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에서 발견한 '따로, 또 같이'의 연대기
2026년 4월 5일, 광화문 이순신 동상 앞에 섰다. 1만 5천 명의 참가자가 뿜어내는 열기는 이른 아침의 공기를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생애 첫 마라톤 도전. 아파트 단지에서 3km를 겨우 달리며 연습을 시작했던 내가, 배우 정해인도 참여하는 대회에, 그리고 저마다의 목표를 품고 모인 수많은 '달리기 도반'들과 도심 한복판을 누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사실 대회를 앞두고는 후회가 앞서기도 했다. 10km를 신청해 놓고는 정작 연습은 뒷전인 채 마음만 묵직해졌다. 5Km 가 있었다면 그걸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10Km와 하프 코스 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가 왜 사서 고생을 자처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때마다 나를 다잡은 건, 결승선을 통과할 때의 성취감에 대한 막연한 기대였다.
을지로를 거쳐 청계 9가, 평소 차로만 지나던 도심을 내 두 발로 가로지르는 기분은 상상 이상이었다. 페이스 조절과 호흡에 집중한 덕분일까. 완주를 목표로 90분 이내 진입을 바랐던 결과는 1시간 14분이라는 기대 이상의 기록으로 돌아왔다. 완주 메달을 목에 걸고 간식 꾸러미를 받아 든 순간, 세상 모든 것을 얻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의 기세라면 매주 10km도 거뜬할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일상의 무게에 치여 3주간 운동화 끈을 묶을 기회조차 없었다. 그러다 오늘, 마음 맞는 친구와 다시 청계천을 찾았다. 우리의 방식은 철저히 ‘따로, 또 같이’였다. 각자의 페이스대로 뛰되, 정확히 40분이 지나면 그 지점에서 몸을 돌려 다시 출발지로 돌아오기로 약속했다. 나는 40분 동안 5km를 나아갔고, 나보다 기량이 좋은 그녀는 전반에만 6km를 뛰었다. 각자의 지점에서 반환하여 돌아왔더니 나는 10km, 그녀는 12km를 완주하게 되었다. 누가 먼저 도착하든 레이스가 끝난 지점에서 나를 기다려 줄 동료가 있다는 사실은, 고독한 질주를 견디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되었다.
청계천에서 만난 수많은 러너들 역시 든든한 도반이었다. 특히 달리는 도중 마주친 외국인들이 손을 들어 반갑게 "Hi!"라며 인사를 건넸을 때, 처음에는 당황해 반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몸이 무겁게 느껴지고 호흡이 가빠지자 어느덧 나도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말로만 듣던 '러너스 하이'의 교감이었을까. 신기하게도 그 짧은 인사를 나누고 나면 멈추려던 다리에 다시 힘이 샘솟았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촉진(Social Facilitation)’ 효과라고 부른다. 타인의 존재가 개인의 수행 능력을 높여주는 현상이다. 하지만 오늘 내가 경험한 것은 단순한 수행 능력의 향상을 넘어선 ‘정서적 연대’였다.
조직 생활도, 인생이라는 긴 레이스도 마찬가지 아닐까. 때로는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고독하게 달려야 하지만, 결국 끝까지 완주하게 만드는 힘은 결승선에서 마주칠 동료, 그리고 길 위에서 짧은 눈인사를 나누는 타인들에게서 나온다.
오늘의 청계천은 단순한 달리기 코스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서로를 견인하는 거대한 공동체였다. 완주 메달보다 빛나는 것은 내 곁을 지켜준 도반의 미소였고, 혼자서는 결코 넘지 못했을 벽을 기어이 허물어뜨린 우리들의 발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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