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운전을 하다가 관광버스 한 대가 고장 나 있는 것을 보았다. 엔진룸을 열고 어쩔 줄 몰라하는 버스기사를 보니 너무 웃겨 웃음이 났다.
아, 내가 사이코패스라 그런 건 아니고… 20년 전의 어떤 남자가 떠올라서…
때는 바야흐로 2003년, 지금으로 부터 약 20여 년 전, 한일월드컵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이제는 초등학교의 마지막 추억을 Be the Reds와 함께 접어두고 이제 진정한 학생으로 거듭나야 할 시기였다.
그동안 동네 학원을 다니며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던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긴 엄마는 친구들이 없는 , 버스를 타고 30분이나 가야 했던 낯선 학원으로 나를 보내버렸다. 엄마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죄로 유배지로 선정된 입시명문 S학원은 수원에서 악명 높은 학원이었다. 우리 학교에서도 몇 명 공부 잘하는 학생이 다니곤 했었는데, 학원주제에...국영수 시험을 보고 합격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점과, 엄격한 규칙들이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학원을 다닐 때 도 언제나 교복을 입어야 했고(심지어 주말에도), 노트는 학원 로고가 박힌 것들만 사서 쓰는 규정이 있었으며, 수업시간이 되면 도망가지 못하게 셔터를 내리는 학원이었다. 선생님들이 무려 때려주기도 한다는 점과 그만큼 좋은 성과를 내는 것으로도 유명했으므로, 엄마들에게는 좋은 학원으로 소문났을 터였다. 애석하게도 나는 시험에 합격하였고, 어엿한 입시명문 S학원의 일원이 되었다.
처음으로 가게 되는 날, 지정해 준 장소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버스는 오지 않았다. 혼자서 10여분 간을 기다리다 시내버스를 타고 갔다. 10분쯤 넘었을 때 관광버스가 지나갔긴 한데...S학원이라고 쓰여있지도 않았고, 멈추었다 가지도 않았으니...
그러나 그것은 나의 편협한 생각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마주친 버스는 아까 그 관광버스였다. 다른 노란색 학원버스들과 달리 2호차는 유난히 큰 40인승 관광버스를 운행했다. 분명히 원래는 흰색이었을 테지만, 세월의 흐름으로 누렇게 떠있었고, 나름의 멋인지 자주색 화살표 같은 디자인이 그려져 있었다. 차량 후면에는 요즘 보기 힘든 궁서체로 ‘동백관광’이라는 글씨가 쓰여있었다. 가끔 동남아 여행을 다니다 보면 억지로 생명을 연장한 한국 버스들이 돌아다니곤 하는데, 2호차 버스는 어쩌면 동남아에서 역수입해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예정보다 조금 늦은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40대 후반쯤 되었을까 싶은데, 당시의 나보다 작은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 촌스런 금색테에 돋보기로 된 안경을 쓰고 있었다. 비리비리한 몸매에 굽은 어깨와 두껍게 선명히 패인 이마에 주름살은 그를 더 늙어 보이게 만들었다. 등산복을 입는 다른 기사님들과 달리 흰 셔츠에 검정 베스트 조끼와 함께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은 마치 만화 <우리는 챔피언>에 나오는 ‘나원숭’ 같았다. 그렇게 그는 나에게 몽키가 되었다.
우리 집은 학원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가장 먼저 타는 것은 나였고, 가장 늦게 내리는 것 역시 나였다. 그래서 나는 몽키버스의 주행을 가장 오래 함께하며 가장 많은 에피소드들을 가진 목격자가 되었다. 나는 마치 종군기자처럼 사명감을 가지고 여러 에피소드들을 학원친구들에게 공유했으며, 제법 화제가 되었다. 다른 차량을 타야 하는 학원 친구들을 태우기도 했고, 학원에 다니지 않는 학교 친구들을 데리고 몰래 같이 타기도 했다(학원 근처 PC방이 유난히 좋았다). 언제나 새로운 에피소드가 생겨 관객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S학원을 같이 다닌 친구와 지금까지도 술안주로 애용하며 구전되어왔다. <괴짜가족>에서나 나올만한 이 이야기는 몽키와 그의 버스에 대한 회고록이다.
