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moments_44

-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by 슈크림빵

누군가는 반나절을, 어떤 이는 하루를, 다른 이는 몇 날 며칠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소렌토를 대할 테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스쳐 지나가기에는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었다. 이름 모를 꽃과 나무와 절벽 위 집들과 깎아지른 바위와 바다까지, 하나 또 하나가 모여 완성된 온전한 결과물인 소렌토는 지상에 존재하는 천국임에 틀림없었다. 과연 언제부터, 어디서부터였을까? 궁금했다. 해서 그들은 소렌토의 깊은 울림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Via Correale, 50 80067에 위치한 Correale di Terranova Museum은 고대 나폴리 가문의 마지막 후손인 'Alfredo & Pompeo Correale' 두 형제가 자신들이 모은 예술품 전시를 위해 1924년 개관한 박물관으로, 총 3층, 24개의 방을 갖춘 건물로, 입구를 지나 정원의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나무 사이를 지나면 깎아지른 듯한 전망대와 벨베데레 테라스에서 나폴리 만의 화려한 풍경을 즐길 수 있다. 1층에는, 소렌토의 고대 역사와 코레알레 가문의 역사, 소렌토 반도의 묘지에서 발견된 유물과, 루이 15세 스타일의 가구와 17-18세기 나폴리 매너리즘 화풍의 그림이 전시되어 있고, 콘솔과 거울로 가득한 호화로운 거실의 방은 현재에도 클래식 음악 및 오페라, 결혼식, 문화 행사 등을 위한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어지는 16-18세기 플랑드르 회화를 전시한 방을 따라가면, 나폴리와 시칠리아 독립 왕국을 건국할 때까지의 역사의 에피소드를 나폴리 장식을 이용해 그린 그림을 파노라마로 감상할 수 있다. 또한, 박물관 1층에는 소렌토 출신의 작가이며, 시인이자 철학자인 토르콰토 타소(Torquato Tasso)와 관련된 지역 역사 출판물과 작품 연구 및 수집을 목적으로 1924년 설립된 도서관이 현재도 운영되고 있으며, 17-19세기에 이르는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방대한 역사에 관한 도서를 소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식물학, 고고학, 신문, 잡지, 이탈리아 및 외국 문학 작품을 살펴볼 수 있다.

2층에서는 17-18세기의 정물화와 더불어 18-19세기 풍경화의 변천을 기록한 외국 풍경 화가들과 피틀루(Pitloo), 뒤클레르(Duclere), 지간테(Gigante), 팔리치(Palizzi)의 작품과 함께 유명한 '포실리포 학파(School of Posillipo)'에 소속된 19세기 나폴리 예술가들의 귀중한 풍경화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3층에는 도자기 컬렉션이 전시되어 있는데, 방 내부에는 세브르 공장의 중요한 꽃병 두 개를 포함하여 백자, 비스킷 조각상, 찻주전자, 향료 및 세면도구, 촛대, 잉크병, 파이프, 식기류가 전시되어 있다.


Via Bartolomeo Capasso를 거슬러 올라와 Corse Italia를 띠라 타소광장으로 향하다 보면 만나는 L'Agruminato는 소렌토의 전형적인 오렌지 재배지를 보존한 곳으로, 이를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가벼운 산책이 가능한 녹지 공간이다. 정원이 위치한 부지는 원래 Grand Hotel Excelsior Vittoria의 소유로, 총 6만㎡의 면적은 점차 그 규모가 줄어들었고 게다가 이 지역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며 사실상 거의 사라질 위기에 놓였으나, 다행스럽게도 소렌토 전통을 후대에 전수하고자 한, 지방 자치 단체에 의해 적극적으로 보존되고 있다. 이런 노력 덕에 방문객들은 숲을 가로질러 걸으며 오렌지와 레몬을 보고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이곳을 벗어나 코르소 이탈리아(Corso Italia)를 따라 타소 광장(Piazza Tasso) 방향으로 향하면 안젤리나 라우고 광장(Piazza Angelina Lauro)에 닿는다. 이곳은 'Flotta Lauro'의 창립자이며, 소렌토와 나폴리를 기반으로 한 선박업의 대들보였던 아킬레 라우로(achille lauro)의 사유지이다. 그를 상징하는 흉상과, 잘 가꿔진 정원을 조망한 다음 다시 코르소 이탈리아 (Corso Italia)의 직선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Palazzo Tiritone Sorrento와 나란히 선 Basilica Santuario del Carmine을 만나게 된다. 타소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는 카르멜의 복되신 동정녀에게 헌정된 교회로 16세기 후반 건축 이래로 여러 번 손상을 입은 탓에 17세기에 재건되었다. 내부에는 단일 본당과 측면 제단이 있고, 후진에는 마돈나의 생애 중 일부 에피소드(성모마리아와 성모승천, 수태고지)를 묘사한 그림이 장식되어 있다. 타소 광장을 등지고 Viale Enrico Caruso를 따라가면 소렌토 반도에서 가장 잘 보존된 계곡인 Vallone dei Mulini에 다다른다. 13세기에 돌로 지어진 제분소였던 이곳의 이름은 당시 밀을 갈기 위해 사용되었던 '방앗간'에서 유래되었으며, 1940년 대에 폐쇄되어 버려졌지만, 현재 소렌토 반도의 가장 매혹적인 전망대의 역할을 하는 계곡일 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독특한 식물의 서식지로도 유명한데, 이는 해당 지역의 높은 습도와, 부족한 환기, 햇볕과 용화암절벽이 만들어낸 결과에 의한 것이다.


