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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호 May 06. 2024

또 다른 시작

너무나도 사랑했던 일

내가 어디에서 일을 하게 될지 결정이 났다.

솔직히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전혀 감이 안 왔다.

막상 명단에 내 이름이 있는 걸 본 순간

‘드디어 일을 하러 가는구나’ 하는 실감이 확 느껴졌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 두근거림이 설렘인지 불안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제발 사람을 잘 만나기를 다시 또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내가 일할 곳은 내 커리어를 놓고 봤을 때는 좋은 길인 거 같지만

아직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염두에 두었을 때는

무리한 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좋은 일인지 안 좋은 일인지 가늠이 안되니 떨림이 강해졌다.

지금 내가 준비하고 있는 여러 가지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을까

과연 내가 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내 상태가 괜찮아질 수 있을까

많은 물음표들이 또다시 생겨나기 시작했다.

두근거림을 안고 다시 출근을 한 날

많은 사람들의 나를 향한 염려와 걱정 어린 시선을 생각보다 잘 견뎌냈다

그리고 내가 맡은 업무는 다행히도 이전에 맡은 업무와 비슷한 결이지만

내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업무였다

그리고 같이 일할 사람들도 이 바닥에서 베테랑인 사람들이라

내가 감당해야 할 부담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나는 내 몫만 열심히 해결하면 될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무사히 잘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던 어느 날 몸이 으스스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 느껴보는 느낌이라 뭐 때문에 아픈 지 알 수가 없었다

시간이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른 복직이 몸에 무리가 됐을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다 보니 무리가 됐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나는 내가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몸이 반응을 하는 것을 보니 아직은 괜찮은 게 아니구나

내가 나를 좀 더 관찰하고 보살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일을 다시 시작한 지 4개월 차

한 달에 1~2번씩 심리 상담을 받고

위경련과 건강 악화로 한 달에 한 번씩 링거를 맞으며

회사를 다니긴 했지만 어쨌거나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

(물론 우울증 약은 줄이지 못한 채 지금까지 복용하고 있다)

사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나는 현타가 왔었다

휴직하기 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이 얼마나 나쁜 사람이었는지

지금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마음 따뜻한 사람인 지 느꼈고

그동안 얼마나 주위에서 나를 압박하며

담당자라는 이유로 책임감이라는 이유로

빨리빨리 일을 처리하도록 나를 궁지에 몰아넣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준비하던 건축사 자격시험은

원래 계획대로 준비하지 못해서 시험은 당연히 망했고

나는 내 몸이 이지경이 된 게 많이 억울했고 멘탈적으로 무너지기도 했다

그렇게 주저앉아 펑펑 울고 나서 다시 일어나 주위 사람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조바심을 내지 않고 침착하게 내 페이스대로 일을 할 수 있냐고

그랬더니 어떤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해 주셨다

“지호야 일은 마라톤 같은 거야 단거리 레이스가 아니란다.

 주위에서 나를 향해 빨리빨리 재촉을 한다고 그 페이스를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주저앉고 나가떨어지기 마련이다.

 주변에서 재촉할수록 자기 자신을 스스로 지키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아프지 않고 오래 일을 할 수 있어.”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가 나에게 무언가를 머릿속으로 집어넣은 느낌이 들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몰랐던 이야기도 아니었다

현실이란 회오리 속에서 살다 보니 이 중요한 것을 그냥 잊고 살았을 뿐이었다

세상에서 나 자신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나를 끊임없이 시험대 위에 올려놓은 건

어찌 보면 더 잘하고 싶은 나의 욕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억울해하지 말자

그 어떤 순간이 내 앞에 다가와도 나 자신을 제일 먼저 챙기고 사랑하자

자기 자신의 한계를 이기기 위해 나 자신을 상처 내면서까지 시험대 위에 올리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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