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파란색 후드티 차림으로 나타나셨다. 마스크도 파란색이었다. 어머니의 새로운 모습에 나는 '헉' 했고 아내와 아들은 웃었다. 코발트 블루. 영탁의 색이다. 채도 높은 선명한 파란색이다. '어머니가 이 정도 팬이셨다니. 어머니의 설명을 듣고 주변을 돌아보니 서울 수서역에 파란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보였다. 전국에서 영탁 공연을 보러 온 팬들이었다. 지나가는 팬들이 갖고 있는 영탁 굿즈를 하나하나 설명해 주셨다. 굿즈를 많이 모으지 못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영락없는 10대다.
어머니는 비둘기호-무궁화호 세대다. 내가 초등학교 때 우리 가족은 외할머니가 사시는 서울 외삼촌 댁에 무궁화호를 타고 다녔다. 먹고살기 바쁜 일상에 자주 오진 못했다. 몇 년에 한 번 서울에 가는 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특별시라는 말이 더 와닿았다. 늘 아버지가 다섯 식구를 인솔했다. 기차로 꼬박 4시간 30분 걸렸다. 우리 가족은 기차표 4장을 샀고 서로 마주 볼 수 있도록 좌석을 돌려 앉았다. 나는 형과 누나 사이에 끼어 앉았다. 기차를 타는 게 즐거우면서도 멀미 때문에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서울역에 다 왔음을 알리는, 금빛 반짝이는 63빌딩은 인상적이었고, '어른이 되면 꼭 서울에서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수서역으로 다니면서 더 이상 63빌딩을 볼 수 없게 됐다. 서울에 사는 것을 후회하진 않지만 힘겨울 때가 많다.
어머니는 생애 처음으로 SRT를 타셨다. '기차표를 검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셨고, '2시간도 걸리지 않는 속도'를 경험하셨다. 새벽 장사를 하고 오셨는데도 피로감보다 영탁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서려 있다. 영탁 공연에 쏠려있는 어머니의 마음을 안심시키기 위해 공연장 인근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어머니가 마음 편히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긴장이 풀렸다. 서울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밥 한 끼 먹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니. 공연 시간보다 20분 일찍 도착했지만 어머니는 팬들이 열연하는 영탁 공연을 보지 못해 아쉬워했다.
영탁 공연은 3시간 동안 진행됐다. 어머니를 위한 '어머니의 시간'이다. 기대하지 않아서일까. 공연은 생각보다 훌륭했다. 어디선가 무심코 들었던 노래들이 영탁의 노래였다. 옆에 앉은 중년의 팬들이 겸연쩍어할까 봐 어머니가 주신 응원봉을 열심히 흔들었다. 아는 구절은 따라 불렀다. 영탁의 퍼포먼스만큼 팬들은 열광적이었다. 노래를 따라 불렀고 춤을 따라 췄고 영탁의 외침에 다 같이 외치기도 했다. 젊은 팬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 주변은 모두 중년을 넘어선 어르신이었다.
숙연해졌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가 떠올랐다. 자식과 남편을 위해 젊음을 바치면서 자신을 잃어버렸다. 자식의 출세와 남편의 성공이 가장 큰 보상이었다. 정작 자신은 늙어버렸다. 골다공증을 진단받는 나이가 돼서야 가족의 관심을 받았다. 그런 어머니들이 영탁을 통해, 영웅을 통해, 장민호를 통해, 이찬원을 통해 다시 젊어졌다. 우리 어머니들이 이렇게 열광했던 적이 있었을까. 영탁은 그들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줬다. 영웅은 청춘을 돌려줬고 장민호는 삶을 되찾아 주었으며, 이찬원은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마음 한켠에 젊은 트로트 가수를 무시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진심으로 그들에게 감사하며 우리 시대의 어머니들에게 인생의 아름다움을 선사해 주기를 응원한다.
공연의 마지막은 영탁의 관객석 방문이었다. 어머니 자리 주변으로 경호원들이 자리를 잡았다. 눈치가 빠른 나는 이쪽으로 나오시라고 어머니의 팔을 재촉했다. 예상대로 어머니 자리 뒤쪽으로 영탁이 다가왔고 팬들은 또 한 번 열광했다. 영탁은 순식간, 0.1초 만에 지나갔지만 어머니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아하셨다. 이때부터 시작한 "영탁이 얼굴이 주먹만하다"는 레퍼토리는 한동안 계속됐다. 아마도 어머니의 소원은 영탁과 사진을 찍는 게 아닐까.
3시간의 공연에도 어머니는 지친 기색 없이 생기가 넘쳤고 여전히 들떠 있었다. 일흔 넘은 할머니가 맞나 싶었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어머니의 시간'이 시작됐다. 올림픽공원과 가깝고 롯데월드타워(서울스카이)와 연결된 잠실 롯데월드몰로 이동했다. 예약해놓은 레스토랑에는 장모님과 아내, 아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두 어머니는 손을 마주 잡고 인사했다. 결혼식 이후 처음 대면했다. 10년 만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따뜻한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는 장모님이 대접했다. 장모님은 어머니만큼 통이 크시다.
드디어 4년을 기다려온 서울스카이에 올라갈 시간이 됐다. 서울에 사시는 장모님도 서울스카이는 처음이었다. 고속 엘리베이터를 탈 때만 잠깐 기다렸을 뿐 붐비지 않았다. 표를 끊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 어둡고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가니 120층까지 1분 만에 올라가는 고속 엘리베이터를 만날 수 있었다. 고속 엘리베이터로 가는 길에 서울스카이 건축 정보들이 있었지만 눈여겨보는 이는 없었다.
우리는 서울 야경을 감상했다. 어머니와 장모님에게 어디가 어딘지를 설명해 드리고 싶었지만 그냥 편안하게, 자유롭게 걸어 다니며 밖을 내다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서울스카이가 영탁 공연만큼의 감동은 주지 못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새로운 곳에서 사진을 찍고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잔잔한 감동이 밀려왔다. 우리는 그렇게 서울스카이를 돌아다니며 꽤 오랜 시간 머물다 내려왔다.
잠실 롯데월드몰 외부 광장에는 한 달 넘게 남아 있는 크리스마스가 벌써 시작됐다. 쌀쌀한 날씨에도 많은 사람들이 불빛 반짝이는 대형 트리에서 사진을 찍고 회전목마를 타려고 줄을 섰다. 우리도 서울스카이에 입장할 때 나눠준 쿠폰으로 회전목마를 탔다. 롯데월드몰에서 3만 원 이상 구매한 영수증을 제시하면 회전목마를 탈 수 있다. '3만 원에 1명' 이런 식인데, 회전목마 티켓은 따로 팔지 않는다.
어머니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회전목마를 탔다. 주변은 온통 젊은 커플들과 어린 자녀를 둔 가족들만 있었다. '할머니가 타도되느냐'고 묻는 듯 긴장한 표정이었다. 목마에 앉아 조심스럽게 셀카를 찍는 어머니를 보니 마음이 아팠다. 조금 더 일찍 세상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해드리지 못해 슬펐다. 어머니를 위한 어머니의 시간이 얼마큼 남았을까. 세월이 원망스러웠다. 우리는 늦은 시간 집에 도착했다. 새벽 장사부터 영탁 공연과 서울스카이, 회전목마, 그리고 우리 집에 오시기까지 무려 17시간이나 밖에 계셨다. 힘든 내색은 안 하셨지만 한없이 죄송했다. 어머니는 영탁 유튜브를 켜놓은 채 손자 방에서 아기처럼 주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