VIco Sant Aniello를 따라가다 보면 Palazzo Correale에 이른다. 14세기에 지어진 역사적 명소로, 다양한 모양과 다자인으로 장식된 건물 정면의 아치형 창문들 중, 유독 고딕 스타일의 창문 아래로 있는 대비되는 돌로 만든 장식 패턴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palazzo correale를 등지고 서면 마주하게 되는 Via Pietà는 코르소 이탈리아(Corso Italia)와 평행을 이루나 다소 조용한 거리로, 고대 지도에 나타나는 데쿠마누스(로마 도시 계획의 일부) 선을 따라 이어진다. 이곳은 타소 광장과 소렌토 두오모의 종탑을 연결하는 소렌토의 역사적이고 인상적인 거리 중 하나로, 14세기까지 소렌토의 삶의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좁은 거리를 거닐다 보면 13-14세기 이탈리아 남부에서 인기를 끌었던 후기 비잔틴 및 아랍 건축물을 대표하는 베니에로 궁전(Palazzo Veniero)이 눈에 띄는데, 12-13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사용되지 않은 건물이나 소렌토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 사례 중 하나이다. 골목을 따라 걷다 왼쪽으로 돌면, 나폴리에서 활동했던 토스카나 대가들의 영향을 받은 아라곤 시대의 건축 형태인 비코 갈란타리오(Vico Galantario)를 볼 수 있다. 항상 그림자 속에 속해 있는 비밀스러움을 간직한 'Via Pietà'를 따라 거닐다 만나게 되는 중세 시대를 뒤로 하면 타소 광장이라는 현재로 복귀한다.


Piazza Torquato Tasso, 18, 80067,, 소렌토 항구가 내려다 보이는 난간에 등을 기대고 서면 타소 광장(Piazza Tasso)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광장의 왼쪽으로는 Chiesa del Carmine가 있고, 시선을 돌리면 소렌토의 수호성인 산탄토니노와 유명 작가 토르콰도 타소(Torquato Tasso)의 동상이 눈에 띈다.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시계가 달린 탑이 시선을 잡는데, 'sedile di porta'는 중세 시대에 귀족 시민들의 모임을 하기 위해 지어진 공간이었으나 1319년 귀족들 간의 충돌로 버려지게 된다. 이후 일부 귀족들의 기부에 의해 복원되었지만 1800년에 귀족들의 모임이 해체되면서 구조적 변화를 겪게 된다. 감옥으로 사용된 후에 도시 민병대를 위한 경비실로 사용되었다가 소렌토의 개인 클럽으로 탈바꿈했다. 타소 광장을 내려다보는 1882년 제작된 건물 외관의 시계 역시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그것은 '39년의 침묵'이라 불린다. 시민들의 일과 삶에 시계탑은 깊숙이 침투해 있었기에, 시계의 침묵을 대하는 그들의 시선은 부정적이었다. 결국 지자체는 시민들의 뜻을 받아들였고, '시간의 소리'는 다시금 울려 퍼졌다.


