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가방

나와 영국과 풋귤과 와인

by 최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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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가방이란 걸 처음 사본 건 2009년의 봄이었다. 이민을 가기 위해 서가 아니었다. 그런 큰 꿈과 결심은 애초에 없었다. 어학연수를 핑계로 장기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날 큰 가방이 필요했을 따름이었다. 장편영화 <세븐데이즈>와 <박쥐>의 영화 스텝으로 제대로 된 쉬는 날 없이 2년 넘게 쉬지 않고 달려왔더니 나는 소진되어 있었다. <박쥐>의 후반작업이 끝나자 나라는 존재는 이미 사라져 찾아볼 수도 없었다. 스크립터 최정은에서 나 최정은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도 없고 내가 만드는 영화도 없을 것만 같았다. 참여한 두 영화 모두 무사히 완성되었고, 개봉하였고, 세계 영화제를 유유히 여행하고 있었다. 이제는 잃어버린 나를 찾아 나설 시간이었다.


“여권과 학생비자, 학교 입학허가서 주세요.”

“뭘 배우러 왔죠?

“어디에 머물 거죠?”

“언제 영국을 떠나죠?”


2009년 6월 영국 런던 히스로 공항. 나는 내 양 가슴을 차가운 엑스레이 기계에 대고 뻣뻣하게 서 있었다. 모든 문서를 제출했지만 내가 의심스러웠던 건지, 병에 걸린 건 아닌지, 혹은 몸 안에 무엇을 숨기고 온 건 아닌지, 왜 이 검사를 하는지 도통 그 이유를 알 겨를도 없이 나는 벌거벗은 채 영국의 적나라한 환대를 받고 있었다.


“다 됐어요. 이제 가셔도 돼요.”


쌀을 들고 와 소금으로 바꾸려는 아프리카 부족의 옷을 벗기고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자, '그래, 우리 구역으로 들어와도 좋아.'라고 말하는 짠내 나는 섬 부족과 무엇이 다를까 생각했다. 예상 도착 시간보다 한참 늦게 나온 나를 반기는 것은 수화물 찾는 곳의 벨트를 무심히 혼자 돌고 있는 나의 이민 가방이었다. 가방도 영국의 적나라한 환대를 잘 통과했나 보다 했다. 나를 한참 기다리다 지친 택시 기사는 유독 말 수가 적었다.


나를 태운 택시는 템스 강을 따라 런던 시내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내 눈에 익숙한 건물이 점점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 건물은 다름 아닌 록 밴드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애니멀스(Animals)’ 앨범 커버에 등장하는 배터시 화력발전소(Battersea Power Station)였다. 거대한 벽돌 건물에 하얀 굴뚝 4개가 하늘로 솟은 건물, 그 사이를 유유히 떠다니는 거대한 핑크빛 돼지 풍선. 그동안 앨범 커버의 건물이 실제로 존재하는 건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에 그걸 알아차린 순간, 그들만의 영국식 환대가 참 달달하게 느껴졌다. 고단한 여정의 피로가 싹 가시고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핑크빛 생각이 들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런 은인들의 숨결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니, 나는 이 장기 여행을 무사히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은 고등학교에 가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해서 열심히 했고, 고입선발고사의 성적이 제주도 5% 안에 들었지만, 결과는 내가 그렇게도 가기 싫어했던 3지망 가톨릭 재단 여자고등학교로의 '뺑뺑이 돌림' 강제 입학이었다. 무교인 집에서 태어난 나는 어릴 적 내 발로 성당에 들어가 세례를 받았고 '알비나'라는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었다. 그런 내가 나의 종교를 강요하는 종교학교 3년을 그곳에서 보내고 나자, 나는 냉담 교우가 되었고 니체를 읽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영화가 나의 신이 되었다.


런던에서의 처음 몇 개월은 나를 찾는다기 보다는 나를 증명해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대학교 산하의 어학센터에 다니는 학생이라고는 하지만 정규 학사, 석사 과정이 아니었기에 시내 은행에서는 나의 계좌를 만들어주는 것을 무척이나 꺼려했다. 주중 아침 어학센터 수업이 끝나고 오후에 영화제 일을 하러 가기 전 런던 시내의 온갖 은행 지점을 들러 계좌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돌아다니는 것은 나의 일상으로 자리 잡아갔다. 제주 섬사람으로써 영국 섬사람들의 마음이 조금 이해는 갔던 것일까? ‘왜 이리도 힘들까?’ 생각하다가도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마지막 묘수로 학교에 부탁을 해, 그 당시 나의 집 주소가 찍힌 ‘내가 이 학교 학생이다’를 증명할 문서를 발급받아 집 근처 은행 지점으로 향했다. 토요일이었다.


“어떤 계좌 발급받으려고요?”

“그냥 입출금만 가능한 일반 계좌면 돼요.”

“바로 옆에 사시네요.”

“네, 며칠 전에 이사 왔어요.”

“이 동네 살기 괜찮아요, 공원도 크고요.”


드디어 나는 고대하고 고대하던 계좌를 열 수, 만들 수 있었다. 결국 사람은 누군가와 공통점이 있어야 마음을 여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내가 이민 가방을 끌고 런던에 도착한 지 두 달 만이었다.






© 글, 사진 최정은 @greentangerine_jeju


이 글은 2022 영등포문화재단 술술센터 예술과 기술을 잇는 '누구나술술' 사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었습니다. @soolsool_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