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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themoment Oct 25. 2022

나를 갈아 넣는 육아

그것을 통한 편안함

나는 나를 갈아 넣는 육아를 선택했다.


'나를 갈아 넣는다.' 어쩐지 안타깝고 무서운 말이다.


십여년 전,

결혼을 하기 전,

아이를 낳기는 더더욱 전이었던 그 때,

친구들과 이런 약속을 했었던 것 같다.


우리는 나중에 절.대.로 남편과 아이 이야기만 하는 아줌마는 되지 말자고.


추석이었는지 설을 지나고 였는지..

대학생이었던 우리는 용돈을 두둑히 받아 그 기념으로 마셔라 부어라

술을 한잔 하며 했던 말이었던 것 같다.

명절 내내 요리를 하며 나누는 어른들의 대화는 주로 남편과 자식 이야기였다고.

어쩜 그렇게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 거냐고.

우린 절대 그러지 말자고..

우리는 마치 독립된 여성인 듯 그런 결심을 했었다.


그랬던 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보니

절대로 되지 말자고 결심했던 그들과

별 다를 바가 없는,

자식과 남편 이야기를 빼면 딱히 할 말이 없는

그때의 그 아줌마가 되었다.


게다가 무려 아이들을 키우는 것에 나를 '갈아 넣자'는 결심까지 하다니.


처음부터 내가 이런 결심을 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야 물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아이를 케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큰 아이가 7살, 8살 즈음이 되었을 때

'이제 너는 많이 컸으니 스스로 할 것들은 스스로 하고 너도 세상에 대해 좀 배워야 한다.'

는 마음을 먹었었다.


첫째가 자신이 원하는 '그' 치과에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을 때,

이제 너도 컸으니 꼭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를 뽑는 일로 멀고 먼 어린이 치과까지 둘째를 데리고 다닐 수 없으니

집 앞 일반 치과에서 이 정도는 뽑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나도 내 주장을 좀 펴보자는 생각으로 첫째와 고집 싸움을 했고,

결과는 내가 졌지만

다음엔 꼭 엄마인 내 말대로 할거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었다.


학원 보강 시간에는 낯설어서 가지 못한다고 하는 첫째에게

할 건 해야된다는 명목과

세상일은 너가 하고픈 대로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걸 가르치려고

억지로 학원 앞까지 끌고 간 적도 있었다.

결과는 내가 졌지만

다음엔 꼭 너 말을 다 들어줄 수는 없다는 말을 또 남기기도 했었다.


이런 일들을 여러번 겪으며 드디어 깨닫게 되었다.

결과는 늘 내가 진다는 것과

다음엔 어찌 할거라는 경고는 그닥 소용이 없다는 것.

그리고 이런 일련의 일들,

예를 들면 너가 절대로(사실은 아직은) 못할 것 같은 일들을

세상을 (더 빨리) 배우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내가 해아한다고 하는 것들은

아이의 예민함을 자극하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돌고 돌아 내 발등을 내가 찍은 듯

나를 더 힘겨운 육아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내가 편하려면 나를 갈아넣듯 아이를 살피고 연구할 것을.

지금 아이가 어떤 기분인지,

불안한지 편안한지

나는 지금 어떤 말로 아이를 달래는 것이 좀 더 현명한지.

어떤 긴장의 순간이 오면

엄마의 최선의 힘을 발휘해서 머리를 굴리고 적절한 말을 찾아내고

아이를 빨리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기로.


그것이 아이를 위한 것만이 아니라

결국은 돌고 돌아 나를 위한 것이라는 걸 깨닳았다.


나를 갈아넣는 육아를 통해 더 편안해짐을 택했다.

뭔가 모순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이것 외에는 절적한 표현이 떠오르질 않는다.


나는 오늘도 나를 갈아넣었고 내 아이는 더 편안하다.

그리고 그것은 또 돌고 돌아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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