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발상의 전환인가? 바닷가 마을이라 그런 건가?"
SORRENTO,, 진호의 눈길을 사로잡은 간판이었다. 유추해 볼 때, 소렌토 그 자체라는 건가? 그만큼 자신 있다는 의미겠지. 첫 글자인 S는 지느러미가 달린 어류의 형상이었다. 따로 또 같이 자리한 글자와 형상을 도합 한 결과는 '소렌토 생선 요리는 내가 왕이다!!'였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건물 외벽에 새겨진 화살표는 보란 듯이 매장의 입구를 가리키고 있었다.
"인어일 수도."
"인어 요리라. 그럴 리가."
말장난이라 여겼는지 진호 역시 장난으로 맞받아쳤다.
"소렌토는 로마 이전, 그리스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 하고,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사이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건 그들이 주로 등장했던 장소가 절벽을 낀 해안이었다는. 그런 점에서 소렌토가 딱이지."
"생선인지 인어인지 들어가 확인해 볼까?"
장난스레 말하고서 배를 쓱쓱 문지르며 진호는 앞장을 섰다. 그를 따라 들어가니 좁다란 실내에는 종업원들로 분주했다. 그들 중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자 고갯짓으로 열려 있는 문을 가리킨다. 곧장 걸음을 옮겼더니 바닷가를 지척에 둔 제법 넓은 테라스와 만났다. 촘촘히 놓인 테이블, 빼곡한 의자, 바글거리는 사람들, 빈 공간을 휘젓고 다니는 직원들까지 더해져 북적였다. 다행히 엉덩이를 붙인 테이블 위로, 흰색 선과 파란색 선이 이어 달리기를 하고 있어 마치 지중해 마을을 네모반듯하게 잘라와 덮어놓은 듯했다. 해서,, 시선을 아래로 두어도, 저 멀리 두어도 온통 푸른빛이라 바람이 없어도 절로 시원했다. 피부색만큼이나 언어 역시 다양했지만 그리운 고국의 말은 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아쉬웠다. 아니 다행이려나?? 주변 풍경에, 사람들에, 분위기에 푹- 젖어 있던 그때, 주문한 음식들이 놓였다. 생각보다 빨리 나온 음식이었지만 모양새는 좋아 보였다. 툭- 건드리면 면 위로 와르르 무너져버릴 수북한 조개탑을 보며 아라는 꿀꺽- 침을 삼켰다.
"와우!!"
포크로 휘휘 감은 파스타면을 허겁지겁 맛본 아라는 탄성을 뱉어냈다.
"bouno."
큼지막하게 자른 문어 한 조각을 입에 넣은 진호는 감탄사만으로는 모자란다는 듯 손동작까지 덧붙였다.
"그걸 나주면 뭐 먹으려고?"
문어 다리가 세 개만 되었어도 아라는 반문하지 않았으리라. 두 개 중 하나를 건네는 넘치는 그의 인심에 아라의 입이 급히 열렸다.
"몸집이 역대급이야."
잘린 단면을 보이며 그는 배시시 웃는다. 그러고 보니 가래떡만큼이나 통통한 몸집이었다. 이에 부응하듯 아라 역시 제 앞에 놓인 파스타 접시를 보란 듯이 진호 쪽으로 밀었다.
"바닷가라 그런지 조개는 싱싱하고, 이탈리아라 그런지 파스타는 맛나네."
관광지란 본디, 풍경에 취하고 음식에 실망하는 법이라, 식탁 위만 잘 쳐다보면 실패는 없다. 그릴에 구운 문어와 봉골레 파스타뿐이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아니 두 가지만 파는 곳처럼 말이다. 해서 그들을 따라 했더니 문어는 부드러웠고, 조개는 바다의 풍미를 담뿍 담고 있었다. 성공이었다. 페로니 맥주를 곁들이니 그야말로 완벽한 합이었다.
"<돌아오라 소렌토로>는 여기가 출발점인 듯."
"푸하하."
우렁찬 아라의 목청은 진호뿐 아닌 주변인들까지 집중하게 했다. 의외의 반응에 아라는 벌린 입을 급히 다물었다.
"어금니 사이에 문어 조각 끼워두고 싶지는 않고."
"그런 방법이 있었어? 진짜 간직하고 싶은 맛이다."
"저녁에 다시 오지 뭐."
"정말?"
"바꿔 주문하면, 처음 같으니."
"천재인데?"
정오가 조금 지난 탓에 한풀 꺾였다지만, 두 볼을 달아오르게 할 만큼의 화력은 여전했다. 파도를 타고 들어와 절벽에 튕겨진 바람은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려 자꾸만 매만지게 했다. 따가운 햇살을, 종잡을 수 없는 바람을,, 막아줄 변변한 그 무엇 하나가 없었지만 얼굴에 자리 잡은 미소는 계속 번져만 갔다.
