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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의대 합격생 관찰 일지(1)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제자에 관한 이야기

by 장수연

내가 두 번째로 발령을 받은 학교는 일반계 남자 고등학교였다. 우리 동네에서 '공립 일반고의 마지막 보루'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반고이긴 하지만 꽤나 성적이 좋은 아이들이 많은 학교였다. 서울대 합격자도 매년 나오긴 했는데, 내가 근무한 4년 동안에는 '설의(서울대 의대를 줄여서 부르는 말)' 합격생이 3명이나 나와서 모두가 놀랐었다. 나는 이 세 명 중에 두 명을 가르친 경험이 있다. 내가 관찰한 이 두 아이의 특별한 점에 대해 글을 써보려 한다.


A학생은 고2 때, 내가 담임을 맡았던 학생이다. 이 아이는 3년 간 전과목 내신 평균이 1.0xx 일 정도로 공부를 잘했었다. 모의고사를 가장 잘 쳤을 때는, 전체에서 두 개를 틀렸다. 이대로라면 '수능 만점도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A가 공부를 잘할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이다. 아무리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라고 할지라도, 자습시간에 엎드려 자는 모습을 한 두 번쯤은 볼 수 있는데... 이 아이는 늘 초집중해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하는지 A의 주변 공기만 유독 뜨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속으로 '얘는 잠도 없나? 비실비실하게 생겼는데, 체력이 좋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A의 어머님께서 나에게 전화가 왔다.

"선생님, 요즘 A 학교 생활 어떤가요? 집에서는 공부도 거의 안 하고 너무 일찍 자서 걱정이에요."


나는 속으로 '요 녀석, 비법이 여기 있었네..'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께는 "A가 학교에서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있으니, 옆에서 지켜만 봐주시면 됩니다."라고 말씀드리며 안심시켜 드렸다. 잠을 충분히 자고, 깨어 있는 시간에 집중해서 공부하는 것. 그것이 A의 비결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생각보다 잠은 공부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가끔씩 시험 전 날 밤을 새우고 와서 시험을 치는 아이들이 있는데, 나는 엄청 위험한 행동이라고 경고한다. 내 경험을 돌이켜보아도 공부를 열심히 하고 나서 잠을 충분히 자야지, 그날 공부한 것이 내 뇌 속에 자리 잡는 느낌이 난다. 또, 외운 것을 다시 상기시켜야 할 때 정보 인출도 더 잘된다. 나의 무의식 속에 저장되어 있는 어떤 것(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이라 부르는 것)도 더 잘 활성화된다. 나는 반 아이들과 학습 상담을 할 때면,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수면 시간이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평균 5시간 정도 자는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잠을 더 줄여야 할지 고민'이라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A 이야기를 해준다. 핵심은 '얼마나 자느냐가 아니라, 깨어있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라고!


A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부족한 부분도 있었다. 바로 리더십과 같은 인성 요소. A는 고등학교 3년 내내 한 번도 학생회 활동이나, 반장 혹은 부반장도 한 적이 없었다. 천성이 내향적이고 남들 앞에 나서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아이였다. 그럼에도 이 아이는 설의에 수시 일반전형(학생부 종합전형)으로 합격했다. (반드시 학생 회장이나 학급 임원을 해야만 종합 전형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


A의 특별한 점은 친구들을 이겨야 할 상대 선수가 아닌, 함께 뛰고 있는 페이스 메이커로 봤다는 것이다. 나는 학기 말 학급 행사로 '우리 반 모범학생 투표'를 실시하는데, '내가 모르는 것을 가장 잘 가르쳐주는 친구' 부문에서 A가 압도적인 1위로 뽑혔었다. '당연히 공부를 잘하니까 잘 가르쳐주는 게 아닌가...'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상위권 학생 중에서도, 친구가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고 귀찮아하는 경우가 참 많다. (사실, 누군가를 가르쳐주는 것이야말로 최상위 단계의 학습인데 말이다.)


또, A는 반장이 아님에도 우리 반 자습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우선 A가 자습 시간에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하니까, 그 자체로 우리 반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남고 특성상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어, 종종 자습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때가 있었다. 그럴 때 A는 약간 정색을 하며 "공부하는 시간이니까, 공부에 집중하자"라고 말했다고... 그 모습을 지켜본 아이들이 나에게 얘기해줬다.


"쌤, 맨날 웃기만 하던 A가 화내니까 무서워가지고, 그날 울반 애들 다 빡공(빡세게 공부)했어요."


난 속으로 '이 녀석 참 기특하네... 담임 역할까지 해주고...'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A의 이런 모습... 겉으로 확 드러나지는 않지만 은은한 리더십, 인성, 협동심, 배려심에 대해 아주 구구절절 생활기록부에 적어주었다. (결코 학생부 부풀리기 없이... ONLY 사실만 기록했음을 맹세합니다!)


그런데, A가 설의에 합격한 후, 후배들을 대상으로 한 멘토링 강연에서 난 A의 참 의도를 알게 되었다.


"여러분이 정말로 끝까지 공부를 열심히, 그리고 잘하고 싶다면, 친구를 적으로 만들지 말고 동료로 만드세요. 친구들 놀 때 혼자 독서실 가서 공부해야지라고 하지 말고, 교실을 좋은 면학 분위기로 만드세요. 그러면 내가 공부가 하기 싫고 흔들리는 날, 옆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을 보고 다시 힘내서 공부할 수 있습니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그리고 이런 멋진 녀석이 그 해 교지 [우리 반 한 마디]에 이렇게 멋진 말을 적어주었다.



내 인생에서... 비록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멋진 녀석들을 매 년 만나고 있으니... 나는 정말 운이 좋은 교사다.



글이 길어져서, 두 번째 학생 이야기는 2편에서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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