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밥반찬 다이어리 Apr 01. 2024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

전화를 끊은 후로 금형의 얼굴은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그는 맥주잔을 연신 들이켰고 빈 잔이 되어있었는데도 의식하지 못한 채 잔을 들어올려 입으로 갖다댔다.     

‘내가 알아서 더 시켜야 되나. 금형님이 안먹고 싶다면 어쩌지?’

미리는 속으로 고민하며 금형의 표정을 살폈다. 눈치 없는 술꾼 여자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금형이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문 밖으로 튀어나가듯 달려나갔다.

미리는 서둘러 금형의 뒤를 따라갔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금형님. 금형님. 어디에 있어요?”

미리는 식당 부근을 두리번 거리며 금형의 모습을 쫒아 한참을 서성였다.     


“미리님. 저 갑자기 속이 안좋아져서 화장실에 좀 다녀왔어요. 그리고 찬 바람 좀 맞고 왔어요. 헤에.”

금형의 애써 웃어보이는 얼굴이 몹시도 갸날프게 느껴졌다.

“금형님. 괜찮아요?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해줘요. 아님 집으로 갈래요? 저는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그분 얘기를 들으니 임부장님과 같은 사무실에 있을 때 제 마음을 어거지로 욱여넣었던 그 때가 막 떠올랐어요. 그러면서 갑자기 속이 안좋아지더라구요. 이제는 괜찮아졌어요. 미리님. 저한테 약속 하나 지키셨네요.”

“약속이요? 어떤.”

“지난번에 저 힘들 때 세 번 중 한번은 함께 해준다고 했잖아요. 오늘이 그 날이에요. 정말 고맙고 다행이에요.” 

    

미리는 금형의 얼굴을 바라봤다.

너무 맑고 착해서 정말로 그를 사랑하게될 것만 같은 얼굴이었다.     


금형과 만난 월요일의 취기가 몽롱하게 올라오는 화요일 아침, 미리는 출근준비로 분주했다. 

그러나 바삐 움직이는 손길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건 머리 속이었다.

‘아 어제 일을 좀 하고 갔어야 했는데. 고부장이 부르면 어디까지 했다고 말하지? 설마 오늘 만든 자료 보여달라고 하진 않겠지.’ 

 

“안녕하세요.”

미리는 8시 58분에 슬라이딩하듯 사무실로 들어가 개운치 못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어. 황미리 과장. 왔나요? 어제 고생한다고 늦게 들어가서 오늘 피곤했나보네. 자 9시반에 회의합시다.”

‘아 그놈의 회의.’

미리는 속엣 말로 투덜댔다.

“황과장님. 오늘 또 회의네요. 어제도 해놓고선. 어휴.”

미리의 속엣 말을 들은 것처럼 홍대리는 즉각적으로 말대답을 했다.     

“근데 과장님. 어제 야근하신거에요? 심대리가 과장님이랑 비슷한 분을 길거리에서 봤다는거 같던데.”

“아. 그게 저기 좀 잠깐 볼 일이 있어서...” 

   

“홍대리. 지난 달 마상무역 거래실적하고 경쟁사 동향 어떤지 파악한대로 브리핑 좀 해봐요.”

“네. 마상무역은 지난 달 저희랑 거래실적이 5% 감소했습니다. 그 전달이 워낙 실적이 좋았어서 감소폭이 큰 것처럼 보이는데 평월 거래실적하고 비슷한 수준입니다.”

“홍대리. 평월 거래실적으로 위로 삼을 일인가? 지금 회사 상황 돌아가는거 안보이나? 거래실적 증가했던 달을 기준으로 더 올릴 생각을 해야지 말이야.”

“아. 네에. 부장님. 알겠습니다.”  

  

벌겋게 부어오른 홍대리의 얼굴을 보며 미리는 위안의 눈길을 보냈다.

회의를 마치고 자리에 앉은 황미리 과장과 홍승민 대리는 말 없이 모니터를 쳐다보며 뱉지 못한 한숨을 조용히 내쉬었다.     

이전 19화 우연한 전화 한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