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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의에 합격한 제자들의 공통점

우리가 타인에게 친절해야 하는 이유

by 장수연

앞선 글에서 소개했듯이, 설의에 합격한 내 제자 A, B 둘의 공통점을 나름대로 분석해보았다.


1. 타고난 공부 재능(이해력, 암기력, 논리적 사고력 등)이 있는 아이들이다.

- 자, 솔직히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 이 아이들은 타고난 공부머리가 좋은 아이들이다. 그 결과 공부라는 분야에 있어서는 투자한 시간 대비 결과가 좋은 것이 사실이다.


2. 각자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자신이 잘하는 것을 살려서 학교 생활을 했다.

- A의 경우 리더십은 부족해도 내신이랑 교과 활동이 좋았고, B는 내신이 부족해도 비교과 활동 내역이 좋았다.

- 설의 합격생의 스펙과 비슷하게 생기부를 만들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스카이캐슬'의 예서 엄마가 목매달던 '영재의 포트폴리오'가 없어도 설의에 갈 수 있음이 증명된 셈이다.


3. 스스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있었다.

- 지난 글에 쓰진 않았지만, A는 중학교 때 친구들로부터 느낀 소외감 때문에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B는 과학고에 가고 싶어서 중학교 때 미친 듯이 공부를 했다고 한다(비록 과고는 합격하지 못했지만).

- 중요한 것은, 계기가 무엇이든 "스스로" 시작했다는 것이다. 옆에서 하라고 하면 더 하기 싫어지는 게 사람 심리다(특히, 저요! 트레이너가 식단 조절하라고 하면, 평소 안 먹던 회까지 당기는 사람).


4. 사교육을 활용했지만, 사교육에 절대적으로 의지하지는 않았다.

- A, B 학생 둘 다 학원이나 인강의 도움을 받았지만,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메인이었다.

- 자신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 알고, 필요한 학원/과외/인강을 택하는 것도 자기 주도적 학습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단, 자기가 선생님을 이용해야지, 선생님의 수입을 위해 자기가 이용당하면 안 된다!!


5. 자신만을 생각하기보다는 주변을 돌아보고 함께 잘되는 길을 택했다.

-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처럼, 친구들을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고 동료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제 분석한 내용을 나의 육아에 적용해보면? 우선, 1번은 아빠(엄마ㅎㅎ)가 미안해야 할 부분이다. 타고난 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 아이가 어떤 분야에 있어서 노력 대비 좋은 결과를 내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요즘 내가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김연아 선수 부모님은 어떻게 딸에게 피겨를 시키게 되었을까? 보아 님은 어떻게 가수의 길로 가게 되었을까? 찾아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사소하고 우연한 계기이다. 그러니까 내가 우리 아이에게 해줘야 하는 것은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서 우연한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다.


2번에서 4번 항목은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많이 없다(근데 사실 이게 제일 어려움). 그저 묵묵히 기다려주고 자기가 필요하다고 하는 부분을 도와주면 된다. 학원 가고 싶다고 하면 학원에 보내주고, 공부보다 다른 교내·외 체험 활동에 관심 있어하면 잔소리하지 않고 응원해주는 일. 이와 관련해서 최근에 읽었던, <그냥 살아만 있어. 아무것도 안 해도 돼(이유미X이하연)>라는 책의 일부를 소개하고 싶다. 이 책은 엄마와 딸이 함께 쓴 책인데, 딸인 하연 양이 이런 비유를 한다.


"엄마, 우리들 세상은 길 건너편에 있어. (…) 눈으로야 다 보이니까 어른들은 다 안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완전 다른 세상이야. 다른 규칙과 생각으로 살고 있다고."


그냥 살아만 있어. 아무것도 안 해도 돼(이유미X이하연)

그러면서 엄마는 '내비게이션'의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목적지까지 이런저런 다양한 길이 있다고 안내는 해주되, 선택은 자신이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나 또한 '내비게이션 맘'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헬리콥터 맘'이 아니라.


마지막 5번 항목. 사실 나는 5번 항목에 내 육아 철학의 방점을 찍는다. 10년 간 교사생활을 하면서 봐온 아이들 중에 유독 타인에게 공감을 잘하고 베푸는 아이들이 있다. 이 아이들은 자존감이 높고 삶에 대한 태도가 긍정적이었다. 처음엔 단순히 '집에서 사랑 많이 받고 자라서 나눠줄 줄도 아는구나'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미움받을 용기(고가 후미타케, 기시미 이치로)>라는 책을 읽고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공동체, 즉 남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라고 느끼는 것. 타인으로부터 '좋다'는 평가를 받을 필요 없이 자신의 주관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라고 느끼는 것. 그러면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게 된다네."
"즉 타자 공헌이란 '나'를 버리고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가치를 실감하기 위한 행위인 셈이지."


아들러 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이 책을 통해,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행동으로 인해 자존감이 높은 아이가 되었을 수도 있음(즉, 사랑을 나눠줌으로써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것처럼 보임)을 깨달았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사비를 털어 학급 행사를 만들 때나, 굳이 안 해도 되는 상담을 1년에 두세 번씩 돌리면서, 나 스스로가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딸에게도 스스로가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도록,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아이가 되도록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얼마 전에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 새끼 - 이지현 님 편>을 보았다. 수학 천재라고 평가받는 이지현 님의 아들이 엄마를 때리자 오은영 박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금쪽이 어머니, 수학을 잘하고 한글을 빨리 깨치는 거 하나도 안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을 때리는 것은 절대 안 되는 행동입니다. 금쪽이는 이걸 못 배웠어요. 이유가 어찌 됐든 못 가르친 겁니다. 금쪽이가 이지현 씨의 아들이지만, 사회의 한 구성원입니다. 이렇게 사람을 해치고 때리는 걸 두고 볼 수 없습니다. 이걸 제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정말 안 되는 겁니다. 누가 가르쳐야 하죠?"


나 역시 반성해본다.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가르치기 위해 꼭 가르쳐야 하는 것을 놓치고 있진 않은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도록 가르쳐야겠다. 더 나아가서는 타자 공헌을 함으로써 높은 자존감을 가진 아이로 키워야겠다고 다짐해본다.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말했다. 또 내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 『바람만이 아는 대답』, 밥 딜런




지금 이 순간 힘든 싸움을 하고 있는 모든 분들께

제가 쓴 이 글이 작은 친절이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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