먹색의 하늘 아래, 검푸른 물살은 철썩이며 끊임없이 제 존재를 나타내고 있었다. 일렁이는 파도에 덩달아 흔들리는 목이 묶인 작은 배들, 마치 띠를 두른 듯 해안을 따라 간간이 전등을 매단 음식점들, 이 모두가 무대의 장치처럼 느껴졌고, 해서 서로에게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좀 낯설다."
"내 짐작이 맞았네."
"무슨?"
"속초에 함께 간 이는 박카스남. 딱 들켰어. 고아라."
"손도 안 잡은 남자랑, 그 먼 속초까지. 것도 2박 3일씩이나?"
"아.."
"차멀미가 심한 나는 남의 차는 덥석 안 타고, 아빠는 물을 싫어하시고. 바다 갔던 게 언제였더라? 아~ 안면도, 대하 축제가 있었네. 근데 서해는 물이 탁해 바다 같지 않아서., 아들, 남편, 차,, 이 모두를 가진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직장 사수랑 함께 갔었지. 하도 오래전이라 기억도 가물하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라는 피식 웃었다.
"술에 취해 기억 안 나는 건 아니고?"
대번에 웃음기를 지운 것도 모자라 아라는 시선을 쏘며 진호를 바라보았다.
"행정구역 안에서도, 벗어나서도 헤롱거리진 않는다고. 왜?? 술 먹고 늦게 다니다 납치라도 당해 어선에 끌려가면, 내 이쁜 손으로 마늘 까는 거 본인은 싫다며, 입대하기 전에 명령조로 말하길래, 그게 뇌리에 박혀서 여전히 그런다고."
"그 뻔한 수법에 여자들은 잘도 속아."
"번쩍이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보통의 그것이 아닌 세상 단 하나뿐인, 이를 테면 너의 진심이 나의 마음을 두드리는 그런,, 뻔한 수법 아닌 그 진심에 속는 거지."
아라의 반박에 진호는 발아래에 차이는 모래를 퍼올려 괜한 심술을 부렸다. 그런 그의 모습에 아라는 표 안 나게 슬며시 웃었다.
"자, 그럼 당신 차례야."
"아직이야."
"질문의 요지는, 당신의 진심에 속은 그 여자."
진호는 한참을 골똘했다. 그러고는 입술을 달싹였다가 금세 닫았다.
"뭐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거야? 잡아뗄 생각 마. 입술 씰룩이다 멈추는 거 다 봤어."
"성악가님의 은밀한 사생활에 관심 끄고. 밤바다 보러 온 거 아니었어?"
"말 돌리지 말고. 가만 보면 치사함이 기준치 이상이야."
"알고 보면 고아라는 맹탕이고."
"뭐?"
"바닷가에 함께 간 여자, 있다고."
"이봐. 이봐!! 한 입으로 두 말하면 치사한 남자라고."
"한 명뿐이야."
"설마, 줄리에타야?"
아라의 목소리 끝은 슬쩍 올라갔고, 진호의 눈매는 조금 내려앉았다.
"고아라가 처음이라고."
'오늘'이란 부와 명예, 성별, 나이를 따지지 않고 공평하게 주어진 24시간이며, '밤'은 하루의 끝이면서 새날을 위한 준비 과정이다. 이처럼, 품고 있는 복잡한 뜻만큼이나 발산하는 분위기 또한 묘한, 바로 그 오늘 밤,,이었다. 진호는 한 걸음을 내리 걸었고, 아라는 물러서지 않았다. 철썩- 파도소리는 차가웠고, 뺨을 스치는 바람은 따스했다. 해안 절벽 위 총총히 밝힌 불빛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파도와 바람의 움직임도 더디어졌고 종종걸음을 걷던 별들도 주저앉았다. 얼마 남지 않은 새날을 맞이하느라 모두가 분주했지만, 오직 그들만이 오늘의 안에 있었다.
크게 벌린 입, 동그랗게 뜬 눈의 진호는 널리 알려진 명화와도 같았다. 채 소리도 내지 못하고 놀람을 표현하는 진호로 인해 아라의 입이 열렸다.
"그 누가 쏘렌토를 스쳐가는 곳이라 막말했더냐?"
"내 두 눈으로 보다니."
그제야 입을 연 진호였지만, 여전히 놀란 목소리였다. Piazza Torquato Tasso, 18, 80067 Sorrento NA,, 구글 지도를 따라 도착한 곳은 소렌토를 대표하는, 광고 속에서 익히 보았던 그 해안 도로였다. 아니 해안 도로 조망이 가능한 난간이었다. 정확한 시간을 가늠할 수는 없지만 Via Luigi de Maio를 줄곧 따라가면 마리나 그란데 항구로 이어진다. 그 사실만으로도 절로 미소 짓게 했다.
"어떻게 알았어?"
"요 녀석 물건일세."
