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나에게 품으시는 기대감은 그 어떤 것보다도 나를 성장하게 만들었다. 선생님은 그저 나를 공부만 잘하는 아이로 만들어주신 게 아니라, '선생님처럼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도 심어주셨다. 어린 날의 나처럼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아이에게도 관심을 주는 선생님이 되는 것. 자기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잠재력을 먼저 발견하고, 성장하게 도와주는 선생님이 되는 것. 교사 생활 10년 차인 지금도 여전히 그런 교사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선생님께서 늘 '우리 수연이는 나중에 커서 작가나 시인이 될 거야'라고 하셨는데, 이렇게 지금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으니, 선생님이 말씀하신 나의 꿈도 이룬 셈이다.




이 글을 보고 계시진 않겠지만, 스승의 날을 맞이하여 적어봅니다.

조정숙 선생님, 잘 지내고 계시지요?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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