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실내화가 생겼다. 오래 서있는 직업군에서 편하다고 입소문 났다는 그 신발. 그동안 신던 슬리퍼 가격의 3배다.
새 신발을 개시하던 날, 교사가 되고 처음으로 실내화를 구입하던 때가 떠올랐다. 내빈화를 신고 시간강사로 근무하기를 몇 달쯤 지났을까, 드디어 실내화를 샀다. 할인 쿠폰을 최대로 적용한 끝에 만원 초반에 구입한 그 실내화 덕분에 매일이 뿌듯했다. 내빈화 글자가 없는 만 원짜리 실내화가 어찌나 세련되게 보이던지.
그 실내화로 세 학교를 오가며 기간제교사 경력을 조금씩 쌓았다. 쌓이는 경력과 비례해 실내화 뒤축이 조금씩 닳았다. 쿠션이 없고 딱딱한 밑창은 바닥의 딱딱함을 그대로 흡수했다. 불편한 순간도 있지만 견딜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실내화를 교체하는 일은 사치 같았다. 지원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보고, 최종발표를 기다리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실내화를 사는 일은 더 꺼려졌다. 앞으로 실내화를 얼마나 더 신을지 예측할 수 없었다. 기능과 착용감까지 고려할 만큼 마음이 여유롭지 못했다. 그동안 내가 썼던 계약서는 모두 6개월짜리. 새 실내화를 사기에는 짧았다.
지금도 6개월 계약으로 근무 중이다. 다음 학기 내 모습은 아직 상상할 수 없다. 어디에선가 운 좋게 6개월 계약을 맺고 일하고 있을지, 오전엔 운동 다니고 오후엔 자녀들의 하교를 기다리고 있을지. 이처럼 1년짜리 기간제 경험을 해보지 못한 나에게 실내화를 새로 산다는 건 꽤 큰 투자였다. 당연히 6개월만 신고 말 생각으로 장만한 실내화는 아니다. 학교에 근무하지 않더라도 집에서도 외출용으로 신을 수 있겠지만, 감히 그렇게 취급할 순 없다. 학교 실내화는 직장생활을 하며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자 일종의 사치인 셈이다. 그 사치를, 학교에 발 들인 지 근 4년 만에 한껏 부렸다.
하루 8시간 학교에 머무는 동안, 거의 내 몸과 항상 붙어있는 유일한 아이템이다. 이런, 슬리퍼 한 켤레를 구입하면서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문득, 딸의 모습이 떠오른다. 지난 주말에 운동화 한 켤레를 사면서, 과소비하는 건 아닌지 재차 확인하고, 묻지도 않았는데 운동화를 사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만큼 운동화가 마음에 들었다는 뜻임을 단박에 이해했다. 나도 내 실내화가 마음에 쏙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