배시시 웃으며 아라는 손에 든 휴대폰을 가리켰다.
"멀고 먼 남부까지 오는 이유는 단 하나, 관광이지.. 성당, 박물관에 시달린 눈도 호강해야지. 안 그래?"
철제 난간에 팔을 얹고 몸까지 숙인 채로 아라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보통은 사진이 풍경을 이기는 법인데, 이곳은 반대네.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라의 몸이 조금 더 숙여졌다. 이에 질세라 진호도 동참을 했다.
"근데, 잠깐일 거야."
"뭐가?"
"포지타노, 아말피를 보면 소렌토는 묻히겠지. 로마의 출발점이나 늘 뒷전인 필라티노 언덕처럼 말이지."
아라가 짓궂게 웃었다. 그러자 진호가 긴 손가락으로 아라의 이마를 가볍게 튕겼고, 이마를 쓱쓱 문지르며 아라는 여전히 웃음을 흘렸다.
고고학자 파올라 잔카니 몬투오로(Paola Zancani Montuoro)는 소렌토의 어원을 사이렌 신화가 아닌 '나는 흐른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surreo'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라는 듯, 도시를 우회하여 바다로 흘러가는 두 개의 뚜렷한 수로를 갖춘 소렌토의 능선의 형태가 이와 정확히 일치함을 언급했다. 고대 유적의 발견에 따라, 고고학적 측면에서 보면,, 소렌토의 고대 역사는 신석기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당시의 데이터와 자료들의 해석 불가능한 요인들로 인해, 소렌토의 기원에 있어서 여전히 학자들 사이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중 가장 보편적인 가설은, 그리스를 기반으로 한 에트루리아에 의한 것으로, 약 5세기 동안 사라쿠사의 지배를 받은 후 삼니움족에게 그리고 로마인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고대 역사와는 달리 중세 역사 역사는 세밀하게 기록되어 있다. 고트족, 롬바르드족, 비잔틴족이 점령했으며, 나폴리의 세르지오 1세에 의해 7세기에 나폴리 공국의 속주로 설립되었으나 여전히 비잔틴 제국의 일부였다. 그 후 나폴리 공국이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한 후, 840년 소렌토 역시 나폴리 공국으로부터 사실상의 독립을 했다. 이 무렵 지중해는 사라센들이 장악하다시피 했고, 한 발 더 나아간 그들이 로마와 교황청까지 침략을 하자 결국, 교황 레오 4세는 칼을 빼들었다. 그의 요청에 응한 아말피, 가에타, 나폴리, 소렌토 공국으로 구성된 연합 함대는 로마와 교황령을 방어하기 위해 나폴리의 공작 세르지오 1세 아들의 지휘 아래 사라센들을 공격했다. 연합 함대의 완벽한 승리인, 오스티아(Ostia) 전투는 교황청뿐 아니라 캄파니아주 역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다. 1035년에는 롬바르드족의 주요 인물인 과이 마이로(Guaimario)가 소렌토를 정복한 후 그의 형제인 귀도(Guido)에게 통치권을 주었다. 귀도(Guido)의 사망 후 자치권을 재개했으나 1137년에 노르만(Normans) 왕국으로 흡수되었고 이후, 시칠리아 왕국에 합병되었다. 이 시기에 소렌토는 정치, 경제, 교육면에서 나폴리와 일부 특권을 놓고 경쟁할 만큼 크게 발전했다.
당시, 나폴리 만을 포함한 남부의 여러 항구를 둘러싼 해상 교통은 매우 치열했다. 1558년 이탈리아 남부를 점령하고 있던 오스만족과 스페인 간의 투쟁으로 인해 소렌토는 큰 피해를 입었다. 오스만 해적은 식량과 사람들을 약탈해 갔고,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전쟁 결과로 소렌토는 성벽을 강화하고 해안에 탑을 건설했다.
1799년 나폴리 공화국에 합류한 후, 1805년에는 프랑스의 통치 아래 있었고, 브루봉 가문의 페르디난트 2세가 통치하던 1832년에는 소렌토와 나폴리현의 카스텔람마레 디 스타비아(Castellammare di Stabia)를 연결하는 육로가 건설되었다. 고대부터 이어져온 오랜 숙원이었던 육로로 인해 농업, 관광, 무역이 발달하면서 도시 경제가 눈에 띄게 발전하게 되었다. 1840년 9월에는 타소 광장(Piazza Tasso)이 있는 도시의 입구에 위치한 1400년경 지어진 성을 철거하며 소렌토의 변화를 모색했고 성벽 외부의 도시화 확장을 활성화했다. 그리고 1861년, 소렌토는 공식적으로 이탈리아 왕국에 합병되었다.
*카스텔람마레 디 스타비아(Castellammare di Stabia) - 이탈리아 남부의 캄파니아주(州)에 있는 항구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