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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랑크톤 Jul 01. 2024

사랑-1

2024년 5월 15일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같잖고 우스웠다.


울고불고 매달리는 드라마 속 연인들, 처절한 목소리로 불리는 발라드들에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내 주변에서는 이미 끝난 관계임이 명백한데도 인정하지 못하는, 또는 남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도 상대를 내치지 못하는 친구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나는 항상 내 기준의 객관을 근거로 삼아 이별을 종용하는 사람이었다.




 당시 나는 굉장히 오만한 시선으로 모든 것들을 내려다보듯 했던 것 같다. 얄팍한 감정 따위에 저렇게 휘둘리다니. 언제든 손바닥 뒤집듯 바뀔지 모르는 검은 머리 짐승들에게 모든 것을 걸다니. 전부 한심하고 답답했다.


 이런 나의 생각들은 이십 대를 지나는 동안 나를 꽤 편하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아무도 온전히 믿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영원을 약속하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은 어떤 것이든 해야만 직성이 풀렸고, 그러는 중 상대의 상처나 배신감 등은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나를 좋아하거나 사랑해주던 사람들을 그저 내 필요에 의해 곁에 두다가 소명을 다하는 순간 바로 손을 놓아버렸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커지는 무게와 책임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고, 나의 귀찮음이나 불편함이 제일 우선이었던 이기적인 시절이었다.




 그러던 이십 대 후반, 큰 변화를 겪게 된다. 그 때 나는 장기 연애를 하고 있던 애인이 있었고 상술했듯 그의 소중함을 그다지 체감하지 못했다. 애인도 양가 집안도 만난 기간이 오래된 만큼 결혼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했으나, 나는 이대로 이 사람과 영원을 약속하는 것에 대해 도저히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그러면서 나의 모든 연애와 사랑이 사실 근본부터 방향이 틀렸던 것이 아니었나 하는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결단을 내린 나는 관계를 정리하고 새로운 만남과 사랑의 형태를 시도했다.




 그리고 서른이 되어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좋은 사람이었기에 이쪽 경험이 전무하던 나를 이해해 주었고 짧은 만남이었을지언정, 내 스스로 변화에 그다지 거부감이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다음으로 만났던 사람 오늘 일기의 상당한 지면을 차지할 사람이다. 그는 난생처음으로 나를 미치도록 괴롭게 만들었던 연인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잘 보이고자 애를 쓴 적이 있었는가. 안쓰럽고 걱정되는 마음에 하고 싶은 말도 행동도 누르고 참은 적이 있었는가. 또 상대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내 마음을 몰라줘서 이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적이 있었는가...


 처음 보는 내가 그곳에 있었다. 이십 대의 연애 동안 형성된 나의 모든 논리와 태도는 전부 무용지물이 되었다. 갑자기 나이 서른에 인생 처음으로 '진짜 연애'를 해보는 느낌이었다. 모든 게 어설프고 어려웠다. 서로의 마음은 큰데 그 마음이 오가는 과정은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그 사람과 나 사이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겹겹이 쌓여있어 우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매 순간 방해했다.(돌아보면 그것은 불안정 애착에서 나오는 방어기제들이었다.)




 그와 나는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 누구 한 명이라도 사과를 하지 않는 날보다 사과를 해야하는 날들이 더 많았고, 서로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다 보면 우리가 대체 어디를 향해 가는지 어디서부터 온건지 아무것도 모르겠는 상태가 되기도 했다. 가까워지지도 멀어지지도 못하는 고착 상태에서 괴로움에 몸서리치다가 함께 심리 상담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지쳐갔다. 그때를 생각하면 칼에 난도질 당한 천 쪼가리가 바람에 너덜너덜 휘날리는 위태로운 장면이 떠오른다.


 번아웃이라는 걸 그때 처음 경험했다. 항우울제와 안정제를 먹으며 열네 시간씩 잤고 방 정리조차 할 에너지가 없어 먼지 소굴에서 지냈다.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아무도 만나기 싫어 친구들과 멀어짐은 물론이고 보건실에서마저도 문과 창문을 전부 꼭꼭 걸어 잠갔다. 나를 보러 와주는 고마운 선생님들에게 억지 미소를 지어주는 일마저도 고역이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격심해지면 얼굴이 붓는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때의 사진들을 보면 퉁퉁 부은 얼굴로 무기력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낯선 나를 볼 수 있다.




 나는 그 사람과의 연애에서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을 배웠다. 첫 번째로는 인간을 인간답게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어이 없게도 서른을 넘겨서야 이 당연하고도 당연한 인간관계의 기본 전제를 알게 된 것이다. 상대를 나와 같은 인간으로 보면 내게 못할 짓을 상대에게도 못하게 된다. 맹자의 사단인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가지고 상대를 대하게 된다.