그는 ‘나원숭’ 만큼이나 스피드를 즐기는 사나이였다. 파란불에는 파란불이니 달렸고, 주황불은 더 빨리 달리라는 뜻으로 알고 달렸다. 빨간불에 애매하게 걸릴 때도 그의 질주는 계속되었다. 방지턱을 넘을 때도 속도를 늦추지 않아 무중력 체험을 선사하기도 했다. 그의 질주 본능은 멈추어있는 것을 참지 못하게 했다. 학생들을 태울 때는 마치 F1에서 피트 인을 하는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간혹 천천히 타는 애들이 있을 때는 문 닫음 버튼을 누르고 있으며 ‘삐-’ 소리로 재촉을 했다. 마지막에 타는 학생은 가끔 다리가 문에 끼곤 했다.(우리는 '몽키의 덫'에 포획당했다 라고 표현했다) 찰나의 순간도 기다리지 못하는 그였으므로 정류장에 학생이 없으면 기다려주지 않았다. 늦게 온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본인이 더 일찍 도착해도 기다리지 않는 노빠꾸 가이 이기도했다. 나는 차창 너머로 뛰어오는 친구들을 보고 손을 흔들며 놀려주곤 했다.
질주를 즐기지만 그렇다고 운전을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브레이크 사용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그였기에 도로에 적이 많았다. 어느 날은 옆 차선의 젊은 운전자에게 '뻐큐'를 먹는 바람에 <분노의 질주> '빈 디젤'이 되어 창밖으로 욕설을 하고 드래그 레이스를 펼치는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스피드 광인 그였지만 많은 학생을 태워야 해서였는지 학원에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적이 많았다. 정해진 시간이 되면 얄짤없이 셔터가 내려왔는데, 나는 인디아나 존스처럼 셔터가 내려올 때 아슬아슬하게 학원에 들어가곤 했지만, “열어주세요... 학원 차가 늦은 거란 말이에요ㅠ_ㅠ” 라며 철망을 흔들어 대는 것은 언제나 2호차 학생이었다.
S학원의 빈 디젤은 영화에서 처럼 그의 애마를 자주 정비하곤 했다. 안전운행을 위한 프로 의식으로 미화하기엔...그의 애마는 자주 고장이 나곤 했다. 가끔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버스에 탈 때면
“오늘은 안 되겠다... 시내버스 타고 가라...”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집에 늦게 엄마에게는 학원 차가 고장 나 걸어왔다고 하면 그만이었으므로 한참 카트라이더에 빠져있던 내게 PC방을 가기 위한 알리바이가 되어 좋았다.
잠깐 이야기 나온 김에 삼천포로 빠져보자면, 고장 나있을 때 말고도 몽키버스를 탈 때는 가끔 내려야 할 때들이 있었다. 나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표현을 일찌감찌 배웠다. 몽키로 부터...
명문 S학원의 버스기사였던 그 역시도 학생들을 잡는데 한몫을 하곤 했다. 버스의 주 탑승자인 중학생들은 학원에 도착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힘껏 떠들곤 했다. 다른 학교 출신이 모인 친구들이며, 핸드폰이 흔치 않던 시절이니 얼마나 할 이야기들이 많았을까. 하지만 몽키는 가끔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그의 버스는 관광버스였으므로 MIC가 있었다. 버스 통로를 따라 무지갯빛 조명이 켜지고 나선 마이크가 울렸다.
“주목! 목 목-목-목-… 거기 떠드는 놈 누구야! 야-야-야-야-…”
그의 버스에는 관광버스형 노래방 마이크가 설치되었기 때문에 에코가 참 프랜들리 해서 또 웃겼다.
