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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읗 Apr 26. 2022

백수가 하루를 시작하는 법.

캥거루족의 양심 있는 아침



오전 8시 언저리, 오늘도 어김없이 눈이 절로 떠졌다. 본능적으로 스마트폰을 집어 든 나는, 의미 없는 폰질로 무거운 눈꺼풀과 몸뚱이를 애써 깨워 본다. 화장실을 다녀와 체중계에 오른 뒤, 물 한 컵. 모자와 마스크를 챙겨 이내 밖으로 나간다.




아침마다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내가 싫었다. 침대 위에서 1시간 이상 허송세월을 보내는 건 더욱 끔찍했다. 마치 정신 수양이라도 , 추리한 몰골로 집 앞 공원을 걷는 아침. 어느 날은 이상하리만큼 날이 서기도 고, 때론 불현듯 현타가 찾아오기도 했다. 등산복 차림의 어르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특히나 그랬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눈곱도 안 떼고 이러고 있나.' 스스로를 의구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길 수차례.


하지만 팔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며 하루 일과를 곱씹다 보면 이내 몸과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부지런 떠는 내 모습이 세상 대견하기도 하다. 내 스스로에게 동기 부여 받기를 좋아하는 나는, 오늘도 그런 나를 한없이 기특해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누구도 시키지 않는 아침 산책이지만 절대 놓지 않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20분은 짧고, 30분은 어쩐지 길게 느껴지는 이른 시간. 대략 25분을 채워 2천 여 보의 걸음 수를 획득하고 시작하는 아침은 그래서인지 묘하게 중독성이 있다.


아침 산책의 데드라인은 9시 반. 식사 시간이 칼 같은 부모님과의 암묵적인 약속이자 룰이다. 나는 눈치껏 집에 돌아와 부지런히 아침 상 세팅을 돕는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지만, 나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다. 30대 백수 딸내미로서 지켜야 할 디폴트 값이자 최소한의 양심이라 여기기에.




특별할 일 없는 아침 식사가 끝나고 양치까지 마쳐야, 비로소 백수의 진짜 아침은 시작된다. 조금 일찍 아침을 열고 몸을 움직이며 생각을 깨우는 시간. 백수가 아니었다면 다신 없었을 감사한 아침의 여유다.


퇴사 7개월 차를 지나는 요즘, 스스로 안식년이라 일컫는 30대 백수의 양심 있는 오늘은 그렇게 또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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