Via San Cesareo를 따라 걷다 보면 고대 건축물인 Sedil Dominova가 보이는데, '좌석 도미노바'라 불린다. 풀이하면 도시 행정을 위한 의회 회의가 열렸던 곳으로, 1300년 시작된 소렌토 귀족들의 회합의 장이었던 이곳은 약 5세기 후, 상호부조 노동자 협회의 본부가 되었다. 둥근 아치 아래, 양면이 개방된 사각형 방의 구조로, 수차례의 복원 과정 속에서도 16세기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건물의 벽과 돔의 아래쪽 부분에는 소렌토 가문의 다양한 문장이 프레스코화로 그려져 있고, 건물 뒷벽은 공간을 확장시키는 투시도의 형태로, 천사들의 무리가 소렌토의 문장을 받치는 장관을 묘사하고 있다. 과거, Via San Cesareo와 Largo Padre Reginaldo Giuliani 사이의 교차로에는 'Schizzariello'라 불리는 고대 분수가 있었다. 전체가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입을 크게 벌린 해양 생물 두 마리를 묘사하고 있는 이 분수는 수세기 동안 주변 지역의 기준점이자 만남의 장소였을 뿐만 아니라, 여인들이 물을 길던 곳이기도 했다. Largo Padre Reginaldo Giuliani를 따라 Sorrento Limoncello(와인농장)로 이어진 직선도로를 따라가면 Villa Comunale와 만난다. 회랑과 San Francesco d'Assisi 교회를 포함하는 기념비적 단지 주변에 위치한 아름다운 공원의 테라스에 서면, 나폴리 만과 베수비오 화산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1877-1879년 사이에 지어진 이곳은 프란체스코 수도사의 정원에 자리하고 있다. 잘 가꿔진 정원과 올리브 나무 사이를 거닐며 하는 산책, 역사가 바르톨로메오 카파소(Bartolomeo Capasso), 치안 판사 프란체스코 사베리오 가르지울로(Francesco Saverio Gargiulo)에게 헌정된 흉상 감상, 소렌토에서 발견된 고고학 발굴물을 전시한 박물관 방문,, 이 모두가 가능하다. 음악 및 연극 공연이 수시로 개최될 뿐만 아니라 특히,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화려한 조명 장식을 감상할 수 있다. 소렌토의 랜드마크인 Villa Comunale에서 Via Vittorio Veneto를 따라가면 소렌토에서 가장 오래된 Hotel Tramontano을 만난다. 이곳은 Torquato Tosso가 태어난 곳이자, 작가 헨리크 입센(H. Ibsen)에게 영감을 준 장소로 유명하다. 그리고 마주한 Piazza della Vittoria는 마리나 그란데(Marina Grande)와 마리나 피콜라(Marina Piccola) 사이에 위치해 있다. 광장 중앙에는 1차 세계 대전의 전사자들을 기리는 장엄한 기념비(Il Monumento ai Caduto)가 있고, Hotel Tramontano과 Hotel Bellevue Syrene 사이에 있는 전망대는 익히 알려진 포토존으로 늘 북적인다. 광장과 Via Vittorio Veneto가 만나는 길의 모퉁이에는 1881년 헨리크 입센이 '유령'을 집필했던 집이 남아 있다. 외벽에 기념패가 걸려 있어 쉬이 눈에 띈다.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걷다 보면 깎아지른 절벽 위에 위치한 Villa Tritone를 만날 수 있다. 원래 이곳은 AD 1세기에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손자 아그리파 포스투무스(Agrippa Postumus)의 거주지였고, 당대의 시인이었던 오비디우스(Ovidius)가 자주 방문했던 곳이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이곳 또한 손상을 입었다. 13세기에는 수도원이 세워졌고, 16세기에는 사라센족의 의해 파손되었다. 1888년, 탐미주의자였던 조반니 라보니아(Baron Giovanni Labonia) 남작이 이곳을 구입하였고, 신고전주의 양식의 현재의 빌라가 지어졌다. 소렌티노 반도(Sorrentine Peninsula)의 바위 위 해발 60m 지점에 위치한 빌라의 암벽에 새겨진 계단을 타고 절벽을 내려가면 로마인들이 사용했던 고대 동굴이 있다. 20세기 초, 전 이탈리아 주재 미국 대사이자 부호였던 윌리엄 월도프 애스터(William Waldorf Astor)가 빌라를 구입한 후, 건물을 확장하고, 집 주변에 약 2헥타르에 달하는 영국식 정원을 만들었다. 정원은 나폴리 만과 캄파넬라에 노출된 용화암 기슭에 지어졌으며, 그 뒤로는 카프리 섬까지 이어진다. 해수면 조망이 가능한 테라스에는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고대 님파에움(nymphaeum)이 있으며, 동쪽은 등나무로 덮인 경계벽으로 보호되어 있고, 안쪽으로 이어진 그늘진 길은 야자수, 오렌지나무, 로마와 그리스 시대의 조각상들이 늘어서 있다. 또한 정원에는 화양목, 참나무, 사이프러스, 여러 종류의 담쟁이덩굴뿐 아니라 아말피 해안의 대표적인 붉은 제라늄, 클리비아, 자카란다 및 분수와 백합 연못이 있다.

