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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Jan 30. 2024

한 스타트업의 '경력직 연봉 후려치기' 스토리

인생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8년 차 경력직으로 입사해 1년 하고도 3개월을 보냈다. 그리고 며칠 전, 마침내 난 첫 연봉협상을 거하게 치렀다.


고대하던 연봉협상이건만,

고대로 집에 가고 싶었다.


결과가 정말이지

너무나 참혹해서 말이지.










말아먹은 연봉이 무색할 만큼,  부단히도 달렸.  

('이직' 편은 이전 글 참고)

체계가 제로에 수렴하는 회사. 이곳에서의 잦은 야근은 경력직을 꽤나 고통스럽게 했는데, 더 최악인 건 앞으로도 바뀔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는 현실이었다.



그럼 난 대체 무얼 위해 1년 여를 버텼을까.

당연하게도 파트장이라는 직책과 넥스트 커리어, 그리고 인정이 그 이유였다. 적어도 모든 일에 나의 경험은 도움이 됐고, 중간 관리자로서의 입지는 쉽게 굳혀졌다. 보수적이고 고집스런 ISFJ는 사실 매사에  미련하게 맡은 바 책임을 다하려 한다. 좀처럼 고치지 못 하는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한술 더 떠, 경험 부족의 부실한 팀장을 서포트하는 역할도 종종 수행했다. 생각해 보면 모든 직장에서 그랬던 것 같다. 이게 바로 내가 승진 운이 없는 결정적인 이유일 지도 모를 일.



신입부터 팀장급에 이르기까지 나에게 자문을 하는 이가 많았으니, 이것은 곧 나에겐 인정이었고 보람이었다. 팀장 후보로 올랐다는 뜬소문이 들리기 시작했을 땐, 잠깐이지만 기분이 좋았던 것도 같다. 하지만, 여긴 체계가 없는 것도 모자라 곧 붕괴되더라도 이상할 게 없는 중소. 직급보단 연봉협상, 오직 직전 회사에서의 연봉 수준을 되찾는 협상 테이블에 앉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비록, 몸 값 올려 점프하는 이직러들과 비교하자면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한심한 일일 수 있지만 뭐 어쩌겠는가. 받아들이고 나아갈 수밖에.

 







그랬는데 그랬지만,

최악의 연봉협상 미팅을 9년 차에 맞이하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냐 말이다.




충격의 요점 정리




#1

인사팀 : 동의하기 어려운 결과일 수 있을 것 같다. 파트장님의 최종  '자가/상대/리더 평가' 레벨은 "C"다. 내규에 따라 약 2%의 연봉 상승이 있으니 변동 계약서 확인하시고 사인 부탁한다.

: 어떤 항목의 점수가 낮게 나왔는지 말씀해 달라. 노력해서 개선하겠다.

인사팀 : 그건 불가능하다. 평가자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가 평가서도 열심히 작성했고,

분명 '리더 피드백' 란이 있었다.

상대 평가에 대한 내용도 못 보는 것은 마찬가지.

그 어떤 내용 공개도 리뷰도 불가하단다.




#2

인사팀 : 평가 내용에 대한 공개는 어렵지만, 파트장님의 평소 업무 태도에 대한 피드백 내용은 있다.

업무 R&R 을 작성하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인지 말해 달라. 점주들과의 관계에 있어 감정적으로 응한 일은 없나.

나 : 그게 평가의 이유인가.

인사팀 : 그건 아니다. 한 부분일 뿐.


0.1초만에 뇌리를 스치던 일화들이 있었다.

- 업무 과중으로 매일 같이 야근하는 내게, 누가 봐도 형식적인 추가 업무를 주려하던 팀장. 처음으로 어려울 것 같다 난색을 표하는 내게 그는 R&R 작성을 요구했다. 업무 보고서도 아니고 R&R 을 말이다. 어째서 직속 팀장이 부하직원의 롤을 모르는 걸까. 일에 치여 차마 난 그걸 회신하지 못했다.

- 가맹 점주와 모든 팀원들이 함께 있는 단톡방. 감정적이고 경솔한 텍스트로 점주와 싸우는 팀장을 난 몇 번이고 봤다. 그 후, 점주/점장들은 하나 같이 나와만 대화하고자 했다. 무슨 말을 더 하랴.








머지않아 새로운 팀장이 출근한단 소식이 들려왔다. 사실은 내가 최악의 평가를 받고 있을 때 이미 1차 면접을 합격시켰다고 하더라.

나이도 한참 어린 오피스 경력도 없는 남자 사람. 그러고 보니,

이 회사 젊은 대표와 이사진, 그리고 팀 리더들까지 모두 남자였다.




문득 생각이 나네. 자긴 여성 팀원들이랑 일해 본 경험이 없어 나와 (정확히는 여자 파트장님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던 퉁명스런 그의 말.




결국, 파트장이지만 팀 내 그 누구의 상대평가도 진행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그 누구도 나를 평가를 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 팀장과 대표 사이에 직급자가 없는 구조, 대표가 직접 팀 주간회의에 참여한 것은 얼마 되지 않은 일이었다.

 



그저 웃음이 났다. 너무 씨게 후려맞아서.

아무리 중소 스타트업이라지만 이런 게 평가보상이고 연봉협상이라니. 




근데, 다음 주면 내 청첩장이 나온다.



....

인생 한 번 참 맵고 가혹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재취업, 그리고 연봉 대신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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