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일본 소도시 여행에 흥미가 생겼을 무렵, 우리는 제일 먼저 가장 가까운 후쿠오카를 가기로 했다.
여행은 떠나기 전 설레임이 큰 몫을 차지하는데 비행기가 이륙하면서 그 기대와 흥분은 배가된다.
그런데 그 설렘을 제대로 만끽하기도 전에 항공기는 착륙 준비를 하고 있었다.
"상당히 짧군"
그러나 가깝다는 건 상당한 장점이다.
멀리 떠나가면 해방감을 느끼지만 가까운 곳으로 가면 안정감을 느낀다.
완전히 계획형 인간인 그는 보통 여행 코스를 미리 계획하고 정리해서 파일로 내게 준다.
그런데 난 한번도 그 파일을 제대로 꼼꼼히 읽어본 적이 없다.
일 때문에 바쁘기도 했지만 여행지에서는 그간 경험한 나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 이를테면 "찍기"모드로 골라 다니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렇긴 해도 길지 않은 여정 동안 마냥 감각으로만 다니다간 맛있는 세계의 길목조차 들어서지 못할 확률이 크기에, 보통은 먹고 싶고 가고 싶은 식당 몇 군데를 머리 속에 넣고 간다.
여행 가기 전 미리 검색해서 정보를 찾아보는데, 후쿠오카가 함바그로 유명하다는 블로그가 상당히 많았다.
"왠 함박 스테이크? 후쿠오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메뉴에 일차 충격을 받았고, 그 충격은 함바그 맛집을 연이어 검색하게 만들었다.
캐리어를 호텔에 맡기고 본격적인 자유의 몸이 된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함바그 집을 찾아나섰다.
머리 속에는 수많은 고기덩어리 패티의 색깔과 크기, 평가들을 분석하여 1등으로 낙점된 그 집 생각으로 가득했다.
일본에 가면 왠만한 식당에서는 다 줄을 선다.
그 곳도 그랬다. 자그마한 규모의 오래된 식당에서 풍기는 아늑함과 질서가 동시에 느껴졌고, 허기진 상태였던 우리는 재빨리 함바그 두개를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은 설레이면서도 지루하다.
실물로 본 함바그 비주얼은 기대 이상이었고, 맛을 보자마자 눈이 땡그래질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고기 덩어리를 한 입 베어물자 육질의 부드러움이 입술과 혀로 다 느껴졌고, 신선한 고기의 육즙이 제대로 터져나와 입 안을 촉촉하게 만들었다.
"세개 시킬걸"
보통은 입이 짧아서 한가지를 연속적으로 먹지 못하는데, 후쿠오카 여행에서 만큼은 예외였다.
똑같은 함바그 집을 두번이나 가서 원없이 햄버거 스테이크를 즐겼다.
그 뒤로 내게 고기 패티의 기준은 독일도 미국도 아닌 후쿠오카 함바그가 되었다.
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쓸다가 끝나 갈 무렵에도 일본은 특히나 비자 받는 조건이 까다로웠다.
지금은 그 제약들이 다 풀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후쿠오카를 당장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집 안에서 후쿠오카 기분을 좀 내보고 싶었다.
텃밭의 재료들을 이용해 돼지고기를 냄새 안 나고 맛있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우선 향채들을 최대한 활용해서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를 가려주기로 했다.
텃밭에서 제대로 자란 샐러리를 가득 수확해왔고, 고추도 지천에 널렸으니 있는 채소를 넣어서 내 스타일대로 만들기 시작했다.
간 돼지고기에 소금, 후추를 넣어 뒤적이고 샐러리와 마늘, 고추, 당근을 잘게 잘라 같이 섞는다.
돼지고기와 야채들이 한 몸이 되도록 반죽을 주물러 동그랗게 고기 덩어리로 만든다.
그리고는 불에 구워 잘 익힌 후, 예쁜 접시에 올린다.
"오 맛있네."
요즘 내가 만든 음식 중에 최고로 맛있었다.
모양은 후쿠오카의 함바그와 다르지만, 내 식대로 만든 고기 패티를 보며 나는 여전히 후쿠오카 함바그를 떠올린다.
언젠가 기회되면 또 가보리라. 후쿠오카 함바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