3층으로 이루어진 빌라는 로마 유적과 문화적, 역사적으로 중요한 145점의 고고학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내부는 궁전 인테리어로 유명한 프랑스 장식가의 손을 빌려 럭셔리한 고궁으로 재탄생하였다. 대리석 바닥과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이루어진 건물 1층의 살롱은 보통의 아름다움과 독특한 우아함까지 두루 갖추고 있는데 그래서일까, 1943-1945년까지 네덜란드 대사관으로 사용되었다 한다. 20세기 전반 이탈리아의 삶과 문화에 정통했던 이상주의 철학자이며 역사가인 베네데토 크로체(Benedetto Croce)가 소렌토에 머무는 동안 사용했던 도서관 겸 사무실이 있고, 측면에는 바다 전망을 조망할 수 있는 발코니가 있다. 고대 로마의 유적 위에 선 이곳은 나폴리 만과 베수비오 화산, 마리나 그란데 및 소렌토 해안의 멋진 전망을 감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원에는 700종 이상의 식물, 꽃, 나무가 심어져 있다. 깎아지른듯한 절벽 위에 선 건물 내부와 정원, 그리고 주변 풍경까지 둘러보았다면, 암벽을 타고 이어진 계단으로 내려와 동굴 탐험 혹은 바다 수영을 즐길 수도 있다.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내리막길을 따라 걸으니 소렌토의 출발점인 동시에 시간 여행의 종착역인 포르타 디 마리나 그란데(Porta di Marina Grande)에 닿았다.


포지타노행 시타 버스 안이었다. 창문을 두드리는 햇살 때문일까? 창가 쪽에 앉은 아라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일부러 그런 거지?"

가늘게 만든 눈매와 긁는 소리를 내며 아라는 불편함을 토로했다.

"그럴 리가. 혹 있을 사고에 대비한 거지. 아스팔트보다 물속이 나으니까."

"퍽이나."

이탈리아 남부의 해안도로,, 그림으로, 사진으로 접하고서 '죽기 전에 가보리라' 다짐을 했건만, 솔직한 심정은 '죽을 수도 있겠구나'였다. 구불거리는 도로 위에 그어진 선은 가뜩이나 좁은 도로의 폭을 더욱 협소하게 했고, '안전'이라는 용도와는 거리가 먼 이름뿐인 난간, 고작 이것들에 의지한 채 차량들은 제 깜냥 달리고 있었다.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곡선으로 인해 쉬이 가늠할 수 없는 그 도로 위를 오토바이가 내달리고 있었다. 커다랗게 포물선을 만들더니 이내 도로 지면에 닿을 듯 말 듯 몸을 기울이며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이어졌다. 운전석 뒤 오른쪽 창가에 앉은 아라는 두 눈에 아로새겨지는 광경에 마른 입술을 깨물며 두 손을 꼭 맞잡았다. 오토바이에 이어 이번에는 버스 차례였다. 난간 쪽으로 최대한 몸을 밀어내는 버스로 인해 진호의 어깨가 아라의 어깨에 닿았다. 운전대를 안쪽으로 크게 돌린 기사에 의해 버스는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고 이번에는 아라의 어깨가 진호에게 닿았다. 차체를 밖으로 튕기면 빠질 듯했고, 안으로 파고들면 부딪칠 듯했지만, 걱정과는 달리 멈춰 서지 않았다. 실로, 묘기에 가까운 운전 실력이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기사와, 끊이지 않는 환호성을 지르는 승객들과는 달리 아라는 걱정이 앞섰다. 수학여행으로 가보았던 불국사는 열두 번이었는데, 40여분 동안 몇 번을 더 체험해야 하는 걸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창가 쪽 자리의 원주인인 진호가 미웠다. 해안 절벽과, 끝도 없이 펼쳐진 나폴리 만의 풍경에 환호성은커녕 제대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진호 역시도 적잖이 긴장한 상태로 보였지만, 그럼에도 왠지 미웠다.

