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현재 팀의 팀장으로 발령받은 후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성과평가 등급에 불만이 있다며 사원 A가 면담을 요청했다.
“팀장님, 좀 전에 작년 하반기 성과평가 등급을 확인했는데 보통입니다. 제가 올해 대리 승진 후보자인데 보통 등급을 받으면 승진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원 A는 상기된 표정으로 씩씩거리면서 말했다.
“나는 올해 1월에 부임했어요. 작년 하반기 성과평가 등급은 내가 준 게 아닌데, 그건 알고 있죠?”
나는 처음부터 명확하게 짚고 싶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전임 팀장님께서 도대체 왜 보통 등급을 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용하는 단어는 적절했으나 표정 관리는 전혀 되지 않았다.
“나에게 면담 요청을 했는데, 어떤 사유인가요?”
현재 부서로 발령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팀원들의 성향을 빠르게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이번 미팅으로 사원 A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는 의도로 나는 원론적인 질문을 이어나갔다.
“왜 저에게 보통 등급을 주셨는지 전임 팀장님에게 여쭤보려고 합니다. 저는 올해 대리 승진 후보자인데 보통 등급을 받았으니 승진 확률이 낮아졌어요. 어쩌자고 저에게 보통 등급을 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원 A는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한 모양이었다.
“전임 팀장을 찾아가서 이유를 들으면 지금보다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요?”
나는 객관적인 태도를 고수했다.
“......”
사원 A는 대답하지 못했다.
“성과평가 등급이 이미 전산상으로 떴잖아요. 이의신청할 건가요?”
이번에는 직설적으로 물었다.
평가 등급 A(보통)를 받은 직원의 대부분은 이의신청을 하지 않는다. 평가 등급 B+(하위 등급)을 받은 사람 중 극히 일부가 이의 신청하지만 90% 이상 기각된다. 팀장들이 이의신청에 대비하여 객관적 근거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의신청하지 않을 겁니다.”
사원 A는 담담히 말했다.
“진짜로 원하는 게 뭐예요? 승진하고 싶은 건가요? 아니면 전임 팀장을 찾아가 보통 등급을 준 이유를 듣고 싶은 거예요?”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약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아…. 그게…. 왜 보통 등급을 주셨는지 묻고 싶어요. 그리고 승진도 하고 싶고요.”
나는 A를 향해 애정을 담아 말했다.
“인사권과 평가권은 조직장 고유의 권한이에요. 특히나 지원 부서의 직원들은 상대평가입니다. A님은 작년 상반기 대비 하반기에 성과를 냈다고 주장하지만, 상대평가는 상 하반기 본인의 성과를 비교하여 주는 것이 아니에요. 팀 내 다른 팀원들과 비교하여 A님이 상대적으로 더 성과를 내야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어요. 작년 상반기에 100% 성과를 냈고, 하반기에 120% 성과를 냈어도 사원 B가 하반기에 130% 성과를 냈다면 사원 B가 더 높은 등급을 받게 되는 거죠.”
내가 이렇게까지 직설적으로 말할 거라고는 예상 못 했는지 A의 얼굴이 다소 상기되었다.
“그렇죠. 팀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전임 팀장님을 찾아가지 않는 게 더 나을까요?”
나는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A에게 질문했다.
“대리 승진 후보자 중 한 명인데 보통 등급을 받았으니, 승진이 안 될까 염려가 되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지금이었다. 순순히 수긍하는 A를 보고 나는 코칭의 타이밍을 잡았다.
“제가 팁을 하나 줄게요. 전임 팀장님에게 면담 요청을 해 보세요”
나는 A의 눈을 보며 간결하게 대답했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A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나는 A에게 차분히 말씀을 드려보라고 제안했다.
“팀장님, 안녕하세요. 새로운 업무로 이동하셨는데 요즘 건강은 어떠세요? 오늘 오후에 작년 하반기 성과평가 등급을 전산상 확인했습니다. 저보다 성과를 더 낸 사람이 높은 등급을 받았을 거고 팀장님께서 여러 가지를 고려하여 평가하셨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대리 승진 대상자여서 행여나 승진이 안 될까, 염려되어서 이렇게 찾아뵈었습니다.”
사원 A는 의자를 테이블 쪽으로 바짝 당겨 앉으며 내 말에 집중했다.
전임 팀장도 모든 승진 대상자를 다 고려할 수는 없었을 거다. 대상자는 많으나 승진율이 낮으니 조직장들도 성과평가 시즌 때마다 괴롭기는 매한가지다. 과부 심정 홀아비가 안다고 팀장 직무를 하는 사람으로서 동병상련을 느꼈다.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승진 대상자가 많다 보니 전임 팀장님은 A님이 대상자인지 모를 수도 있어요. 이번에 찾아가서 전임 팀장님에게 인지시켜 놓으면 그것으로 절반은 성공입니다. 미팅 말미에 특정 질문을 받는다면 100% 성공했다고 보면 됩니다.”
“마지막에 어떤 질문을 받으면 되는 걸까요?”
A는 너무 궁금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대리 승진 후보자가 누가 누가 있죠? 전체 총 몇 명이죠?, 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성공이에요. 대신 못 받을 수도 있으니 너무 기대는 하지 말아요”
미팅 초반 A의 화난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어둠에서 한 줄기 빛을 만난 듯 눈빛이 반짝거렸다.
“팀장님, 그런데 그 질문이 어떤 의미가 있는 거예요?”
조급해 보이던 A가 이런 질문을 해 오니 나 역시 기뻤다.
“좋은 질문이에요. 우리 실에서 승진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사람이 누구죠?”
“실장님 아닌가요?”
“네, 맞아요. 실장님이에요. 실장님이 승진 대상자를 놓고 누구를 승진시킬지 고민할 때 대상자의 현재 조직장, 전임 조직장에게 후보자들에 관해 물어보게 되지요. 그때 좋은 피드백이 들어가면 아무래도 승진하는 데 도움이 되죠.”
A는 본인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알게 되었다는 듯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전임 팀장님을 찾아가서 평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보다는 A님이 승진 후보자 임을 명확히 인지시켜 주는 것이 더 나은 선택 같아서 말해주는 거예요.”
“팀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하마터면 큰 실수할 뻔했습니다.”
다음 날 A는 나에게 메신저로 면담 신청을 다시 해왔다. 메신저 단어의 뉘앙스만 보더라도 전임 팀장과의 미팅이 성공적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회의실로 들어가니 먼저 와 있던 A가 밝은 얼굴로 나를 반겼다.
“팀장님 덕분에 전임 팀장님과 미팅을 잘했습니다.”
“잘 되었네요. 뭐라고 하시던가요?”
“제가 승진 대상 후보인 줄 모르셨데요. 그리고 마지막에 물어보셨어요. 대리 승진 후보가 누구누구냐고? 총 몇 명이냐고? 현재 하는 일 열심히 하고 성과를 잘 내라고 격려도 해 주셨어요.”
“마음이 이제 좀 편해졌어요?”
“네, 승진이 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이번에 큰 걸 배웠습니다.”
“무엇을 배웠는지 궁금하네요.”
“아는 만큼 보인다. 상대적 성과평가의 경우에는 ‘상반기 대비 하반기 내가 얼마나 성장했나’보다는 팀 내 다른 팀원들과의 성과를 비교하여 등급이 결정된다. 급한 마음에 전임 팀장을 찾아가 미팅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많은 것을 배웠네요.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에 저도 공감합니다. 우리가 타인의 조언과 피드백을 열심히 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구해야 얻어지니깐요.”
Key Message
1.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에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라.
2. 본인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라.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야 방법을 탐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