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까지 설의에 합격한 자랑스러운 제자들에 관한 썰을 풀었다. 물론 내가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인성"과 "더불어 사는 마음"이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 선생님, 공부 잘하는 학생만 예뻐하는 거 아냐?!!"
난 절대 아니라고 정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졸업하고 나서 지금까지 쭉 연락하고 지내는 대다수의 찐 애제자들은 거의 대부분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못했다. 드릅게(?) 못한 녀석들도 있고, 중간 정도 했던 애들도 있다. 아무튼 이래서 자식 다 키우신 쌤들이 "잘나서 서울 간 자식 놈보다, 공부 못해도 부모 옆에 붙어사는 놈이 효도한다"라고 하셨나 보다.
교원능력개발평가가 증명해주는 차별 없는 나의 사랑ㅎㅎ
내가 교직에 들어온 지 5년 차 정도 됐을 때, 학교에 대한 회의가 심하게 든 적이 있었다. 학교란 공간은, (물론 특성화고나 예술고는 얘기가 조금 달라지겠지만) 어쩔 수 없이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돋보인다. 그럼 나머지 아이들은 들러리인가? 이 생각을 엄청 많이 했었다. 실제로 대놓고 '공부 잘하는 애들 깔아주기 싫다'라고 말하고 자퇴한 학생도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학교가 꼭 필요할까?'로 시작된 나의 생각은 <일리치의 탈학교론>을 향해가고 있었다. 이렇게 (학교로 인해 먹고사는 사람임에도) 탈학교론에 심취한 나를 구제해준 건 옆반 선생님이셨다. 그 선생님은 나보다 9살이 많으신데, 어느 날 학년 모임을 마치고 이 선생님과 단 둘이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나도 모르게 내 생각이 막 입으로 나왔다(지금 생각하니 부끄러움).
"선생님, 학교에서 좋은 것도 많이 배우지만, 나쁜 것도 많이 배우는 것 같지 않아요? 친구 따라 욕도 많이 쓰고 불법 스포츠 토토 같은 것도 하고... 또 경쟁 유발하고 성적에 목매달게 하고... 공부 못하는 애들은 좌절감도 크고..."
"맞아요. 근데 저는 학교가 일종의 예방 접종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만약에 우리 사회가 무균실이라면, 학교가 필요 없겠죠. 근데 우리 사회가 그렇진 안잖아요. 착한 사람만 사는 곳도 아니고, 학교보다 더 경쟁이 치열하고, 그 결과에 따라 계층이 나뉘는 잔인한 곳이잖아요. 그러니 학교에서 미리 겪어보고 면역을 기르는 과정이 필요한 거죠."
이어서 자기는 수업 시간에 공부 잘하는 아이를 무시(?)하는 발언을 자주 한다고 하셨다.
"너희들이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9등급 받는 애들이 없으면 절대 너희는 1등급이 나올 수가 없잖아. 그러니까 너희들이 걔들한테 잘난 척할 것이 아니라, 너희가 오히려 그 아이들을 모셔야 해. 나 같으면, 걔들 전학이나 자퇴 안 하게 하려고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친절하게 대해줄 거야."
맞는 말이다. 그리고 교직 10년 차인 지금... 학교에서 돋보이지 않던 아이들이 학교 밖에서 빛이 나는 사례들을 정말 많이 봐왔다. 학교라는 예방 주사를 잘 맞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저마다의 속도로 각자의 자리에서 훌륭히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면, 내가 학교에서 정말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그리고 모든 꽃은 피는 시기가 다르다.
내가 상담할 때, 아이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그리고 흔들리며 늦게 피어난 선배들 사례도 덧붙여준다. 몇 가지만 공유해보자면...
사례 #1. C는 열 개를 가르치면 겨우 하나를 배우는 학생이었다. 그렇지만 특유의 눈웃음과 친근함으로 열 번을 더 가르쳐주고 싶게 만드는 아이였다. 성적이 좋지 못했는데, (로또라고 불리는)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으로 지방 국립대에 운 좋게 합격했다. 근데 쌤들은 걱정이었다. 거기서 일반 전형으로 들어온 애들이랑 같이 공부를 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 걱정은 완벽한 기우였다. 이 아이가 대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쯤, 자기 과에서 과탑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허걱... 대박...!! 머선 일이고..) 갑자기 그렇게 된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른들이 말하는 뒷머리가 트인 건지, 전공 공부가 적성에 너무나 잘 맞았는지... 아무튼 그땐 남자 친구도 안 사귀고(이미 고등학교 때 사귈 거 다 사귀었다고 함), 그냥 도서관에 산단다. 그리고 졸업할 때쯤 공기업에 합격해 지금까지도 아주 잘 살고 있다.
사례 #2. D는 우리 학교의 연예인이었다. 수업시간에 애들이 졸려하면, 쌤들은 D를 부르곤 했다. 선생님 성대모사 메들리 좀 해달라고... ㅋㅋ 그럼 D는 교실을 뒤집어놓으신다. 축제 때도 장난 아니다. 여학생임에도 파워풀한 남자 아이돌 댄스로 무대를 뒤집어놓으셨다. 이렇게 학교를 신나게 다닌 D였는데, 입시 결과는 잔혹했다. 재수를 결정하고 넉넉지 못한 살림에 혼자 독서실에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스트레스로 체중이 20킬로 정도 늘 만큼 앉아서 공부만 한 결과, 이듬해 수도권 대학 일반사회교육과에 합격한다. 그런데 대학교에 가서도 방황을 했단다. 성적 맞춰서 간 학교라 진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휴학도 여러 번 하고 댄스 동아리 활동만 열심히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4학년 때 교생 실습을 갔는데, 자기랑 교직이 너무나 잘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딱 1년 죽을 둥 살 둥 피똥 쌀 둥 공부를 했고, 이 아이는 작년에 나랑 같은 교육청 소속이 되었다.
사례 #3. 우리 반 꼴찌이자 천재 댄서. 성적표 조작해서 엄마한테 엄청 야단맞던 아이. 한 3년 전에 만났을 때, 워너원 백업 댄스 한다고 일본도 따라가고 했다고... (강다니엘 팬인 나는 네가 제일 부럽구나...)
사례 #4... 사례 #5.... 밤을 새워서 적어도 다 못 쓸 얘기들이 있다. 그리고 밤 새 이야기해도 지겹지 않을 것이다(저만 그렇겠죠...?ㅎㅎ).
괴테는 말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우리 집 준호(2PM)는 말했다.
인기는 계절이다.
출처 : http://naver.me/FMwSY1ec
누구에게나 자신이 돋보이는 시절이 온다. 중요한 건 얼마나 빨리 가는지가 아니라,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이다.내 딸에게도, 내 제자들에게도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