"깜짝이야."

제 어깨를 힘껏 눌러대는 아라의 몸사위에 진호는 움찔하였고, 다소 격양된 목소리였다.

"뭐, 이런 거에 낚여?"

"올해 특히 물조심 하라고 해서."

흐트러진 자세를 다시금 곧추 세우고 안전띠를 꽉 쥐는 진호를 보며 아라는 웃음을 흘렸다.

"니스에 가면 모나코 꼭 가봐요. 코트다쥐르(cote d'azur) 해안 도로는 단언컨대, 천국행이라는."

"지금 상황에서 적합한 얘기냐고!!"

진호는 낮게 으르렁 거렸다.

"절벽 위를 달리는 지금과는 달리, 그곳은 절벽을 바라보며 달린다고. 절벽과 바다 그 사이를 달리는 황홀감이란."

관심 없다는 듯한 진호의 태도였다.

"지금까지 열다섯 번이야. 앞으로 몇 번이나 이어질까?"

끔찍하다는 듯 그는 고개를 절로 저었다.

"시간도 시선도 돌릴 겸, 소렌토 리뷰나 해볼까? 당연, GRAND HOTEL EXCELSIOR VITTORIA일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Villa Tritone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아. 사랑의 도피처로 그 보다 더 완벽한 곳은 없어. 오직 서로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최적의 장소지. 깎아지른 절벽.."

"고아라."

아라의 말허리를 싹둑 자르며 진호는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단 며칠이라도 있고 싶다고 했던 사람이 누구더라."

부루퉁한 말투와는 달리 아라의 입꼬리는 슬쩍 올라가 있었다. 관심 없다는 듯 진호는 제 말을 늘어놓았다. 목소리에는 다분 초조함이 배어 있었다.

"아직은 소렌토지?"

"아마도."

"그렇다면 다행이네. 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수호성인인 산탄토니노 성인이 기도할 테니. 그 옛날 행한 수많은 기적처럼 여전히 그래줄 테지."

예상치 못한 진호의 말에 아라는 정신없이 웃어댔다. 버스 기사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로 인해 집중을 받게 된 것이 머쓱했는지 진호는 괜스레 헛기침을 하면서, 아라를 제어하려 했지만 그녀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여기, 소렌토에 전해오는 성스러운 이야기가 있다.

어부들이 일을 하러 바다에 나간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아이들은 바다와 맞닿은 모래사장에서 놀고 있었다. 수영을 하고, 모래성을 쌓고 뭉그러뜨리며 노는 아이들 곁으로 거대한 물고기가 다가와 무리 중 한 아이를 꿀꺽 삼켰다. 이에 아이들은 떠나갈 듯 고함을 지르며 울었고, 바다에 나간 어부들이 이 소리에 빠르게 노를 저어 모래사장으로 향했지만, 이미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그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고, 잡혀간 아이의 어머니는 절박하게 울부짖었다. 산트아그리파노 수도원의 대수도원장이었단 산탄토니노가 이를 듣고 해변으로 달려가 기도를 했더니 아이를 삼켰던 거대한 물고기가 나타나 모래사장 위에 아이를 토해 놓고 사라졌다. 아이는 안전했다. 이에 마을 사람 모두 축하를 했고, 그 후로 사람들은 산탄토니노를 향해 헌신을 했다고 한다.


도시의 수호성인인 산탄토니노(Sant' Antonino)에게 헌정되어, 그가 행한 많은 기적들과 유적이 보관된 소렌토의 기념비적인 대성당인 Basilica of Sant' Antonino의 우뚝 솟은 종탑이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었고, 그들을 실은 버스는 깊게 파인 산허리를 어지럽게 파고들었다.


*플랑드르 회화(Flemish painting) - 15세기 초-17세기까지 번성한 저지대 국가 중부 일대의 회화.

*포실리포 학파(School of Posillipo) - 정식 학교나 협회가 아닌 이탈리아 나폴리의 해안가인 포실리포 인근에 기반을 둔 풍경화가 그룹.

*상호부조 노동자 협회(SOMS) - 사회의 이익을 보호하고 사회적 활동을 통해 노동계급의 조건을 도덕적, 물질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19세기 후반에 이탈리에서 설립된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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