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칙을 깨고 얻는 최종의 자유
어디선가 이런 글을 봤다. 서양에서는 연애하지 않는 사람을 두고 ‘찐따’ 혹은 ‘루저’로 취급한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원하지 않음에도 사회적 압박 때문에 불가피하게 연애를 지속하는 서양 친구들을 봤다는 댓글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한국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은 듯했다. 우리나라 특유의 오지랖은 ‘연애’를 주제로 한 대화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으며, 애인이 있는 친구들은 솔로인 나에게 “아직도 혼자야?” “누구라도 만나”라는 닦달을 끊임없이 하곤 했다. 그리고 이러한 닦달을 멈추지 않았던 친구들 탓에, 그들의 연애 TMI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들에겐 연애란 전시의 일종이었으므로 일거수일투족 친구인 나에게 상황을 공유하곤 했으니 말이다.
그들의 공유 덕에 알게 된 커플들의 데이트 코스 중 하나로 ‘대학로 연극 관람’이 기억에 남는다. 사실 이것도 90년대 초반생들이 20대이던 시절의 정서이고 그들과는 이런저런 이유로 연을 끊은 탓에 요즘 데이트 코스는 업데이트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가 한참이던 20대 때에는 극장만 가는 건 어딘가 식상하고 뮤지컬을 보러 가자니 가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탓에 대학로 연극 관람이 꽤 인기였다. 더군다나 연애를 주제로 한 가벼운 연극이 많았기에 심적 부담도 적었을 테다.
나 역시 대학로 연극 관람과는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당시 상경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기, 모 구성작가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던 때였다. 아카데미 동기 중 한 아이는 자신의 취미는 연극 관람인데 나를 보며 어쩐지 연극 보는 걸 좋아할 것 같다는 친근함을 표시했다. 당시 극심한 예술 병을 앓았던 탓에 낯선 친구가 예의상 한 말에 기뻐하며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대학로로 향했고 그 발걸음은 사람들의 동정을 받는 시초가 되었다.
혜화역에 도착하자, 어린 학생이 조심스레 전단지를 건네주며, 지금 예매하면 30% 할인된 값으로 연극을 볼 수 있다며 다가왔다. “옳다구나” 싶어 예매를 마치고 일찌감치 좌석에 착석했다. 소규모 연극이라 그런지 공연장의 규모는 매우 작았다. 무대 위 떠다니는 먼지가 선명히 보였고 공연 시작 전, 잠시 얼굴을 비친 배우의 숨소리마저 체감됐다. 객석의 간격도 매우 좁아 부디 내 옆이 공석이길 바랐건만 공연 시작 10분 전, 내 왼쪽으로 옛 되어 보이는 대학생 커플이 들어왔다. 보통 통로 쪽엔 남자가 안쪽엔 여자가 앉을 법한데 이 커플은 반대였다.
그 때문에 남학생의 넓은 어깨가 내 머리에 스치는가 하면 그들이 과도한 애정 표현을 할 때마다 좌석이 흔들리곤 했다. 그리고 이어서 오른쪽으로 또 다른 커플이 나타났다. 직장인으로 추정되는 그들은 소개팅을 마치고 온 사람들인가 싶을 정도로 서로가 서로에게 매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고 통로 쪽엔 남자가, 안쪽엔 여자가 앉았다. 머리를 쓸어 넘기자 풍기는 여자의 향기가 자연스럽게 스며들 정도로 근접한 거리였다. 그러니까 무대에서 바라본 우리(?)의 모습은 대략 이런 구조였다.
대학생 커플 (여) / 대학생 커플 (남) / 나 / 직장인 커플 (여) / 직장인 커플 (남)
그렇게 두 커플 사이에 낀(?) 채로 공연은 시작됐다. 연극의 묘미에 흠뻑 빠져 관람을 이어가던 도중 본격적인 공연 시작 전, 관객에게 얼굴을 비추며 극장 내 미묘한 숨소리를 전파했던 그 감초 배우가 이내 객석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초점은 믿고 싶지 않았지만 나를 향하고 있는 듯했다. 멋쩍은 웃음으로 시선에 대답한 나에게 그는 물었다. “혼자 오셨어요?” 그리고 말을 이었다. “양쪽 다 커플인데 괜찮으세요?” 배우의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웃겼다. 유쾌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엔 당황스러워 답하지 못했지만, 배우의 질문에 지금 답하겠다. 네! 혼자여도 괜찮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그날의 사건(?)을 주변인들에게 공유했다. 나름대로 재밌는 경험이었기에 같이 웃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모두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도대체 왜 혼자 갔냐며 나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음엔 꼭 데이트로 가라는 말을 이었고 원한다면 좋은 사람 소개해 준다는 덕담(?)까지 덧붙였다. 혼자 간 것이 내심 뿌듯하기도 했고 즐거운 추억으로 남았기에 친구들의 반응은 다소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머지않아 혼자가 재밌다며 친구들의 권유를 정중히 거절했지만, 그들은 나에게 최종 폭탄을 던지고야 말았다.
“정신 승리 그만하고”
“뭐?”
“정신 승리?”
몇 년 전부터 일상생활에서 자주 쓰이던 이 ‘정신 승리’란 표현의 시초를 찾아보니 중국의 비평가 루쉰의 소설 '아Q정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아Q정전의 주인공 ‘아Q’는 동네 깡패들에게 얻어맞고는 나는 아들에게 맞은 격이라고 정신 승리를 했다고 위키백과가 설명해 주고 있다.
불쾌했지만 최대한 감정을 억누른 채 친구에게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그냥 혼자 처량해 보일 수도 있으니까”
“뭐가 처량해?”
“다 커플인데 혼자만 솔로면 좀 그렇잖아. 남들이랑 다르니까”
남들이랑 다르니까?
남들과 다른 건 어딘가 이상한 것, 그러니 남들이 하는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내재 된 반응이었으리라. 이미 그렇게 생각하는 친구를 설득할 자신이 없어 답장하기를 멈췄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러한 선입견과 규정은 결국 개인의 행동 제약으로 확산되며, 그 제약은 하나의 족쇄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이러한 족쇄를 찰 바엔 차라리 끊어 버리겠다는 것을.
아이러니하게 친구의 돌직구를 듣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채 원하지 않는 룰을 수용할 바엔 그 룰을 깨버리고 최종의 자유를 얻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그러니 동정은 정중히 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