 일단 그 마음이 생기기만 한다면 자연스럽게 실용적인 부분들로 뻗어나간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법, 부드럽게 나의 의견을 전하는 법, 상대를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지 않는 법, 잘못했을 때는 당연하고 내 잘못이 없다고 생각되더라도 상대의 마음에 대해 공감하고 올바르게 사과하는 법, 지독한 회피형으로서 도망치고 싶은 수많은 순간에 도망치지 않고 갈등 상황에 직면하는 법 등.. 배운 것들을 세부적으로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두 번째로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 어렴풋하게나마 나만의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알게 되었다' 대신 '나만의 인상을 가졌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사랑이라는 게 하나의 형태나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백 명의 사람이 있으면 백 가지의 사랑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누군가가 내게 사랑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명확히 정리하여 표현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다만, 사랑을 우습고 같잖게 생각했던 과거의 내가 얼마나 얄팍하고 교만했던지는 깨달을 수 있었다. 힘겨운 연애를 하는 동안 주변 사람들이 해주는 조언들은 나에게 있어 단지 나를 걱정해 주는 마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즉, 누구도 내게 해답을 줄 수 없었고 그렇게 하도록 내가 허락하지도 않았다. 복잡 미묘한 관계의 모든 것을 온전히 알 수 있는 사람은 그와 나 둘뿐이었고, 모든 결정의 키는 우리만이 쥘 수 있었다. 서로로 인해 불행함이 분명하고 이대로라면 끝은 이별일 것을 알고 있지만, 그저 그 순간이 도래하기 전까지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임하고 싶을 뿐이었다. 내 마음이 충분히 준비되어야 관계를 끝낼 수 있고 또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십 대의 나는 이러한 마음의 깊이를 전혀 알지 못했다. 사랑을 해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알 길이 없었다. 남들의 다사다난한, 깊고 복잡해서 아름다운 관계들을 단면만 보고 그저 앵무새처럼 헤어지라고 염불을 외웠다. 이 연애를 기점으로 나는 깨달았고 크게 반성했다. 독불장군이던 내가 팩트라는 껍데기를 씌운 채 던지는 무례한 조언을 들어야만 했던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했다.




 세 번째로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사람 간의 조화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을 알았다. 일 년 반의 연애가 끝난 후 연애를 했던 기간 이상으로 이 연애에 대해 굉장히 많은 생각을 했다. 내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주었던 연애이기에 모든 것을 분석하고 나서 벗어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렇게 가닿은 결론은, 사랑이란 감정도 중요하지만 사람과 사람 간의 케미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나와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정말로 중요하다. 나와 맞기만 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서도 안되지만,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의 사랑은 대부분의 경우 파국을 달린다.


 애착 유형으로 분석했을 때 상대는 안정형에 가까운 불안형이었고 나는 심한 거부회피형이었다.(이 연애 이후 불안이 올라 지금은 공포회피이다.) 그 사람의 사랑의 형태는 열정과 영원함이었다. 내 사랑의 형태는 배려와 은은함이었다. 사랑의 개념과 방식이 이렇게나 정반대인데 연애가 평탄할리 없었다. 그 사람은 죽음도 불사하는 사랑으로 나만을 바라봐주는 해바라기였다. 그 사람이 열심히 사는 이유, 돈을 버는 이유, 심지어 다이어트를 해야하는 이유조차 그 목적은 나와의 영원한 사랑과 행복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직 용인되기 어려운 우리 관계에서도 결혼식을 포함하여 부부로서 거듭나는 모든 과정을 똑같이 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에게 상응할 정도로 열정적이지 못한 나는 항상 죄인이 되었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나 또한 죄인까지 갈 필요 없이 '너는 그렇구나, 그런데 나는 다른 방식을 가진 사람이니 중간 지점을 찾아보자.'라고 말해주었으면 되었을 것을, 불안정하디 불안정한 인간으로서 하는 첫사랑이었으니 그 방식이 얼마나 세련되지 못했겠나. 연애 초반, 그에게 있어 사랑이 무엇인지 궁금하여 물었던 적이 있다. 무거운 물음에 대한 답으로 받은 편지에는 아래의 시가 적혀있었고, 나는 두려움에 떨었다. 내가 절대로 그런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어쩌면 관계의 끝을 그때부터 체감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 다시 청춘으로 돌아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제발' 이라는 단어를 쓸 줄 아는 사람을 사랑할 것이다. 너를 만나기 전의 사랑은 간섭하지 않겠다는 관용보다 그 과거에도 질투의 눈빛을 반짝이는 사람을 사랑할 것이고,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는 냉정의 논리보다, 너는 내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이를 사랑할 것이다.  사랑은 변할 수도 있다는 말보다 사랑이 변하면 죽어버릴 것이라는 그의 열정을 사랑할 것이고, 하루의 정해진 규칙 속에 사랑도 묶어버리는 질서보다 사랑으로 인해 하루를 망가뜨릴 수 있는 자유로움을 사랑할 것이다.  사랑으로 다치지 않기 위해 슬그머니 붕대를 미리 챙기는 사람보다 상처가 나서 죽더라도 사랑을 움켜잡는 용기를 가진 그를 사랑할 것이며, 밀고 당김의 계산보다 가슴이 탄식하는 대로 제발, 제발이라 신음하는 사람을 죽을 때까지 사랑할 것이다.
윤용인 <어른의 발견>





사랑에 대해 참 겪은 바도 많고 생각한 바도 많아 일기가 길어졌다. 이후에 있었던 일들과 내 인생의 마지막 사랑이 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다음 일기에 이어서 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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