"지금 떠든 놈 나와! 와-와-와-…"
그렇게 몽키의 운전석까지 가면 왜 떠드냐, 공부는 잘하냐, 오늘 영어 단어는 외웠냐(매일 수업시작하기 전에 단어시험을 봤다) 등 잔소리를 듣다가 한 번만 더 떠들면 내리게 할 거라고 위협했다. 당시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지는 친구들을 ‘몽키에게 강퇴당했다’라고 표현하곤 했는데 그것도 나름의 낭만이 있었다. 나는 가끔 친구들과 강퇴를 당했고 학원까지 걸어가며 닭꼬치도 사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도 하며 학원에 늦게 도착하고는 했다. 늦게 되어 단어시험을 못 보게 되니 맞지 않게 되어 좋기도 했다. (단어를 틀리면 틀린 개수만큼 맞았다)
나는 그의 강퇴단골리스트 였지만, 최고의 파트너이기도 했다. 어느 날 버스를 탈 때는 몽키가 직접 자동문을 친절하게 열어주며 나를 반겼다. 이 양반이 왜 친절해졌지 뭘 잘못 자셨나 싶었는데,
“오늘은 자동문이 고장 났다. 다음 정류장부터는 네가 문을 좀 열어줘야겠다”
그럼 그렇지.. ㅋㅋ 하지만 나는 이런 상황이 무척 재미있어서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게 나는 문지기가 되어 매 정류장마다 문을열며 친구들을 반갑게 맞이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며칠간 문지기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의 어느 날 수동으로 문을 여는 것조차도 고장 나버렸다.
그래서 스마트 몽키는 문을 그냥 열고 다니는 방법을 택했다. 우리 버스는 학생들이 많이 타는 바람에 서서 가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혹시 사고가 나서 학생들이 차 밖으로 굴러 떨어질 수도 있으므로, 한 명을 입구에 세워 두어야 했고, 나는 기꺼이 그의 로빈이 되어 양팔과 다리를 벌리고 문밖을 내다보는 자세로 승객들의 안전을 지켰다. 그렇게 학원에 무사히 도착하나 싶었는데…. 맙소사, 지나가던 경찰차에 발각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아- 거기 XXXX번 버스 문 닫고 주행하세요”
스피커를 통해 몇 번의 경고가 있었지만 버스의 문은 닫을 수 없었다
"XXXX번 차량 안 들립니까? 당장 정지합니다."
경찰차는 사이렌을 켜고 버스에 바짝 붙어 따라왔다. 나는 재빨리 나의 배트맨에게 보고했다
“아저씨, 경찰..! 경찰이 붙었어요”
“알고 있어... 꽉 잡아...!”
결국 그는 멈추는 것 대신 레이스를 택했다. GTA실사버전은 제법 오래 이어졌다. 그는 다음 정류장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정류장에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은 경찰차에 추격당하는 도로 위의 무법자, 그리고 X자로 버스입구에 매달려있는 나를 보고 배를 잡고 웃으며 지켜봤다. 하지만 그의 폭주기관차는 경찰차에 둘러싸여 결국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거의 다 왔으니 걸어가라..”
추격전을 펼치고 난 뒤 어느 날, 집에 가기 위해 버스에 타려고 하는데 문이 닫혀있었다. 몽키는 맨 뒷자리에서 몰래 잠자는 것을 즐겼는데, 늘 애들이 문 열어 달라고 차를 두들겨야 그제야 주섬주섬 일어나 문을 열어주곤 했다. 그날도 그러나 싶었는데, 학생들이 구름같이 모이는 때가 되어 그제야 ‘삐-’ 소리와 함께 자동문이 열렸다. 다스베이더처럼 등장한 그는 폭탄선언을 했다.
“오늘은 파업이다. 운행 안 하니 알아서들 가라”
몇 학생들이 선생님께 일러바쳤고 학원선생님과 실랑이를 했지만, 결국 학생들은 결국 뿔뿔이 흩어져 시내버스를 타고 집에 가게 되었다. 나는 교과서에서만 배우던 ‘파업’이라던가 ‘시위’라던가 ‘항쟁’ 같은 것을 그때 처음 목격했다.
파업은 이후에도 몇 차례 계속되었다, 재미가 들린 영리한 원숭이는 낮 시간에는 태워오고 밤 시간에는 파업을 하는 방법으로 학원을 골탕 먹였다. 몇 번은 극적 타결이 되어 버스를 타고 가게 되고 몇 번은 장기화가 되어 어쩔 수 없이 PC방으로 대피를 하곤 했다...ㅎㅎ
며칠째 파업과 타결이 반복되고, 시간이 지나자 상황이 심각해졌다. 다른 호차의 버스기사님들도 힘을 모아 동시에 파업을 하였고, 심지어 학생들이 버스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는 시간에 학원 옆 감자탕집에 모여 회식을 하고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학원담당자는 결국 감자탕집으로 가서 담판을 벌였고, 결국 극적 타결이 되었다. 다른 버스들은 하나씩 학원을 떠났지만 몽키의 차량은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몽키가 차에 탑승하고 무지개 빛 조명과 함께 마이크에서 에코가 울려 퍼졌다.
