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제자에 관한 이야기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생활기록부만 놓고 보면 B는 '인문계열 학생'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교육과정은 수학과 과학을 중점적으로 선택하긴 했는데, 수상 내역이나 자율/진로 활동을 보면 인문·사회 관련 활동이 대다수다. 인문학 탐방, 문학 기행, 시인 특강, 북 콘서트 등등... 거의 모든 인문 사회부 행사에 참여했다. 백일장, 독서감상문 쓰기 대회, 토론 대회, 우리말 겨루기 같은 대회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렇게 많은 행사에 참여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1~2학년 내신 성적은 압도적인 수준은 아니었다(내 기억이 맞다면 1.3 정도였던 것 같다).
평소 B를 애정 하시던 많은 선생님들께서 "다양한 활동하는 것도 좋지만, 공부에 시간을 조금 더 써라. 최고의 스펙은 내신이다"라는 조언을 하셨다. 그러나 B는 선생님의 말씀 따위 고위 접어 나빌레시고(선생님 말 꼭 잘 들어야 되는 건 아니라는 게 증명됨), 학급 반장, 학생회 활동까지도 이어나갔다. B가 2학년일 때 반장이었던 그 반은 유독 반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고 수업이 잘 되었다. 나는 학습자 중심의 최첨단 교수법을 장착한 우수 교사(ㅋㅋ)로서, 아이들이 모둠 활동에서 학습한 내용을 발표하고 부족한 부분을 내가 정리해주는 식으로 수업을 했다. 그런데 B가 팀원들에게 설명해주는 내용을 들어보면 나도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아주 설명을 잘했다.
B는 시험을 잘 치기 위해 대충 수박 겉핥기 식으로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원리부터 정확하게 파고들어 이해하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머지않아 이 아이의 성적 포텐이 터지는 날이 오겠구나'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B가 3학년이 되었을 때, 그날이 진짜 오게 되었다. 그해는 코로나 첫해로 개학 연기에 온라인 수업에 많은 학생들이 혼란을 겪었던 시기였다. 그런데 B는 그런 외부 상황에 동요되지 않고, 꾸준히 자기만의 페이스로 공부를 했다고 한다.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는 독서실에서 하루에 12시간에서 14시간 정도 공부를 했다고 하니... 3학년 1학기 내신이 올 1등급인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정말 감동스럽지 않은가? 이런 아이가 내 제자라는 게 너무 자랑스럽고, 이런 인재를 알아봐 준 서울대 의예과가 너무 사랑스럽다. ㅎㅎ 1년쯤 지났을 때, 나는 '우리 학교에 자진 입수하고 있는 애들도 좀 구해달라고...!!' B에게 SOS를 보냈다. B는 흔쾌히 응해주었다. 인상 깊었던 점은, 나는 B가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위주로 말을 풀 거라고 생각했다. 좋은 강의나 교재 소개, 월별 to do list 같이... 근데, 그날 B가 강연한 내용의 핵심은 공부를 "왜" 하는가 였다.
"좋은 대학 가려고요."
"좋은 직업 가지려고요."
B는 고3 때, 공부 슬럼프가 심하게 와서 이 문제를 한참 동안 생각했다고 한다. 공부 때문에 엄마와의 관계도 틀어지고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고 한다. 거듭 생각을 한 결과, B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내가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지금 내 앞에 주어진 과제이기 때문이다." 정말 멋진 생각이지 않은가? 올지 안 올지도 모를 미래를 위해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것. 이것은 내가 늘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렇게 멋진 대사로 B는 특강을 마무리하고, 우리는 그날 맛있는 식사를 함께 했다. 그리고 나의 사심 채우기 타~임!! 내가 진짜 궁금한 질문~!! 도대체 '어머님이 누구니 도대체 어떻게 너를 이렇게 키우셨니(feat. 박진영)'를 시전 했다. B가 나에게 해준 말은 "초등학교 저학년 땐 그냥 많이 놀게 하고, 책 많이 읽어주고, 평생 즐길 수 있는 좋은 취미 - 예체능 학원 보내주라는 것" 뿐이었다. '교과서 위주로 공부했다'는 수능 만점자의 발언(망언)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이렇게 끝내기 아쉬워서... 내 나름 설의에 합격한 A, B 학생의 공통점을 분석해보았는데...
그건 다음 글에서 알려드릴게요~!! ㅎㅎ (호기심 유발 작전 엔딩~!!)
부족한 글이지만,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