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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후 Mar 23. 2023

어느 날 닭 한 마리가 죽었다

WWOOF: 영국 시골농장 여행기 #9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오전 7시 반.

여느 때와 다름없는 고요한 아침이었지만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전날 좀처럼 움직이지 않던 닭이 오늘은 살아있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어두운 들판을 지나 닭장으로 향했다.

첫 번째 닭장의 문을 열자 바로 앞에 닭 한 마리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나는 단번에 이 닭이 어제 계속 눈에 밟혔던 그 닭임을 알아챘다.



닭은 느린 속도로 숨을 쉬고 있었지만 죽어가고 있었다. 다른 닭들이 부리로 쪼아대도 어떤 저항도 없이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생명이 꺼져가는 과정을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과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공격하는 자연의 냉정함에 울음이 터져 나왔다.


더 이상 다른 닭들이 건들지 못하도록 작은 상자를 덮어주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곧 죽을 거라고 생각했던 닭은 2시간이 지나도, 4시간이 지나도 숨을 쉬고 있었다. 그 시간들이 담담히 죽음에 다다르는 과정이었을지, 어떻게든 살고자 노력했던 과정이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닭은 오랫동안 살아있었고, 오후가 지나서야 숨을 거뒀다.



나는  이상  닭이 존재하지 않는 닭장으로 돌아가 닭들이 낳은 알들을 챙겼다. 손에 쥐어진 알은 작고 따뜻했다. 조용히 숨을 내쉬던  닭의 온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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