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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점에서 전교 1등까지(1)

초3 때 빵점도 받아본 내가 고3 때 전교 1등을 할 수 있었던 이유

by 장수연

어렸을 때 나는 굉장히 조용하고 존재감이 없는 아이였다. 생활기록부에 늘 '발표력이 부족하다'라고 적혀있을 만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서는 것을 두려워했다. 공부도 잘하지 못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나눗셈 시험에서 0점을 받은 적도 있었다. 당시 짝지였던 아이랑 장난치느라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아서였다. 화가 나신 담임 선생님께서는 시험지에 부모님 확인을 받아오라고 하셨고, 다음날 재시험을 치겠다고 하셨다. 나는 부모님 도장을 몰래 찍어서 선생님께 제출했고, 우리 부모님은 이 사실을 아직도 모르고 계신다(알면 큰일 남ㅋㅋ). '이제 도장은 찍었고, 내일 재시험만 잘 치면 되는데...' 하면서 교과서를 보고 혼자 공부를 하는데, 하나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나눗셈이 원리만 깨우치니까 너무나 간단하게 풀리는 것이었다. 이때가 최초로 내가 공부에 재미를 느꼈던 순간이었다.


이후 두 가지 계기로 인해 나는 공부에 완전히 빠져들게 된다. 첫 번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 집에 놀러를 갔는데, 친구가 EBS 방송을 보면서 노트 필기를 하고 있었다. 나랑 제일 친한 친구였는데, 이 친구는 학생회 활동도 하고 공부도 꽤 잘했던 아이였다. 친구가 노트 정리를 하는 게 어찌나 재밌어 보였는지, 나도 그 친구를 따라서 필기를 해보았다. 그땐 내용의 숙지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예쁘게 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때 이후로 글을 읽고 나만의 스타일로 정리하는 게 재미있어진 것은 확실하다.


두 번째 계기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만나면서이다. 내 인생의 은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조정숙 선생님. 초등학교 5학년 올라올 때까지 상장 한 번 받은 적이 없던 나였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내가 쓴 독후감을 보시고, 글을 잘 쓴다며 우리 반 대표작으로 선정하겠다고 하셨고, 조금만 수정해오라고 하셨다. 나는 열심히 글을 고쳐나갔고, 그 글로 전교생들 앞에서 상을 받게 되었다. 선생님의 기대와 수상의 짜릿함은 나 스스로 '나도 하면 되는 아이구나'를 알게 해 주었고,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2년 동안 (글쓰기뿐만 아니라 수학경시대회 등 다방면에서) 수십 개의 상장을 받게 된다.


독후감만 잘 썼을 뿐인데 연쇄반응으로 수학까지 잘하게 됨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학원을 거의 다니지 않았다. 놀 시간이 많아서 좋기도 했지만, '왜 우리 엄마는 친구 엄마처럼 학원에 가라고 하지 않으실까?' 궁금했었다. 좀 더 크고 나서야 '우리 집 살림이 어려워서였구나'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중학교 입학을 앞둔 시점에서 나는 너무나 불안해져서, 최초로 엄마에게 학원을 좀 보내달라고 떼를 썼다. 엄마가 안된다고 하시자, 눈물 자국이 맺힌 편지(주 내용은 '다른 친구들이랑 출발선이 다른데 어떻게 내가 잘할 수 있냐'라고 부모님을 원망하는 내용)를 썼다. 엄마는 하는 수 없이 월 30만 원 정도 하는, 당시에 새로 생긴 보습학원에 보내주셨다. 그리고 중학교 반편성 배치고사를 쳤는데, 우리 학원에서 전교 1~3등이 다 나왔다. 나는 전교 3등으로 전교생들 앞에서 대표로 학교 배지를 수여받고 입학하였다.


나는 역시 학원빨이 통했다며 기뻐했으나, 첫 중간고사까지만 다니고 학원을 그만두었다. 이유는? 첫 번째로는 맞기 싫어서. 영어 단어 안 외웠다고, 수학 쪽지 시험 못 쳤다고 때리는 것이 불합리해 보였다. 두 번째로는 학원 수업이 생각보다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아서. 물론 학교 수업과 다르게, 약간 쨉실하게(?) 외울 수 있는 비법 같은 것을 알려주신 건 좋았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과 함께 듣는 수업이다 보니 내가 이미 다 이해한 것을 또 들어야 될 때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는 좀 웃긴 이유인데... 학원에 다니던 한 남자아이가 나를 좋아했는데, 난 그게 너무 싫었다. 난 여중이었기 때문에 내 친구들은 학원을 통해 연애를 많이 했었다. 근데 그때 나는 god 계상오빠에게 빠져있었기 때문에 내 또래 남자애가 눈에 들어올 이유가 없었지... ㅋㅋ


아무튼 이런 이유로 인해, 첫 중간고사를 그럭저럭 잘 치르고 나서 학원을 그만두었다. 엄마랑 같이 서점에 가서 문제집을 고르고 혼자 공부를 시작했다. 학원에서 어떻게 하는지 대충 알았기 때문에, 유사한 문제집 중에서 디자인이나 구성이 내 마음에 드는 것, 설명이 잘 되어있는 것들을 골라 구입했다. 혼자 힘으로 준비한 기말고사 성적은 약간 떨어졌지만, 큰 차이가 없는 정도(평균 94점 → 90점 정도)였다. 이후 중3 때까지 내 성적은 약간의 변동은 있었지만, 꾸준히 상선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중학교 반편성 배치고사에서 전교 1, 2등을 했던 친구들은 여전히 그 학원에 다니는 중이었고, 꽤 괜찮은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들의 격차는 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눈에 띄게 벌어진다. 나는 고등학교 반편성 배치고사에서 전교 5등을 했고, 늘 전교 10위권 안에 들었던 반면, 그 친구들은 중위권 정도로 뚝 떨어지게 된 것이다.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에서 받은 교과우수상 & 중학교 3학년 때 받은 교과우수상

글이 너무 길어져서 2편으로 나누어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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