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나 Apr 27. 2022

눈물이 많은 유전자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것

“저 분은 지금 그냥 핫도그 드시면서 휴게시간을 즐기고 계시는 거야.”


신호를 대기하다 본 창밖에서 우리 아빠와 비슷한 연배의 아저씨가 트럭을 길가에 세워놓고 핫도그를 드시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을 왈칵 쏟았을 때, 옆에 있던 남자 친구가 내게 한 말이다. 정말 그런 거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마음대로 생각하고 울어버려서 아저씨에게 죄송했다. 하지만 이미 시작되어버린 생각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수만 번 상상한 아빠의 일터를 생각하며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었다.


나는  tv 프로그램인 동물농장은 절대 보지 않는다. 귀엽고 신기한 동물들의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때때로 사람에게 버림받고 상처받은 동물들이 나오면 하루 이틀간은 우울해 지기 때문이다. 7년 전 처음 서울로 혼자 이사 왔을 때, 언니가 없어서 슬퍼할 내 동생 다롱이(강아지)를 생각하며 3일을 밤마다 울었었다. 그때 다롱이와 카카오톡 메시지를 나누는 꿈도 꿨었다.


오빠가 군입대를 하던 날, 나는 학교에 가야 해서 배웅을 가지 못했었다. 입소하기 몇 분 전, 오빠와 나는 전화를 붙잡고 우느라 몇 마디 나누지도 못했었다. 오빠의 짐이 집으로 배송 오던 날도, 해병대 홈페이지에 영상편지가 올라오던 날도 우리 집은 울음바다가 되었었다.


내가 정말 눈물이 많다는 걸 나도 알고 있다. 울지 않아야 할 때도 눈물이 멈추지 않아 곤욕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도 아니었다. 아, 초등학교 땐 너무 많이 울어서 왕따를 당한 적도 있었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눈물이 많은 내가 싫었던 적도 있었다. 왜 나는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할까 원망스러웠었고, 그런 날이면 집에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또 울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눈물이 많은 나와 나의 가족들이 사랑스럽기 시작했다. 가족들이 다 같이 모인 몇 안되던 날, 식탁에서 오빠랑 아빠가 크게 싸우고 말았다. 아빠가 속상한 마음에, “너흰 아버지 마음을 왜 이렇게 모르냐.”라고 하시자 엄마가 먼저 눈물의 물꼬를 트고 말았다. “우리 자식새끼들처럼 부모 생각하는 애들이 어딨다고 그래, 오랜만에 만났는데 속상하게 왜 애들을 다그쳐요.”

엄마의 말을 듣고, 오빠와 아빠의 말다툼에 적잖이 불편했던 내가 밥을 입속에 밀어 넣으며 눈물을 꾹꾹 참았다. 내가 두 번째 주자였다. 분명 거기까진 괜찮았는데, 어느새 나이가 들어 마음이 많이 약해진 우리 아빠는 그간의 서러움을 토로하며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고, 이젠 어느 누가 먼저라고도 할 것 없이 온 가족이 서로 다른 쪽을 바라보며 울고 또 울었다. 너무 많이 울어 서로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도 안 나지만, 난 그날의 감정이 아직도 선명하다. 서로 떨어져 살길 9년쯤 되었을까, 그리움이 원망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공백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사랑의 표현보다 서운함의 표현이 더욱 많았었다. 그날, 우리 가족이 흘린 눈물은 백 마디 말보다 더욱 강력한 것이었다. 서운함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고마움과 미안함만이 남았다. 우리 가족은 그날 이후로 표현이 참 많이 늘었다. 보고 싶다, 걱정된다, 사랑한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사이에 전과는 다른 온기가 생겼고, 나는 그 온기가 너무 좋다. 눈물이 많아 곤란했던 날보다, 내가 눈물이 많아 얻게 된 이 고마운 날들이 더욱 많기에 이제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가족에게 또다시 관계의 위기가 찾아오겠지만, 늘 그랬던 것처럼 위기를 계단 삼아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주변에도, 나처럼 눈물이 많은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누군가 나에게 “너는 왜 이렇게 별 것도 아닌 걸로 우니?”라는 말을 하면 항상 이렇게 말한다. “별로 슬프지도 않으면서 우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나는 너무 슬퍼서 우는 거야.”라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은 모르지만, 그냥 별 것도 아닌 일로 우는 게 아니라 그 일이 그 사람에겐 정말 슬픈 일일 것이다. 누군가에겐 별 일이 아닌 것도 누군가에겐 눈물을 왈칵 쏟을 만큼 슬픈 일이란 것. 작은 것도 미안해하고, 슬퍼하고, 고마워하는 소중한 마음씨를 가졌다는 것, 그리고 항상 각자의 사정이 있다는 것이란 마음으로 따뜻하게 바라봐주었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 사람들을 위한 장례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