“아저씨가 그동안 미안했다-다-다. 기름값도 오르고 해서 학원에서 금액 인상을 해주기로 했는데-데데-, 해준다 해준다 하면서 안해주더라-라-라-. 그래서 몇 번 운행을 못했었다-다-다-..아저씨도 가족이 있다. 너희만 한 아들이 있는데-데-데-…어쩌구 저쩌구...”
아 그랬구나... 그렇다... 몽키도 누군가의 남편이었고, 누군가의 아버지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미치광이 레이서가 된 것도... 동남아 역수입 40인승 버스를 몰게 된 것도... 더 많은 학생을 태워야 돈을 많이 벌 수 있어서였기 때문이 아닐까... 가장으로서 짊어진 그의 무게가...
라고 생각할 뻔했는데..
“… 그래서 이 아저씨가 말이야~ 기분이 좋아서 오늘 한잔 했다-다-다-! ”
다른 기사님들은 다 직접 운전하고 갔지만 결국 이 못 말리는 주정뱅이는 대리운전을 불렀다. 어린 시절이었기에 한편으로 '드렁큰몽키 호'를 타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대리기사가 모는 학원 버스를 타는 것은 분명 귀한 경험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는 다른 '선생님'이 운전을 해주실거라고 아이들에게 얘기했지만 그 선생님이 버스에다가 "대리 부르셨죠?" 라고 말한것이 마이크를 타고 방송이 되어 포복절도 했다. 마이크로 대리기사님께 정류장들을 안내하는 휴먼네비게이션이된 그는 마에스트로 같았다, 이후에도 몽키는 관객들에게 “… 그래도 아저씨가 옷은 제일 잘입지 않냐? 항상 유니폼도 차려입고말이야-야-야-" 등 만담쇼를 했다. 내리는 관람객들은 어쩔수없이 그에게 하이파이브를 당하곤 했다.
이후에도 에피소드들은 계속 만들어졌다. 늦게 와 놓고 중간에 멈추어 과일트럭에서 사과를 사 오는 여유를 부린다던가... 학생과 시비가 붙어서 싸운다거나, 자다가 못 일어나서 운행을 못했던 것, 버스 엔진에 불이나 화생방 체험을 했던 것. 엔진폭발로 밤늦게 집까지 걸어가다 힘들어 경찰차를 타고 집에 간 적도 있었다. 그전에는 앞서 소개한 다양한 별명으로 춘추전국시대였지만, 엔진 폭파사건이 너무 빅 이슈였기에 이후에는 '불꽃의 드라이버'로 통폐합되었다.
딱딱한 규율의 입시명문 S학원과 물렁하다 못해 휘어져 버린 버스기사.
넥타이까지 차려입는 단정한 옷차림의 신사와 경찰을 따돌리는 뒤틀린 마음의 무법자
이 멀찍한 간극은 그의 행실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젊은 시절 폭주족이 되지 못해 뒤늦게 타락해 버린 늦깍이 폭주족 몽키..
그는 극악 무도한 입시명문 S학원에서 몇 안 되는 유희거리가 되어준 나의 즐거움이었다.
아... 나의 폭주기관차...안 영광의 레이서...매드 드라이버...노란손가락의 솔리드프로...질주밖에 모르는 바보... 비리비리한 빈 디젤... 늙은 예솔이(적녹색약)...언럭키 슈마허... 하지만 한편으론 블랙박스 없던 시절이라 행운인 남자. 현실의 GTA, 도심 속의 매드맥스...를 나에게 알려준...
기억할게...! '불꽃의 버스드라이버 몽키’
몽키의 솔리드프로가 생각나는 버스 사진을 구했다 (출처:KimC님의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